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읽기’ 가르치는 세현고등학교 이강호 교장
모두가 1등인 ‘좋은 학교’ 만들고 싶어
이른 아침 시간에 학생들에게 <논어>를 가르치는 교장이 있다. 방과후학교 수업료를 받는 것도 아니고 지각을 했다고 벌점을 주는 것도 아니다. 오롯이 <논어>를 읽고 공자의 가르침을 전수하자 듣는 학생 수가 점점 늘어났다. 회를 거듭할수록 인기를 더해갈 뿐 아니라 학생들이 학교 오는 것이 즐거워졌다. 세현고등학교에 불어 닥친 새로운 바람, 이강호 교장의 논어 읽기 반을 소개한다.
이른 아침, <논어>를 읽는 아이들
아침 7시 30분 수업이 시작되기도 전, 세현고등학교 음악실 1층에서 아이들의 <논어> 읽는 소리가 새어 나온다.
“자왈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아, 유붕이 자원방래면 불역락호아, 인부지이불온이면 불역군자호아(공자가 말씀하시기를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멀리서 벗이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배운다는 뜻의 습은 본받는다는 뜻으로 선각자(先覺者)의 하는 바를 본받아야 선(善)을 밝혀 알아서 그 근본을 회복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세현고등학교 이강호 교장이 직접 가르치는 ‘행복한 논어 읽기’ 수업 모습이다. 이 수업은 이강호 교장이 세현고등학교에 부임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지식이 많으면 편리하기는 해요.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성이요 배려라고 생각합니다. 인성을 기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논어>를 읽는 것입니다.”
수업은 <논어>의 한 구절 한 구절을 읽으면서 일상생활에 많이 쓰이는 한자가 나오면 단어를 설명하고 역사적 배경과 공자의 제자, 중국의 철학자를 통해 인생의 지혜를 가르친다. 학생들에게 자기계발과 리더십에 관한 의미를 생생한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논어>를 강의하기 위해 이 교장은 4년 전부터 <논어>를 읽기 시작했다. 공자 영화와 공자를 배경으로 한 50회 드라마도 시청했다. 도올 김용옥 교수의 ‘공자 강의’ 65회를 모두 들었고 공자와 관련된 책도 10권 이상 읽었다.
“가르치면서 가장 많이 배우게 됩니다. 처음 공자를 읽을 때는 설렁설렁 읽었는데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다시 읽고 또 읽게 되는 거죠. 강의를 들어주는 모든 아이들이 제 스승이며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35명으로 시작 67명으로 마감
처음 <논어> 강독 반을 개설했을 때 참석하는 아이들은 35명. 그것도 학생부에 기록해준다는 유혹에 넘어간 상위권 학생들이었다. 그러나 올해 58명으로 문을 연 ‘행복한 논어읽기 반’은 점차 늘어나더니 67명으로 마감을 했다.
이 수업은 1교시가 시작되기 전 아침 7시 반부터 8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진행된다. 수업을 이른 아침 그것도 매일 하는 이유는 학생들의 방과후 수업과 겹치지 않는 시간대가 아침 밖에 없었고 또 <논어>의 성격상 아침에 읽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논어> 한 편 다 읽는데 하루 30분씩 58주라는 시간이 걸려 한 학기 동안 <논어> 한 권을 다 읽으려면 매일 수업을 강행해야 했다.
이른 아침 시간에 아이들이 <논어>를 읽으러 올까 싶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이 강좌가 인기가 있는 이유는 이 교장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뭔가를 해주고 싶은데 교장이 학생들에게 직접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요. 교장은 교사들을 통해서 아이들에게 전달해야 하는데 그런 과정으로 철학이 들어가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죠. 돈 들이지 않으면서도 다른 선생님들을 번거롭게 하지도 않고 교장이 직접 할 수 있어서 아침 <논어> 반을 운영하게 됐습니다.”
그렇다고 이 교장이 <논어> 강좌를 들은 아이들에게 하루아침에 변화를 기대하는 건 아니다. 다만 아이들이 <논어>를 통해 인격을 연마하고 스스로 강해짐으로써 친구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치길 바랄 뿐이었다. 이런 이 교장의 바람이 아이들에게 전해졌을까. <논어>를 읽은 아이들은 말을 할 때도 군자처럼 친구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교육의 효과를 체험했다고.
“요즘 입시에서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것이 ‘인성’입니다. 대학에서 말하는 ‘인성’은 리더십, 잠재력, 적극성, 공동체 의식, 협동 등으로 평가합니다. 이는 논어에서 말하는 군자의 도와 맥락을 같이 합니다.”
다양한 아이들이 도와가며 모두가 행복한 학교
이 교장은 학생들에게 논어를 통해 군자의 도와 발표력을 길러주고 싶었다. 입만 열면 욕을 하거나 스마트 폰의 영향으로 문장을 연결시키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발표력을 길러주기 위해 강당에서 전교생을 모아 놓고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기회도 만들어줬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도 학생들이 후배들에게 직접 설명하게 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발표도 하고 리더로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기회도 함께 준 것이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이곳에서 <논어> 반이 소개됐고 그런 이유로 올해 신입생이 대거 몰려오게 됐다. 아이들에게 이 교장의 철학이 그대로 전달된 셈이다.
“아이들에게 좋은 학교가 뭐냐는 질문을 던져요. 선풍기 달아주고 에어컨 빵빵 나오면 좋은 학교냐, 그건 아니라는 거죠. 공부를 잘하는 아이나 못하는 아이나 다양한 아이들이 도와가며 생활할 수 있는 학교가 좋은 학교라 생각합니다. 공부 못한다고 찌질이라 놀리지 않고 그 아이가 잘 하는 것을 칭찬해줄 수 있는 즐겁고 행복한 학교, 모두가 1등이 되는 그런 학교를 만들고 싶습니다.”
송정순 리포터 ilovesjsmor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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