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y are going to visit Jejudo. 여기서 be동사가 미래에 할 일을 나타내 주는 역할이니, 제주도에 갈 계획이 있다고 해석해야 옳죠.”
리포터가 단원노인복지관 4층에 있는 배움터에 들어섰을 때 영어수업이 한참 진행되고 있었다. 칠판과 컴퓨터 사이를 오가며 열강을 하는 서한술 영어강사, 필기하고 대답하며 집중해서 듣고 있는 학생들 모두 오직 공부에만 열중하는 모습이었다. 칠판을 보며 색깔 별로 단어와 해석을 노트에 정리하기 위해 안경을 두개나 쓴 학생도 있었다.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몸이 아픈 것도 잊고, 모르는 것을 알고 싶어 새벽부터 책을 펼치신다는 단원노인복지관 단원어울림학교 검정고시 학생들. 뒤늦게 공부재미에 푹~빠진 어르신들께 배움의 소중함에 대해 들어보았다.
배움에 대한 크고 작은 한(恨)
단원노인복지관 단원어울림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6·25 전쟁을 겪으며 어린 시절을 보낸 어르신들이 대부분이다. 1930~1950년대에 태어나 너무나 어려웠던 유년기를 보냈으니 학교에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이곳에서 공부하는 어르신들은 대부분 어릴 때 즉 배워야 할 때에, 배울 수 없었던 아픔이 있다. 반장인 김경자(73) 어르신도 배움에 대한 크고 작은 한(恨)을 이곳 단원어울림학교에서 동창생을 만들고 모교를 만들고 스승을 만나 풀어내고 있었다.
“유치원에 다닐 나이에 보았던 해방 때 태극기 물결이 지금도 생생하지. 6·25를 겪으며 너무나 많은 것을 잃고 어렵게 살아왔지만, 5년 전 동사무소에서 컴퓨터를 배우고 ‘어디서 어떻게 공부할 수 있을까’ 검색해보고 이곳을 찾아내 공부하게 된 거야.”
이곳의 수강료는 한 학기에 만원, 지도하는 강사 역시 현직 수학교사에서 정년퇴직하거나, 미국에서 오랫동안 지내 영어를 잘 하시는 어르신이다.
배움의 단계를 올라가 대학까지
단원어울림학교 검정고시준비반은 2011년 개강해 그 해 5월에 중학교 입학 검정고시에서 8명이나 합격해 주변을 놀라게 했다. 그 후로 지난 5년간 고등학교 입학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합격생중 5분이 방송통신대학에 입학했다. 개근상을 받을 만큼 열심히 공부한 덕이다.
독학으로 1년 반 만에 중·고등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한 우등생 권성순(71) 어르신은 방송통신대학에 입학했지만 학업을 지속하기엔 어려움이 많았다고 토로했다.
“일반 대학은 돈이 너무 비싸 방송통신대학에 갔지만, 인터넷으로 수업을 따라가려니 눈이 너무 아파. 나이를 먹은 사람도 대학에 갈수 있었으면 너무 좋겠어.”
권 어르신은 “단계를 뚫고 넘어가며 배우는 신기함이 있다. 간판이나 노래를 부를 때, 지하철을 타도 백화점에 가도 영어가 보이고 들린다”며 몰랐던 것을 깨우치는 것은 정말 신기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배움이 준 선물, 건강 그리고 당당한 나
단원어울림학교를 이웃에게 알리고 싶다는 김복연(63) 어르신은 이곳에서 가장 어린 편이다.
김 어르신은 갑상선암에 무릎 고관절 수술도 여러 번 하며 병마와 싸워야 했다. 다행히 공부하면서 잡생각이 줄고 우울증도 없어져 정신력이 강해지면서 병을 이겨냈다고 한다.
“공부를 하다보면 아픈 걸 잃어버려요. 새로운 것을 알아내는 재미에 활력이 생긴 것 같고.
자녀들도 좋아하죠. 늘 살림만 하는 엄마를 새롭게 다시 보고 컴퓨터로 공부할 땐 옆에서 도와주고 좋은 프로그램을 찾아주기도 해요.“
공부하는 어르신들은 가족들 앞에서 더 당당해졌다고 입을 모았다. 어떤 며느리는 “할머니 공부하시는 거 본받아 너희도 열심히 하라”며 자녀교육을 시킨다고 한다.
지팡이가 막지 못한 세월, 열·공으로 막아
단원노인복지관 교육문화팀 이혜진 복지사는 “어르신들에게 단원어울림학교는 모교이고 함께 공부하는 동료들을 동창생이라고 여긴다”며 “취미활동 프로그램은 일주일에 한두 번 참여하는데 이곳은 일주일 내내 오전10시부터 오후4시까지 공부에 열중한다”고 전했다. 자주 만나고 함께 해서인지 동료들끼리도 봉사하는 어르신 강사님들과도 어르신들이 친밀함이 아주 특별하다고 전했다. 아쉬움이 있다면 참여하는 어르신이 아직은 10여분 정도인 것. 더 많은 어르신들이 배움에 참여하면 힘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 가시 쥐고
늙는 길은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白髮)은 막대로 치려했더니
백발(白髮)이 자기가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늙음을 탄식하는 고려 말 한 학자의 시조이다. 단원어울림학교 어르신들에게는 백발을 막을 무기가 하나 더 있다. 지팡이가 막지 못한 세월을 막아내는 것은 바로 ‘힘껏 잡은 펜과 배움에 대한 열정’이 아닐까.
박향신 리포터 hyang3080@naver.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