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영화가 등장했다. 한국 영화에서 한 번도 등장해본 적 없는 여성느와르다. 감독은 영화 <사이코메트리> 각본을 통해 스토리텔러로서의 재능을 입증했던 신예 한준희 감독. 그리고 두 여주인공은 김혜수와 김고은이다. 섹시한 매력은 철저히 배제한 채 중성적이고 쓸쓸한 느낌의 캐릭터로 등장하는 두 여배우. 감독과 두 배우는 쓸모 있는 사람만 살아남는 차이나타운의 비정한 하루하루를 스크린 속에 가슴 먹먹하게 담아냈다.
생존의 가치
영화는 차이나타운이라는 특정된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들만의 생존법칙을 담아낸다. 쓸모에 따라 철저하게 버려지고 지워지는 곳. 식구는 될 수 있으나 가족을 가질 수는 없는 곳. 하지만 사회 구성원의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은 그곳 밖에는 갈 곳이 없어서 그곳의 사람들끼리라도 기대어 살고 싶어서 꾸역꾸역 차이나타운으로 모여든다.
과거도 존재하지 않고 자신의 진짜 이름조차 모르는 두 여주인공은 세상에서 버려져 본 경험이 있기에 또 다시 쓸모없는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서 악착같이 살아남는다. 그러는 사이 성별, 웃음, 말, 감정, 생기까지 잃어간다.
배우 김혜수
화투판의 꽃 정 마담, 섹시한 금고털이 도둑, 비정규직 미스 김 등 어떤 캐릭터와 만나도 실망을 주는 법 없이 지켜보는 즐거움을 선사해왔던 배우 김혜수. 이번에 그녀가 선택한 역할은 그녀로서도 조금 도전적인 일이었을 <차이나타운>의 엄마 역이다. 하얗게 센 머리와 주근깨 가득한 얼굴, 보형물로 덩치를 키운 모습은 우리가 한 번도 마주해 본 적 없는 김혜수의 모습이다. 하지만 배우 본연의 카리스마에 강렬한 캐릭터의 색이 입혀지니 그녀는 한층 더 무게감 있는 모습으로 스크린을 압도한다.
차이나타운의 대모를 생각하자 김혜수 외에는 대안이 없었다는 한 감독의 설명처럼 그녀는 원래부터 엄마였던 사람처럼 마우희 역을 제대로 소화해 낸다. 일영(김고은 분)을 보며 젊은 날의 자신을 떠올리는 마우희. 그녀를 보호하려다 운명의 대물림을 감지하고 처연하게 준비하는 그녀. 그녀는 엄마 마우희 역을 통해 스스로가 충무로에서 얼마나 쓸모 있는 배우인지를 거침없이 증명해낸다.
내일이 기대되는 김고은
영화 <은교>, <몬스터>가 그녀가 가진 필모그래피의 전부다. 하지만 그녀는 자기표현이 적고, 대사도 많지 않은 일영 역할을 제대로 표현해 낸다. 선택해서 태어나는 삶은 없지만 태어나고 나면 얼마나 애를 쓰며 살아내야 하는지, 생존을 갈망하는 인간의 욕망을 온몸으로 표현해낸다.
엄마의 삶을 대물림 하는 일영. 지하철 사물함 10번에서 발견돼 이름조차 일영이었던 그녀는 끝끝내 이 땅에 뿌리내릴 호적을 얻고, 일과 식구들을 건사하며 비정하고 냉혹한 차이나타운의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표정과 눈빛만으로 일영의 모든 것을 표현해내는 배우 김고은. 앞으로 그녀가 들려줄 이야기들을 더욱 기대하게 만드는 영화다.
이지혜 리포터 angus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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