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아직 달려야 할 길이 많다
지난 수요일 늦은 저녁, 행신동에 위치한 북 카페 ‘오늘은 쉬어야지’에서는 특별한 강연이 있었다. 매년 60~90일 동안 세계를 오로지 자전거 하나로 여행을 떠나는 70대 청춘 이건명 씨(70세)의 여행기를 듣는 시간이었다. 은퇴 후 ‘삶의 쉼표’와 ‘행복’을 찾고 싶었다는 이건명 씨. 두 바퀴만으로 세계를 누비는 그의 리얼 자전거 여행기를 들어보았다.
이난숙 리포터 success62@hanmail.net
자전거와 친해진 계기는
1963년쯤 이었나. 아버지께서 일제 미야다 자전거를 사주셨다. 당시 아버지가 경찰과 관련된 일을 하셔서 기마경찰대 승마분소 등에서 말을 타보기도 했다. 자전거와 승마 외에도 학창시절부터 다양한 스포츠를 즐겼는데 자전거 안장에 앉으면 마음이 편하고 좋았다. 따지고
보면 자전거 구력이 50년이지만 요즘 자전거를 가장 많이 타는 셈이다.
자전거 세계여행에 대한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됐는지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일의 특성상 늘 넥타이를 매고 정장을 차려 입어야 했다. 또 근무 시간 내내 긴장도가 높다보니 늘 딱딱하게 굳어 있는 생활을 했다. 수 십 년 공직생활을 끝내고 제일 먼저 자유와 여유를 즐기고 싶었다. 그래서 은퇴 후 패키지여행도 따라가 보고 이런저런 형태의 여행을 많이 가봤지만 결론은 자전거여행이 가장 생산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자전거를 해외로 처음 갖고 나간 것은 2008년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로 떠난 여행이다.
자전거로 세계를 돌다보면 특별한 느낌이 있을 것 같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1,700km에 이어 유럽사이클리스트연맹(www.ecf.com)에서 구축한 총 12개의 자전거여행 코스(Eurovelo) 중 아름다운 성곽과 풍경이 많다는 Eurovelo6를 자전거로 달렸다. 박물관이나 뮤지컬, 클래식 음악 공연장 등 테마를 정해 여행을 하는데 아마 자동차로 여행을 하면 구석구석 가고 싶은 곳을 마음껏 다니지는 못하지 않을까. 작은 동네나 좁은 골목길까지 다 다닐 수 있는 것이 자전거 여행의 매력이다.
유럽은 자전거 전용도로, 대중교통과의 연계, 자전거 보관소 등 자전거문화가 발달돼 있어서 자전거 여행자가 상당히 많다. 자전거로 달리다 작은 마을의 민박에서 머무는 맛은 느껴보지 않으면 모른다. 정겨운 마을 풍경이며 소박한 아침식사를 즐긴 후 또 다시 페달을 밟아 또 다른 마을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감동이다.
또 하나, 비움의 철학을 배우게 된다. 처음엔 준비해간 속옷을 매일 갈아입고 빨고 했지만 나중엔 그것도 힘이 들어 아예 속옷을 며칠씩 입고 버렸다. 그랬더니 짐이 가벼워지더라. 거기서 생활에 불필요한 물건을 하나씩 버리고 비우는 교훈을 얻게 됐다.
자전거 여행을 위한 사전준비도 많이 필요할 것 같다
미국의 GPS 전문업체 ‘가민’에서 만든 지도가 있는데 숙소, 박물관, 시청, 터미널 등 상세하게 나와 있다. 이 지도를 컴퓨터에 넣고 내가 생각하는 루트를 만든다. 그리고 수시로 블로그나 신문 방송 트래블 채널을 살핀다. 이것을 토대로 나라별로 폴더를 만들고 또 여기에 음악 미술 등 작은 파일로 분류해 계속 자료를 정리해서 데이터베이스를 만든다. 30~60일 여행을 위해 1년 이상의 준비를 한다. 그리고 철저하게 현지 식사를 한다는 것이 내 여행원칙 중의 하나다. 음식도 그 나라의 문화 아닌가. 또 하나는 체력이다. 자전거 여행은 비와 바람을 고스란히 맞으면서 하루 종일 똑같은 길을 지루하게 달려야 하는 일도 있고 언덕길만 지속될 때도 있다. 그런 모든 준비가 완벽하게 되어야 자전거 여행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주로 유럽으로만 여행을 떠나는 이유가 있는지
품위 있는 노인의 삶을 위한 ‘7-up’이란 것이 있다. 그중에 ‘show-up’이란 말이 있는데 집에만 칩거하지 말고 회의나 모임에 부지런히 참석하는 말이다. 나도 은퇴 후 친구들과 모임을 자주 가졌는데 만나면 늘 화제가 뻔했다. 애들 얘기, 병원 얘기(웃음). 주변 사람 대부분 60대만 넘어도 뭐 지금까지 잘 살아왔는데 하는 굳어버린 생각을 갖고 있지만 나는 그런 생각을 버리고 싶었다.
새로운 필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고 하루하루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유럽 선진국에서 배울 것이 많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유럽도 외형적으로 우리나라보다 못한 곳도 많지만 내가 말하는 것은 그 사람들의 정신적 선진화를 배우고 싶다는 거다. 유럽 사람들의 생활은 디테일하다. 물질만능주의인 우리와 달리 고조, 증조 때 지은 집에서 살면서 섬세하게 삶을 즐길 줄 안다. 나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선진화된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지 알고 싶어서 유럽여행을 떠난다. 다녀오면 내가 이곳에서 충족시키지 못했던 2%를 채우고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다음 여행지는 어디인가
6월 터키 이스탄불로 떠난다. 터키는 무슬림의 나라이지만 이슬람이 탄생되기 전에 기독교가 번성했던 나라다.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출발해서 제1의 전도지로 도착한 곳이 터키의 콘야였고, 산타클로스의 탄생지도 터키의 뎀네라는 지방이다. 곳곳에 신약에 나오는 성지가 많은 이스탄불을 보고 돌아올 계획이다. 나는 지금이 내가 산 삶 중에서 가장 행복하다. 아직 궁금한 것도 많고 알고 싶은 것도 많아서 밤 12시 이전에 자는 것이 아깝다.(웃음) 아직 달려야 할 길이 많다는 건 행복한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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