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석의 세계지리산책 : 레반트④ 홈스(Homs)

지역내일 2015-07-18

홈스는 다마스쿠스의 북쪽 160km, 알레포의 남쪽 125km 레바논의 국경근처에 있는 인구 70만명의 도시이다. 오론테강이 수원(水源)이다.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던 곳이고, 480m의 고원지대에 있다. 그리스의 지리학자 스트라보가 다녀갔고, 오론테강 유역에 천막을 짓고 사는 사람들이라는 기록을 남겼고, 이븐바투타는 1359년 다녀갔고, 홈스에는 큰 시장이 있고, 이슬람인 들이 살고 있다는 상세한 기록을 남겼다. 14세기의 여행자 중에 폴로(1254-1324)는 베네치아 사람이고, 바투타(1304-1368)는 투니지의 탕제르 사람이다. 비슷한 시대에 비슷한 지역을 여행하고 폴로는 ‘동방견문록’ 바투타는 ‘여행기’라는 불후의 역작을 남겼다.
 
홈스의 두 가지 보물
시리아를 관광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홈스를 찾는다. 두 개의 문화유산 때문이다. 하나는  크락 데 슈발리에 성(Krak des Chevaliers)이고, 또 하나는 팔미라의 유적이다. 두 개 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슈발리에 성은 홈스의 서쪽 40km 레바논 국경근처에 있고, 팔미라 유적은 홈스의 동쪽 100km, 시리아 사막의 한가운데 오아시스에 자리 잡고 있다. 대단한 문화유적이다.  ‘팔미라 유적’은 기원전 2천년부터 동서양을 잇는 상인들의 도시였다. 중국, 인도, 페르시아, 로마를 연결하는 무역의 중심지였다. 오랜 세월로 많이 훼손됐지만, 상당히 잘 보존되어 있다. 유적의 한 가운데 1100m의 중앙 도로에 늘어선 석주들은 당시의 도시의 규모가 어떠했고, 얼마나 융성했는가를 가늠케 한다. 기원전 44년부터 272년까지 전성시대였던 것으로 보인다. 로마와 비잔티움의 지배도 받았고, 이 지역을 지나간 어떠한 전쟁도 피하지 못했다. 그리스, 로마, 페르시아, 아랍의 문명이 혼재되어 있다. 세계적인 관광지 팔미라는 내전으로 관광객보다는 난민이 많다. 아직도 치안은 완전히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팔미라는 인구 5만명이 사는 오아시스이다.
 
십자군원정과 슈발리에 성
슈발리에 성은 십자군원정 때 세운 성이다. 중세시대의 성이 여러 개 있다. 기독교인은 성채를 쌓아 지역을 지키고자 했다. 기독교인의 수는 적고, 기독교인의 군인도 적었다. 따라서 탄탄한 성채를 쌓아서 방어할 필요가 있었다. 성채가 포위된다고 해도 3~4개월만 버티면 유럽에서 원군이 도달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유럽 원군이 온 일은 없다. 서방의 언론영향으로 이 지역이 기독교 지역인 줄 알고 있지만, 아니다. 레반트 지역은 기독교가 지배한 역사보다는 이슬람이 지배한 역사가 깊고 길다. 레반트 지역을 세계사에 유명하게 만든 것은 십자군원정이다. 8차에 걸친 십자군 원정이 있었지만, 이 지역을 온전히 지배하지는 못했다.  1차 십자군원정 때 단 한번 성지 예루살렘을 1099년 탈환했다. 이슬람의 술탄 살라딘은  88년 동안 십자군이 지배하고 있던 예루살렘을 1187년 탈환했고, 줄곧 이슬람이 지배하게 됐다.
 
무력에 의해 함락된 적 없는 성
8차에 걸친 십자군원정군의 제후들은 대부분 유럽으로 돌아갔다. 당시 축성한 성채는 현재 남아있는 것만 해도 142개나 된다. 당시 십자군은 주축세력이 있는 것이 아니고 제후들의 연합 군대이었다. 크락 데 슈발리에는 병원기사단이 건설한 성채이다. 이 성채가 유명한 것은 외형이 아름답고 완전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고, 중세시대의 건축양식을 보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1140년에 축성을 시작하여 1170년에 완공했다. 지진으로 부분적으로 파괴됐지만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칼릴산 750m 위에 건설됐다. 외적의 접근을 막기 위해 내성과 외성 사이에 해자와 성벽을 두었다. 성의 주변에 10m깊이의 해자가 있고, 성벽을 기어오르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가파르다. 외부와 내부를 잇는 도개교를 들어 올리면 외부와는 완전히 차단된다. 성의 길이는 1500m에 달하는데 1차방어선이 무너지면 안쪽으로 2차방어선이 구축됐다. 

1187년 예루살렘이 이슬람에게 함락된 이후에도 크락 데 슈발리에는 100년 동안에 걸친 십자군의 거점이 되었다. 한 번도 무력에 의해 함락된 일이 없다. 성채에는 2천명의 병력이 5년간 버틸 수 있는 물과 식량을 비축 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1271년 말무크의 술탄 바이바르스는 무려 20배에 달하는 병력으로 성채를 36일 동안 포위하고도 함락하지 못하고, 거짓편지를 보내서 성문을 열게 해 함락하긴 했다. 그러나 결코 무력으로 한 번도 함락되지 않은 성이다. 그 후 다시 기독교가 다시 홈스에 상륙한 것은 19세기 말 산업혁명으로 무장한 영국과 프랑스의 군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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