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똘끼’ 있고 잘 노는 아이. 친구들이 최세엽군을 일컫는 말이다. “뭔가를 할까, 말까를 결정짓는 잣대는 재미예요. 재미있겠다 싶으면 모든 에너지를 쏟습니다.” 수시 원서 접수를 앞두고 고3의 가장 힘든 터널을 통과중인 최군의 표정은 해맑고 당당하다.
대학 가기를 지상 과제로 삼아 스펙 쌓으며 공부하랴 건조하게 고교 생활을 보내는 또래들과 달리 그는 고교 시절을 원 없이 즐겼다며 씩 웃는다.
운동 팔방미인이 만든 익스트림 스포츠 동아리
“운동 마니아예요. 어릴 때부터 부모님 졸라서 양궁, 농구, 축구, 야구, 배드민턴, 볼링, 수영, 태권도, 동양 무예까지 골고루 익혔어요.” 운동으로 다져진 그는 키 186cm에 운동 신경이 좋고 날렵하다.
자연스럽게 익스트림 스포츠에 관심을 갖게 됐고 뜻이 통하는 친구들을 모아 동아리까지 만들었다. “자전거 묘기, 보드 타기에 관심 있는 아이들이 많더군요. 컴컴한 PC방에서 게임하는 것 보다는 여럿이 땀 흘리며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풀면 좋겠다 싶었죠.”
자전거 앞 바퀴 들고 타거나 뒤로 가기 같은 자전거 묘기와 멋진 포즈로 보드 타는 법 같은 각자의 기술을 전수하며 동아리회원들끼리 신이 났다. “학교 축제 때 우리 동아리가 주목을 받았어요. 익스트림 스포츠 묘기를 선보이고 관람객을 위한 체험 코너를 운영해 박수를 받았습니다.” 2년간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즐거운 추억거리도 차곡차곡 쌓았다.
재미난 이벤트, 즐길 거리를 만들어 내는 DNA가 남다른 최군. 허나 부모님 성향과는 정반대라 사춘기 시절 자잘한 갈등을 피할 수 없었다. “부모님은 조용히 책 읽는 거 좋아하는 정적인 분들이세요. 진득하게 책상 앞에 앉아 있지 못하고 틈 만 나며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다니는 외아들 때문에 속앓이를 하셨죠.”
그러다 최군이 창의미술을 시작하면서 정서적 공감대를 넓혀나갈 수 있었다. “매주 자유롭게 그린 그림을 가지고 미술학원 원장님께서 부모님과 상담하며 내 심리 상태, 성향을 객관적으로 해석해 주셨어요. 덕분에 자유분방한 아들의 기질을 부모님이 인정하게 됐지요.”
중학교 시절에는 공부와 담을 쌓고 지냈다. “반 꼴지도 해봤어요(웃음). 그러다 중3 담임 선생님이 공부 멘토-멘티를 맺어준 덕분에 똘똘한 여학생들에게 공부를 배우게 됐지요. 공부는 읽는 게 아니라 외우는 거라는 걸 그때 처음 깨달았고 친구가 일러주는 대로 공부하니까 30~40점대를 맴돌던 성적이 80~90점대로 급상승했어요. 덕분에 공부법을 터득했지요.”
고2 때 시작한 디자인 공부
고교생이 되고 나니 ‘대학 전공은 뭘 선택해야 하나?’, ‘내 적성은 뭔가?’를 자문하게 됐다. “처음에는 광고 제작자란 직업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는데 점점 마케팅 분야로 관심이 옮겨갔어요. 그러다 제품을 파는 것 보다는 아예 제품 내가 직접 디자인하면 더 재미있겠다는 생각에이 들더군요.”
고2 여름방학을 앞두고 산업디자인을 공부하고 싶다는 속내를 부모님께 털어놓았다. “처음엔 펄쩍 뛰셨어요. 운동을 좋아하니 체대라면 모를까 미대는 뜬금없다는 반응이셨죠. 미대 입시를 준비하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부모님을 끈질기게 설득했어요. 한번 도전해 보고 싶다고.”
곧바로 미술학원에 등록해 선긋기, 명암 표현 같은 그림의 ABC부터 익혔다. “집중력 없는 내가 4시간 꼬박 앉아있어도 지루한 줄 몰랐어요. 그림의 구도와 발상이 창의적이라는 칭찬을 받으니까 더운 신이 났죠.”
그림 실력이 쌓이자 친구들끼리 팀을 짜 각종 미술 공모전에 꾸준히 도전하는 중이다. “떨어져도 개의치 않고 계속 응모하고 있어요. 산업디자인은 조형미와 기능성을 모두 갖춰야 해서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여러 분야 지식을 두루 알게 되요.”
교내 모형자동차대회에 참가한 것도 최군의 엉뚱함과 호기심이 한몫했다. “고무줄 탄성을 이용해 모형자동차 속도를 겨루는 대회인데 발명반 등 쟁쟁한 팀을 제치고 우리가 2등을 했어요. 자동차 바퀴의 폭을 넓힌 게 주효했죠. 운도 따랐고요.”
‘경험의 점’들을 모아 ‘진로의 선’을 긋다
현재를 충실히 만끽하며 자신의 미래를 디자인해 나가는 게 최세엽 스타일의 사는 법이다. “남이 하는 방식을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내 방식대로 사는 걸 터득했어요. 점수 1~2점 올리는 것보다는 직접 보고 만지며 경험하는 게 내게는 훨씬 중요해요. 초등시절에는 로봇에 미쳐 프로그래밍까지 마스터했어요. 중학교 때는 원 없이 놀면서 취미 삼아 창의미술을 꾸준히 했지요. 이런 경험들이 자양분이 돼 지금은 산업디자이너라는 인생 목표를 찾았고요. 성적에 주눅들 필요 없어요.” 인생의 점들을 찍어 선을 긋는 법을 터득한 최군만의 무기는 자신감이었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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