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육아부터 인생 공부까지 함께 하는 20년 지기 아빠 모임
인생에 큰 파도 덮쳐왔을 때 함께 할 수 있어 ''나는 행복한 사람''
얼굴도 모르던 아빠들이 육아를 함께 하고자 모였다. 하는 일도 관심사도 달랐지만 놀이터를 만들고 텃밭을 가꾸는 일은 아이와 함께 한 해 두 해 성장해 가는 과정이었다. 그러는 동안 아빠들끼리도 흉금을 터놓는 친구가 됐다. 그리고 아이들은 성장해 부모의 품을 떠나갈 준비를 하고 있지만 아빠들은 함께 인생을 공부하는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취재 문소영 리포터 tubmoon77@hanmail.net
마을공동체 꿈꾸던 사람들
비어있는 농가와 논들을 볼 수 있었던 초창기 일산 신도시. 함께 아이를 키우는 마을 공동체를 꿈꾸는 초보 부모들이 있었다. 어떤 이는 기존 어린이집에 대한 불신으로, 또 어떤 이는 마땅히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서 등 각자의 상황과 이유는 달랐다. 그러나 내 아이가 신나게 뛰어놀 수 있다면, 자연을 맘껏 즐기고 함께하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배워갈 수만 있다면 문제될 것이 없었다. 20가족 38명이 모였지만 기꺼이 한 마음이 될 수 있었다. ''야호! 어린이집'' 공동 육아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제일 먼저 해야 했던 일은 아이들의 놀 공간(터전)을 만드는 일이었다. 지금은 킨텍스 주차장이 된 농가주택이 첫 터전이 됐다. 후에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되었을 때도 출자금을 늘리고 기부하는 형태로 기금을 모아 새로운 터전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한다. 어려움이 전화위복이 된 것이다.
일일교사 활동, 청소를 비롯한 울타리 치기, 나무로 된 커다란 미끄럼틀 만들기, 텃밭 일구기, 토끼와 닭 등 가축을 기르기 위한 시설 만들기 등은 모두 아빠들 몫이었다. 비슷한 고민과 바람이 있는 사람들이라서 힘든 노동의 과정이 오히려 재미있었다고 한다. 아빠들끼리의 만남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어려움 함께 극복하니 진짜 친구 되기도
공동육아에 참여했던 유태혁씨는 2년 반 전, 추락사고로 크게 다친 적이 있었다. 깨어날 수 없을지도 모를 상황에서 회원들은 마음을 나눠주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도 했다. 그는 이 때를 회고하며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구나'' 감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 386세대인 아빠들은 같은 시대를 겪어온 진한 동지애가 있었고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공동체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당시 노동운동, 시민운동에 참여했던 아빠들이 많아 모임은 술자리 끝에도 진지한 대화로 이어지는 일이 잦았다. 자연스럽게 한 달에 한 번씩 책을 읽는 모임으로 발전했다. 더 많은 사람들과 인문학 공부를 하자는 의견이 있어 인문학 공부 모임인 ''귀가쫑긋''이 탄생하게 됐다. 서양철학, 동양철학, 논어, 글쓰기 강좌, 산행으로 함께하고 있다.
일상의 무게와 진지함에서 잠시 탈출하고파 방송 댄스를 함께 배우기도 했다. ‘귀쫑’을 위해 오픈된 대화동 사과나무 치과 5층 강의실 한 쪽 벽면이 거울인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이광열씨는 이변이 없는 한 이 만남은 장례식장 가는 그날까지 쭈욱 이어질 것 같다며 웃는다. 막걸리 축제날 함께 만난 아빠들은 퇴직 후 함께 만들어가고 싶은 새로운 공동체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운다.
추억의 사진
미니인터뷰
“비슷한 고민과 바람이 있었기에 행복했어요”
그 나이 땐 사회에 마음의 부채 같은 게 있었어요. 공동육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이들 문제도 있었지만, 공동체의 문화 확산을 통해 사회의 공공선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막상 모이고 보니 모두가 비슷한 생각이었기에 너무나 좋았죠. 서로 모여서 얘기하고 놀고 공부하고 애들 키우는데, 그 자체로 뭔가 사회에 기여한다는 그런 느낌이 있었던 것 같아요. 늘 함께 어울리고 즐거웠어요. 지금까지의 제 인생 중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김혜성씨)
“아들은 뱃속에서부터 ''야호! 어린이집'' 일원이었어요”
당시 공동육아에 대한 소문을 듣고 ‘여러 부모가 함께 아이를 키우는 것도 좋은 일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하루는 임신 중인 아내가 치과에 다녀오더니 일산에서도 공동육아를 시작한다고 하더군요. 돌 지나고 몇 달 지나서 참가했어요. 당시 돌봐주신 선생님께 미안하기도 하고 참 고맙기도 하고…. 그 뒤로는 두 돌 지난 아이부터 받기로 했지요. 대학 새내기가 된 아들은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자라주어 늘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임영근씨)
“마음을 기댈 수 있는 공동체가 제게도 필요했어요”
육아를 함께하지 않겠냐는 후배의 제안에 두 번 생각지 않고 안양에서 일산으로 이사했어요.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고 싶다는 마음과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었던 관계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사회적, 정치적 격변기를 겪으며 혼란스러웠던 저에게도 마음을 기댈 수 있는 공동체가 필요했고요. 앞으로도 쭈욱 곁에 두고 싶은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제 아이들에게도 알게 해주고 싶은 귀중한 가치입니다
(이광열씨)
“아프고 나니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친구들이에요"
조기교육 열풍이 불던 당시, ‘기존교육 말고 보다 괜찮은 교육방식이 없을까?'' 고민하다 건강하고 자유로운 게 아이에게 가장 좋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당시로서는 생활비의 절반을 육아비로 썼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지요. 말이 통하고 성향이 비슷해 아빠들끼린 곧 친구가 될 수 있었죠. 이젠 가까운 동네 친구가 됐어요 다들.
(유태혁씨)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