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햇살이 유난히 따사롭던 날, 양재동에 위치한 ''양재노인복지관''을 찾았다. 정문 입구에 붙어있는 ''입춘대길(立春大吉)''이라는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아~ 오늘이 입춘이구나!'', 그 글씨 앞에 서니 별 까닭 없이 어디선가 봄바람이라도 불어온 듯 몸과 마음이 훈훈해진다.
김선미 리포터 srakim2002@hanmail.net
우리 가락과 장단에 맞춘 생활체조
5층 ''푸른터''로 올라가니 빨간색 도포와 초록색 허리띠, 거기에 하얀 버선까지 갖춰 신은 어르신들이 리포터를 기다리고 있다. 맞은 편 벽면에는 대형 거울이 설치돼 있고 길을 잘 들인 마룻바닥은 깔끔하게 정돈돼 있다. 강현숙 강사의 지시에 따라 일렬로 정렬하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마치 대회 출전을 앞두고 차례를 기다리는 어린아이들처럼 살짝 긴장한 모습이다.
우선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가요 ‘찔레꽃’에 맞춰 워밍업 동작을 시작한다. 노래에 맞춰 신명나는 춤사위가 이어지더니 소고를 치면서 가끔씩 추임새도 넣는다. “얼쑤! 얼쑤!” 우렁찬 목소리가 교실 가득 울려 퍼진다. 강사가 어르신들의 몸동작 하나하나를 눈여겨보면서 교정을 해준다. 여가활동을 통해 건전한 노인문화를 창출하고 있는 ‘양재노인복지관’의 대표적인 프로그램 ‘덩더쿵 체조반’의 수업광경이다. 강 강사는 "우리 가락에 맞는 한국무용을 체조와 접목해 새롭게 만들었다"면서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생활체조라고 소개했다.
재미와 운동효과 겸비한 ‘덩더쿵 체조’
다음은 탈을 쓰고 공연하는 가면극 산대놀이. 서울과 경기지방에서 전승되었다는 산대놀이는 승려의 타락과 양반의 몰락을 극화함으로써 봉건사회의 상층 계급과 가부장적인 사회 현실을 비판하는 탈놀이라고 한다. 어르신들은 구성진 장단에 맞춰 어깨를 들썩이며 거드름춤을 춘다. 이어 건드렁 타령이 나온다.
강 강사는 "건드렁 타령은 경기민요의 하나로 서울과 경기지역을 중심으로 불린 노래"라면서 서울 인근에 사는 처녀들이 시장에 특산물을 내다파는 모습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어느덧 어르신들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히고 얼굴은 발갛게 상기돼 있다. 초급반과 중급반으로 구분해 진행하고 있는 ''덩더쿵 체조반''은 중급반인 경우, 25명의 회원이 있으며 그중 남자어르신은 단 네 명이라고 한다.
반장인 박병룡(90세) 어르신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복지관에 나와서 소일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덩더쿵 체조가 재미도 있고 운동효과도 뛰어나 벌써 5년째 계속하고 있지요"라고 소감을 전했다.
''어린이집''이나 ''양로원'' 다니며 이웃사랑 실천
이매자(72세) 어르신은 "''덩더쿵 체조반''은 작년 8월에 열렸던 ''서초구청장배 전통무용 경연대회''에 참가해 당당히 우수상을 차지했지요. 현재 우리 팀 평균연령은 70대 후반이지만 열정만큼은 20대 못지않게 뜨겁답니다"라면서 지역 내 ''어린이집''이나 ''양로원'' 등에서 정기적인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국문과를 전공한 강현숙 강사는 멋들어진 우리 가락과 장단이 좋아 이 일을 시작했고, 그 후 20여 년 동안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내며 한길만을 걸어온 베테랑 춤꾼이다. 그녀는 "어르신들이 매사에 얼마나 열심이신지 제가 오히려 많은 것을 배우고 있어요. 하루에 두 동작씩 익히다보면 어느새 한 작품이 완성되고, 그 작품으로 여러 기관들을 다니며 이웃사랑도 실천하고 있지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이제는 라인댄스로 수업을 마무리 할 시간. 귀에 익은 옛 가요 ''기타부기''가 흘러나온다. ''인생이란 무엇인지 청춘은 즐거워/ 피었다가 시들면 다시 못 필 내 청춘/ 마시고 또 마시어 취하고 또 취해서/ 이 밤이 새기 전에 춤을 춥시다/ 부기부기 부기우기/ 부기부기 부기우기 기타부기'' 신나는 음악에 맞춰 엉덩이를 흔드는 어르신들의 표정이 봄 햇살처럼 화사하게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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