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소리 소문 없이 다가오는 기회. 움켜잡아 성장의 발판으로 삼을 수도 흘려보낼 수도 있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홍승완군은 ‘학교 기숙사’란 행운을 꽉 잡았다.
기숙사에서 180도 달라지다
“입학식날 바로 기숙사에 들어갔는데 선배들이 신입생 모아 놓고 고교생활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 조언해줬어요. 내신 공부, 동아리 선택법, 선생님들 스타일까지 꿀팁들을 짚어줬어요.” 신선한 충격이었다. 열심히 학교 생활하며 후배들까지 챙기는 선배들의 모습이 자극제가 됐다.
그 당시 홍군은 과학고 지원했다 떨어진 뒤 상실감에 시달렸고 공부 방향성까지 잃어버린 상태였다. 갈피를 못잡고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아야겠다는 결심이 그제야 섰다.
“다들 기숙사 자습실에 붙박이처럼 앉아 책을 파고드는 모습을 보며 무작정 나도 책을 펴들었습니다.”
중학 시절 수학, 과학에만 집중하다 소홀히 한 영어, 국어 공부가 급선무였다. “영어는 어휘력이 취약했어요. 단어장 한 권을 예시문까지 달달 외울 정도로 여러 번 반복해서 봤어요. 학교 방과후 수업도 어휘력 부분에 집중했고요. 단어 테스트를 매주 보며 실력 점검을 해나갔습니다.”
‘백지복습’으로 영어의 벽 넘다
단어 실력이 느니까 독해가 수월해졌다. 허나 노력을 쏟는다고 당장 점수가 오르지 않았고 늘 영어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그래도 끈질기게 파고들었다.
“내신 시험 범위 영어 지문이 대략 60개쯤 되는 데 매번 달달 외웠어요. 시험 전날에는 흰 종이에 암기한 모든 지문을 다 써보며 ‘백지복습’을 했습니다.” 홍군은 특유의 꼼꼼함으로 완벽주의 공부법이란 정공법을 택했다. 서서히 효과가 나타났다.
국어도 교과서, 자습서, 프린트물을 꼼꼼하게 훑으며 개념을 잡아나갔다. “모의고사, 수능 기출문제를 다양하게 풀며 유형을 익혔어요. 어차피 학교 내신시험도 수능 스타일을 변형해 출제하는 거라 이 같은 공부법이 유용했습니다.”
고1 첫 중간고사에서 전교 11등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난생 처음 받아든 등수라 깜짝 놀랐어요. ‘하니까 되는구나’란 경험을 맛보았죠. 자습실에 앉아 내게 맞는 공부법을 고민하고 실천하고 실패하고 재차 도전하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 이뤄낸 성과라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 후 성적은 우상향 곡선을 탔고 최상위권을 줄곧 유지하고 있다. 그는 성적 향상의 비결로 환경, 사람을 꼽았다. “기숙사란 닫힌 공간에 나를 반강제적으로 몰아넣은 게 주효했습니다. 공부는 실천이 중요하잖아요. 너나 할 것 없이 책상 앞에 공부하는 주변 분위기가 나를 바꾼 거죠.”
롤모델로 삼을 선배를 만난 것도 행운이다. “공부든 동아리활동이든 참여하는 모든 거에 최선을 다하는 형과 친해졌어요. 내게 조언을 많이 해줬어요. 꼭 닮고 싶은 선배죠.”
과학 공부하며 찾은 화학공학의 꿈
홍군의 꿈은 화학생명공학 분야 엔지니어. 중학교 시절 과고 준비를 위해 과학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면서 관심 분야를 발견할 수 있었다. “물리, 생물, 지구과학 보다 화학이 훨씬 재미있었고 화학Ⅰ·Ⅱ까지 훑고 나니 이 분야를 전공해야겠다는 결심이 섰습니다. 희망 전공 때문에 고민 중인 고교생들이 있다면 관심 분야를 집요하게 파고들라 권하고 싶어요. 나도 하루 10시간씩 과학만 집중한 덕분에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분야를 찾았지요.”
카이스트에서 주최한 캠프에 참가해 희망 전공을 탐색하는 행운도 얻었다. “화학과와 화학공학의 차이 같은 대학의 세부 전공 분야를 깊이 있게 알게 됐어요. 덕분에 순수 연구보다는 실용학문인 공학 분야가 내 성격에 더 맞는다는 결론을 내렸지요.” 이를 계기로 화공분야 엔지니어를 인터뷰하거나 관련 책을 찾아 읽으며 진로 탐색도 꾸준히 해나가는 중이다.
공부에 탄력이 붙고 진로가 정해지니 학교생활에 자신감이 생겼다. 교내 경시대회, 팀별 탐구활동, 프로젝트 학습발표대회까지 힘닿는 대로 참가했다.
동아리 활동에도 열심이다. “수학문제 만드는 동아리인데 다들 열정적으로 참여합니다. 기발한 문제를 출제하려고 기를 쓰고 공부하며 서로 배우고 가르치는 분위기죠. 우리가 만든 수학 문제는 해답지까지 만들어 필요한 학생들에게 나눠주고 있어요.”
대입 마라톤 경주에서 지치지 않기 위해서 페이스 조절도 영리하게 한다. 공부 슬럼프가 찾아오면 좋아하는 게임을 하며 잠시 숨고르기를 한다고.
고교생활 비법을 묻자 홍군에게서 재미있는 답이 돌아왔다. “인사를 잘하는 게 중요해요. 선생님이든, 선배든, 친구든. 인사를 잘하면 누구나 호감을 갖지요. 내 경험상 뜻밖의 기회도 찾아옵니다. 인사부터 열심히 해보세요.” 곱씹어볼 한마디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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