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흘러가버린 시간은 찾을 길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누군가는 시간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소비하는 가장 가치 있는 것이라고도 한다. 어쩌면 기억 속에 켜켜이 남아있는 시간의 흔적들이 세대를 넘어 경험을 전수시키며 우리를 있게 하기 때문이리라. 평균 나이 79.4세인 ‘인생나눔’ 인형극단 단원들. 오랜 시간의 흔적들을 가슴에 품은 그들의 산 경험들이 인형극을 통해 오늘도 전해지고 있다.
■평균 나이, 79.4세의 ‘인생나눔’ 인형극단 탄생!
유독 겨울비가 잦은 올해, 인생나눔 극단 어르신들을 만나러 가는 날도 겨울비답지 않은 굵은 비가 쏟아졌다. ‘아, 이런 날에도 어르신들이 모이실까?’ 걱정이 앞섰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알록달록 인형을 손에 든 10명의 단원 모두가 반겨준다. 흐린 날도, 궂은 날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인 평균 나이, 79.4세 고령의 단원들 앞에 걱정은 한낱 기우였음을 깨달았다.
‘인생나눔’ 인형극단은 수원문화재단이 후원하는 ‘우리동네프로젝트’ 사업 중 하나로 (사)경기인형극진흥회가 주관하여 탄생한 세류동의 실버 인형극단. 어르신들은 지난 7월부터 인형극을 위해 바쁜 시간을 보냈다. 인형극 전문 강사와 함께 정성을 들여 공연 인형도 직접 제작해 내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시나리오도 완성했다. 또한 완성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 대본 녹음을 하는 등 연습 끝에 11월9~13일까지 세류동 내 어린이집 및 유치원, 노인정 등에서 5회에 걸친 공연을 가졌다. 12월24일에는 명당초의 많은 어린이들 앞에서 추가 공연을 하기도 했다. 세류동의 옛 지명 버드내, 가는골을 이용한 ‘버들이’, ‘가늘이’ 캐릭터 인형 500여 개를 함께 만들고, 나누는 행사에도 참여했다.
어르신들은 이 모든 일들이 꿈만 같단다. 박종애(86)씨는 “집에 있으면 무료하기도 한데 여기 와 여럿이 함께 하니 반갑다. 젊은 양반들 하는 거 따라 배우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라고 즐거워했다. 최관순(71)씨는 인형극이 해보고 싶어 참여했는데 생각보다 재미있고, 노후의 활력소가 된다고 자랑이다. “노인들이 하는 게 시원찮은데도 잘한다고 격려하며 재미있게 가르쳐 줬다. 즐겁게 배우고 공연하고 있다”는 박삼분(85)씨는 “신문에까지 날 줄은 정말 몰랐다”며 극단 단원임을 뿌듯해 했다.
■인형도 직접 만들고, 시나리오도 자신들의 지난 삶으로 채우다
어르신들이 만든 공연명은 ‘버들아! 가늘아! 단풍든다!’. ‘인생나눔’ 인형극단의 극단명과 같이 자신들의 인생의 산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완성됐다. 가슴 속에 꽁꽁 묻어왔던 어렵고 힘들게 살아온 이야기, 추억이 묻어나는 이야기들은 인형들을 통해 되살아났다.
무대의 막이 오르면 세류동의 버드나무와 실개천이 나온다. 어르신들의 손에서 생명을 부여 받은 인형들이 무대에 오르고 인형극은 시작된다. 공연을 보는 어린이들은 움직이는 인형이 신기해 눈을 떼지 못하고, 공연이 끝나면 아쉬움에 또 오라고 붙잡으며 인기 스타 대접을 한다. 그런가 하면 노인정 공연에서는 동년배라 공감의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고령이라 잦은 공연과 연습, 인형 만들기는 힘에 부칠 만도 한데 나이 들어 인형 갖고 노는 것이 재밌어 힘든 게 하나도 없다는 ‘인생나눔’ 인형극단 단원들. 정덕순(84)씨는 어려서도 못 갖고 놀던 인형을 어른이 돼서 갖고 노니까 좋기만 하다며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버들이 역의 김창수(82)씨와 가늘이 역의 전정옥(81)씨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난단다. 특히 버들이와 가늘이 엄마역인 최정순(84)씨는 연신 인형을 쓰다듬고 움직이며 두 아이의 엄마 역할에 푹 빠져 있다.
■더 많은 얘기를 담아 아름답고 감동적인 인형극을 선보일 터
어르신들은 직접 인형을 만들고 이야기를 만들어 왔기에 현재의 공연이 흡족하지만 더 욕심을 내 본다. 최고령이신 이음전(88)씨는 “5번 공연의 공연 동안 경험이 많이 쌓였다. 늙어서 잘 할 줄 모르는데 가르쳐 주니까 꾸려나가고 있다”고 겸손해면서도 앞으로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싶다고 전했다. 단원 중 유일한 청일점인 윤석봉(74)씨는 “단원들이 인형극에 대해 눈을 뜬 것 같다. 연습을 좀 더 많이 하고, 성숙해져서 살아온 경험을 전해 줄 수 있는 아름답고 감동적인 인형극을 해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현재 가지고 있는 인형도 다시 한 번 크고 예쁘게 만들어 볼 계획도 가지고 있다. 한 올 한 올 직접 만들어서 그런지 인형하고 정이 많이 들었다는 이금순(69)씨도 새로운 인형과의 만남을 고대하고 있다.
못한 것도 잘 한다고 하니 만나서 연습하고 공연하는 시간만 기다려진다는 그들이다. 주변에서 용기를 북돋아 주니 그 용기를 먹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마지막까지 뒷바라지를 하는 강사분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어르신들과의 유쾌한 만남을 끝내고 길을 나섰다.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개어 있다. 인생나눔 인형극단 어르신들 모두 건강해 극단 이름처럼 많은 인생의 경험들을 계속 나눠 주시길 빌었다.
권성미 리포터 kwons02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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