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한국적인 작품인 짚풀 공예를 아는가. 세계에서는 이미 그 진가를 인정했음에도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홀대받고 있는 짚풀 공예에 27년을 한결같이 온 정성을 쏟아온 전성임 풀짚 공예박물관장. 그럼에도 묵묵히 한 길을 걸어온 전성임 관장을 만나 짚풀 공예의 진가를 알아봤다.
“아이들 학교 갈 준비, 도시락 준비 해놓고 재우고 나서 밤 11시 쯤 출발하면 담양에4시 쯤 도착해요. 요즘에는 24시간 카페도 많지만, 그때는 그런 것이 있나요 어디? 한 번은 동틀 때까지 갈 곳이 없어서 동네 파출소에 들어가 당직이었던 경찰분하고 두런두런 얘기도 하고 나오기도 했죠.”
사람이 한 우물을 파고, 열정을 갖고 사는 것이야 말로 정말 바람직한 삶이겠지만, 정말 이렇게까지 열정을 가지고 하나만을 바라보게 한 이유가 무엇일까. 풀짚공예박물관의 전성임 관장이 27년도 더 된 연구과정을 설명하는데 드는 생각이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 전 관장은 “내가 너무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하면할수록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연구이고, 게다가 남은 시간도 얼마 없다”라는 사실 때문에 ‘사명감’이 들었고 다른 것은 돌아볼 수가 없었다고 말한다.
전국 돌아다니며 할아버지들께 직접 전수받아
전 관장은 주부의 몸으로 40세 중반에 우연치 않게 바구니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우리나라의 풀짚공예에 대한 발굴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 문화를 지키기 위해 사비를 털어 박물관을 만들었다.
손재주가 좋아 이것저것 만드는 것을 좋아했던 전 관장은 바구니 만드는 법을 배우다 제대로 배워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 누가 알아주는 일도 아니었고 보수가 있었던 일도 아니었지만 전 관장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할아버지들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처음에는 ‘웬 서울 여자가 지푸라기 꼬는 것을 배우려고 하나’ 하고 의아해 하던 할아버지들도 여러 번 찾아오니 점차 그 뜻을 이해하고 제대로 전수해주기 시작했다고 한다.
“망태기라도 지역마다 다 달라요. 그 지역에서 많이 나는 종류의 풀만 사용해 재료도 다 다르고, 같은 재료라도 그 지역의 환경에 따라 질이 다 다르고요. 그래서 자료를 수집하려고 전국 방방곡곡을 안 다녀 본 곳이 없답니다.”
전 관장이 그렇게 모아놓은 자료의 양도 방대하다. 이 자료의 가치를 알아본 한 출판사의 제안에 2012년에는 <풀짚공예 배우기>라는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이 책은 읽으면 어느 정도 길잡이가 될 수 있어서 다행이긴 해요. 하지만 이 공예 기법의 명맥을 이어갈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는데 가치를 잘 몰라주시니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정 관장은 날이 갈수록 다음 세대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사실 정 관장의 풀짚공예는 다른 나라에서 더 가치를 인정해 주고 있는 실정이다. 2009년 필라델피아 크라프트쇼에서 이미 모든 작품이 고가에 팔려나가는 것을 시작으로 몇 년 후 시카고 초대전에서도 극찬을 받은 바 있다. 전 관장이 연구하고 작품 활동을 해온 이 분야는 외국에서는 ‘바스케트리’라는 예술 장르로 오래전부터 발전을 해왔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프랑스 장애인 기능 올림픽 대회에 선수를 출전시켜 열악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금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하지만, 유독 우리나라에서만은 인정을 못 받고 있어 안타까운 상황이다. “프랑스에 갔더니 바구니를 만드는 전문학교가 세 곳이나 있더라고요. 하찮은 전통문화라도 소중히 여기고 이어나가는 모습에 큰 감명을 받았지요.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짚풀공예에 대해 과거의 천민문화라고 생각할 뿐 이어나가야겠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드문 것 같아요”라며 푸념어린 설명을 한다.
그래서 전 관장은 교육 쪽에 많은 힘을 쏟고 있다. 여기에는 자연과 가까이 할 수 있는 일을 버리면 안 된다는 철학도 함께한다. “천연재료인 짚풀을 이용해 창작물을 만들고 가지고 놀 수 있도록 콘텐츠를 만들었었어요. 그리고 성인들을 위한 반도 있지요.” 풀짚공예박물관에서는 현재 다양한 체험수업과, 꿈다락 예술학교, 어르신문화학교 등을 개설 중이다.
선입견 버리고 현대미술의 한 장르로 발전시키고 싶어
전 관장은 풀짚공예의 미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사랑방에서 머슴들이 하던 일이라는 선입견을 버리고 현대미술로 승화시켜야 합니다. 이미 외국에서는 인정하는 분야인데, 유독 우리만 외면하고 있는 모습이죠. 미술계에서도 현대미술의 장르로 받아들이고 항상 관심을 가지고 꼭 지켜보아야 할 분야라고 생각해요.”
전 관장은 그동안 작품 활동도 활발히 했다. 실제로 작품을 보면 길에서 보던 풀들이 이렇게 멋지게 표현이 되는지 깜짝 놀랄 정도, 스케일이나 미적인 부분에서도 현대예술과 다름없이 예술적 감각이 충만하다. 전 관장은 특별히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음에도 한국적인 정서를 잘 표현하는 남다른 재주와 감각을 지닌 듯하다.
이번 취재를 하며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처럼 우리가 조금만 더 우리의 전통문화에 관심을 갖게 된다면 우리의 후손들은 훨씬 더 정서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에서 지내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정부에서도 사명감을 갖고 이러한 전통문화를 지키고 전수하는 것에 더욱 신경을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 관장은 지금까지의 작품 인생을 보여줄 전시를 준비 중인데 오방색이라는 주제로 오는 6월 14일부터 그 찬란한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것이다.
이세라 리포터 dhum20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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