‘당신의 눈동자에 건배.’
영화 카사블랑카 속 대사가 이곳만큼 어울리는 곳이 있을까. 향긋한 로제 와인이 담긴 찰랑이는 잔을 든 사람들이 상대방과 눈을 맞추며 건배를 한다. 테이블 주변엔 로제 와인과 색을 맞춘 듯 핑크빛 장미들이 가득하다. 무심코 상대에게 프러포즈를 할 것만 같은 이곳, 대전 속 작은 파리 에꼴뒤뱅이다.
매력적이나 쉬운 너, ‘로제 와인’
“로제 와인은 저렴하고 편하게 소비되는 주종으로 프랑스 남부 론 강 유역, 루아르 강 유역 지중해 유역에서 주로 생산됩니다. 오늘 시음회를 위해 와인과 장미, 그리고 핑크빛 연어 샐러드의 조화를 신경 써 준비했으니 팍팍한 일상에서 벗어나 로제 와인이 주는 휴식을 즐기며 힐링해 보시길 바랍니다.”
왕도열(에꼴뒤뱅 대표) 원장이 여덟 번째 시음회의 시작을 알리는 와인 잔을 들었다. 왕도열 원장이 운영하는 에꼴뒤뱅은 와인 애호가부터 초심자까지 방문자의 스펙트럼이 넓기로 유명하다. 불어로 ‘와인 학교’란 뜻인 에꼴뒤뱅은 와인에 대한 모든 것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애호가는 에꼴뒤뱅이 보유한 500여 종의 리스트를 즐기기 위해, 초심자는 와인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얻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그리고 방문객 모두를 다시 오게 하는 또 한 가지. 와인의 맛과 풍미를 최대치로 올려주는 마리아쥬(mariage·와인과 조화로운 궁합)를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6일 열린 시음회의 주제 ‘오월 장미 그리고 로제 와인과 연어’처럼 와인과 그에 어울리는 음식을 시음회에서 맛 볼 기회는 흔치 않다. 대전에서 와인만을 전문적으로 시음할 수 있는 공간도 에꼴뒤뱅이 유일하니, 시음회에서 마리아쥬를 기대하는 것은 어찌 보면 사치스러운 일이다. 이런 이유로 와인 애호가 사이에선 에꼴뒤뱅의 시음회를 손꼽아 기다리는 이들이 많다. 예약제로 사전 신청을 받으며 인원수에 맞춰 음식과 와인이 세심히 세팅된다. 와인 잔마다 와인이 채워지자 왕 원장은 오늘의 로제 와인에 대한 설명을 시작한다.
열정과 냉정 사이, ‘로제 와인’
“오늘 시음하는 로제 와인은 부드럽고 단맛이 있는 캘리포니아 뷸러 화이트 진판델(Buehler White Zinfandel)과 지중해의 햇살을 머금은 이탈리아 남부 몬테풀치아노 첼라수올라(Montepulciano Cerasuola) 드라이 로제 와인입니다.”
왕도열 원장은 로제 와인은 어떤 음식과도 조화를 이루는 편한 와인이라고 소개한다. 유럽에선 맥주처럼 편하게 마시는 와인이 바로 로제 와인이다. 샐러드부터 튀김 요리, 심지어 한국식 전 요리와도 어울린다. 레드 와인이 부담스러운 더운 여름이나 화이트 와인이 꺼려지는 추운 겨울에도 로제 와인은 훌륭히 와인의 소임을 다할 수 있다. 특히 이른 무더위와 업무에 지친 늦은 봄밤에는 차가운 로제 와인만 한 것이 없다. 최근에는 탄산이 들어 있는 로제 샴페인이 인기를 더해가고 있다.
“로제 와인을 앞에 두고 감흥이 일렁이지 않는 사람은 하늘을 많이 봐야 하는 사람일 겁니다. 그만큼 고단한 일상을 살아 감성이 고갈됐다는 것이니까요. 하하”
왕도열 원장의 로제 와인 예찬이다.
소믈리에, 그리고 셰프
시음회에서 맛보는 음식들은 요리에 가깝다. 와인의 풍미를 더 하기 위해 준비했다는 마리아쥬는 훌륭한 저녁 성찬이 된다. 베이컨과 볶음밥, 훈제 연어 샐러드, 그리고 미디엄으로 구운 스테이크가 간격을 두고 테이블로 옮겨진다. 깔끔한 플레이팅과 적당한 식감으로 조리된 요리들은 주방 안에 있는 셰프를 예상했다가 보기 좋게 빗나간다. 식전 음식부터 메인 음식까지, 에꼴뒤뱅에서 마련한 성찬은 모두 왕도열 원장이 직접 만든다. 와인에 대한 지식에 감탄하다 요리에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주인이 직접 준비하고 요리한 홈 파티를 즐기는 매력, 이곳 에꼴뒤뱅만의 자랑이다.
“시간이 점점 흐를수록 바쁜 핑계로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저 역시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 와인과 음식과 이야기를 한 곳에서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에꼴뒤뱅의 시음회는 와인과 요리와 와인처럼 세월을 함께 한 친구들이 있는 시간이죠.”
파리에서의 유학 시절, 와인의 매력에 빠져 그만 10년간 주저앉았던 그였기에 많은 이와 와인의 매력을 공유하고 싶었다. 그래서 문을 연 에꼴뒤뱅. 11년 동안 쌓인 코르크 마개만큼 많은 이들을 에꼴뒤뱅에서 만났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친구와 향기로운 와인을 편하게 마시며 정담을 나누는 모습을 보면 수고로움에 준비했던 시음회가 그에겐 선물 같다. 조금 더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세월과 와인과 친구를 생각하길 바란다며 다음 시음회 주제를 꺼낸다.
“6월 23일, 여름의 한가운데죠. 어떤 와인과 음식으로 ‘한여름 밤의 꿈’ 같은 시간을 선사할까 고민 중입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에꼴뒤뱅으로 오세요.(웃음)”
문의 에꼴뒤뱅 042-531- 0952
안시언 리포터 whiwon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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