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발산동에 위치한 녹음 스튜디오 ‘소리와 사람들’에는 토요일마다 자원봉사자들이 모인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책을 녹음하는 이들이다.
짧은 글부터 소설까지 이들이 녹음한 이야기는 의정부시각장애인 복지관, 일산 시각장애인연합회 등을 통해 시각장애인들에게 전달되고 있다. 상업적인 녹음 스튜디오에서 다양한 오디오 효과를 넣어 드라마처럼 생생하게 녹음하기 때문에 시각장애인들의 반응도 좋다고 한다.
성우들의 재능기부로 시작한 책 녹음 봉사
‘소리와 사람들’은 2004년에 문을 연 전문 녹음 공간이다. 라디오 광고, TV 영상 광고 등 성우 녹음이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다루고 있다. ‘소리와 사람들’이 자원봉사 활동 공간으로 활약한 데는 성우 장영재씨의 역할이 컸다. 장씨는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다 30세에 성우의 길로 들어서 15년째 활동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학교 방송반과 음악 감상실에서 DJ 경험을 쌓으며 목소리 좋다는 말을 자주 들었던 그였다.
성우 녹음 봉사활동을 시작한 까닭을 묻자 장씨는 “경기가 안 좋아 많이 힘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언젠가는 봉사활동을 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시기가 맞지 않아 망설이고 있었다. 그런데 녹음실이 비니까 이 공간을 활용해보자는 마음이 들어 성우들을 모아 재능기부로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던 일을 시작한 것뿐이라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경기가 나빠졌을 때 자원봉사를 시작한 마음이 남다르다.
오디오 드라마처럼 생생해 인기
성우들만으로는 어려워 지난해부터는 자원봉사포털 1365를 통해 일반인 봉사자들을 모집했다. ‘소리와 사람들’ 성우 녹음 봉사 모임은 매달 첫째 주 토요일에 모여 대본 리딩을, 둘째 주 토요일에 모여 본 녹음을 진행한다. 봉사자들은 짧은 글 읽기를 하면서 기본 발성과 화술 등을 배운다. 녹음해 들을 만 할 정도가 되면 소설 한 권을 정해 배역을 나눠 드라마처럼 녹음한다. 배경 음악과 캐릭터에 맞는 목소리 연기, 효과음까지 넣는다.
장영재씨는 “대개 시각장애인들은 대개 한 사람이 단조로운 톤으로 빠르게 녹음한 책을 서비스 받고 있고 음성 도서도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소리와 사람들에서 녹음한 파일은 오디오테이프에 담아야 한다. 시각장애인들에게는 카세트테이프가 사용하기 편리하기 때문이라고. 그 과정에서 음질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장씨는 최대한 생생하고 다양한 효과를 넣어 녹음하려고 한다. 장씨에 따르면 시각장애인들이 녹음서비스로 받아보는 책들은 당시의 베스트셀러보다는 대개 출간된 지 수 년 지난 책들이 많다고 한다. 장애인들에게 비교적 최근 출간된 책을 보다 생생하게 읽어주고 싶은 것이 장씨의 바람이다.
책 읽기 제대로 배우고 봉사도 하고
책 읽기와 봉사활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누군가에게 책 읽어주는 봉사를 해보고 싶다고 마음먹었을 법 하다. 김민영씨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다. 김씨는 학원에서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 평소 책 읽기 봉사에 관심을 두고 있던 그는 우연히 이 모임을 알게 돼 멀리 서울 쌍문동에서 일산까지 2시간 30분 거리를 무턱대고 찾아왔다.
“처음에는 읽기만하면 될 줄 알았는데 시각장애인들에게 전달을 잘 하려면 끊어 읽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았어요. 학생들에게 여기서 배운 읽기 방법을 알려줬더니 시험공부에 활용해보고 집중이 잘 된다며 고맙다고 말해주더라고요. 뿌듯했어요.”
중학생 김정은양은 “봉사점수가 목적이었는데 해보니 책읽기도 재밌고 장애인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게 의미가 있어 좋다”고 말했다.
원흥에서 온 김미현씨는 “이곳에 와서 혀가 짧다는 걸 처음 알았다. 가끔 발음이 막힐 때가 있었는데 교정도 되고 봉사도 하고 여러 방면에서 좋다”며 웃었다.
넉넉해서 나눈 게 아니라 나눠서 넉넉해진 사람들. ‘소리와 사람들’은 당연하게 누려왔던 시력과 목소리를 나눔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었다.
봉사 참여 문의 이경희 010-2651-8690
이향지 리포터 greengreens@naver.com
>>>미니인터뷰
성우 장영재씨
전문 교육을 해드리지는 못하지만 성우 녹음 봉사를 통해 듣기 좋은 자기 목소리를 찾을 수 있어요. 지금까지 20여 명이 지원했고 꾸준히 하는 분들은 10명 정도로 많지 않아 안타까워요. 내년 3월쯤이면 3기를 모집할 예정이니 많이 참여해주세요.
이경희씨
도서관에서 책 읽어주기 봉사를 하던 중 이곳을 알게 됐어요. 제 목소리를 들어볼 수 있어서 좋고 봉사니까 도움이 되는 것도 좋아요. 지금은 여자 회원이 많아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남자 역할을 장영재 선생님이 대부분 소화하고 계시거든요. 내년에는 10대 남학생들이 많이 참여해주면 좋겠어요.
서혜영씨
한국말을 할 줄 알아도 잘 읽는 것은 다르던데요. 이제는 매주 첫주 둘째주 토요일은 봉사하러 오는 날이라고 정하고 지내니 가족들도 응원해줘요. 제 목소리로 동시를 녹음해 아들에게도 들려주고 싶어요.
김희정씨
딸아이 자원봉사처를 알아보다 참여하게 됐어요. 초등학교 교사로 학교에서도 아이들에게 책을 다양하게 읽어주려고 노력하거든요. 여기 와서 다시 배우는 느낌이에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제대로 책을 읽어줄 수 있을 것 같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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