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20일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첫 환자가 발생한 이후 한 달이 지났습니다.
우리 생활 속에 ‘메르스’란 단어가 일상화된 요즘입니다.
매일 아침 뉴스를 듣고, 또 검색하며 더 이상 메르스가 확산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누구나 같을 것입니다.
메르스 한 달, 우리 이웃에게 그전엔 생각지도 않았던 많은 일들이 생겨났습니다.
메르스로 인한 이런 일 저런 일에 대해 이웃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송파강동광진 내일신문 취재팀
많은 사람들의 걱정, 전화와 문자 넘쳐
서울에 확진자와 격리자 수가 늘어가면서 백수정(가명, 47·잠실동)씨는 부쩍 늘어난 안부 전화와 문자 받기에 바쁘다. 그 시작은 고등학교 동기들의 모바일 커뮤니티. 지방 고등학교를 졸업했기에 서울에 사는 동기들이 그다지 많지 않은 상황. 친구들의 걱정 섞인 글들이 쏟아졌다. 진심이 느껴지는 따뜻한 글이었다.
다음으론 다른 지방에 사는 친척들의 전화가 수시로 걸려왔다. 처음엔 메르스 안부 전화가 많이 생소하고, 익숙하지 않은 분들의 관심이 낯설었다는 백씨. 하지만 통화를 하며 아이들을 비롯한 가족 전체를 걱정하는 말에서 그들의 공포와 염려가 고스란히 느껴졌다고. 몇 차례 전화를 받은 그는 이제 수시로 시댁과 친정에 전화를 드리며 가족의 무사함(?)을 알려드리고 있다.
“전화나 문자를 받으며 정작 우리는 메르스에 벌써 익숙해져버린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주위 사람들의 걱정과 관심 속에 항상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게 된 것 같아요. 그러면서 확진자가 새로 발생하는 곳에 사는 지인들에게 저 또한 안부 전화를 챙기게 됐습니다.”
우리에게 휴교란 없다?
메르스 때문에 송파구 상당수 유치원, 초등학교에 이어 중학교까지 하나 둘 휴교에 들어가면서 중딩들의 SNS가 바빠졌다. 이수윤(가명, 중3)양도 친구들끼리 최신 뉴스를 교환하고 동네에 무성하게 퍼진 각종 설(說)을 주고받았다. “00초등학교에 확진자가 나와서 2주간 휴교한데.”, “ㅁㅁ중학교도 어제부터 휴교래.” 단톡방과 페북마다 인근 학교들의 휴교 소식이 줄을 이었다. ‘이제 우리 학교도 곧... 앗싸!’
허나 웬걸? “6.25 전쟁통에서 피난 가서도 수업을 한 100년 전통의 학교다. 아직까지 의심 증상을 보이는 학생이 없는 만큼 우리는 휴교하지 않는다.” 학교의 최종 결정에 모두들 낙심천만이었다. 휴교 단꿈에 젖어있던 또래들과 애꿎은 ‘분노의 수다’를 쏟아냈다.
다음날, 옆 반에서 고열 증세를 보이는 학생 때문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단축 수업을 했고 개인위생을 철저히 하라는 특명이 떨어졌다. 휴교 기대감이 다시 모락모락 피어났다. 하지만 열이 났던 학생은 다행히 단순 감기로 판명 났고 ‘휴교 해프닝’은 막을 내렸다.
‘메르스도 우리 학교의 휴교 없는 100년 전통은 뚫지 못하는구나.’ 모든 학생들은 조용히 일상으로 돌아왔다.
격리자를 격려하자, 세상은 아직 살만 한 곳!
메르스 공포로 집밖 출입도 삼가고 문 앞에는 택배기사들이 놓고 간 박스만 가득한 생활이 몇 주째인 우연희(가명, 41·신천동)씨. 휴원으로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들 때문에 삼시세끼 챙기기에도 바빠 단지 내 이웃들의 안위까지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같은 아파트에도 격리자가 있다는 횡횡한 소문은 나돌고. ‘몇 동이다’라는 상세한 정보까지 엄마들 네트워크를 통해서 금방 퍼졌다. ‘상가에도 가지 말아야겠다’고 가족의 안위만 챙기는 속 좁은(?) 자신과 달리 우씨는 아파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에 감동을 받았다고.
‘누구라도 격리자가 될 수 있는 일이니 격리자 집 문 앞에 반찬을 가져다 놓던지, 격려문구라도 써 붙여보면 어떨까’하는 다양한 의견들이 줄줄이 올라왔던 것. ‘우리끼리라도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다 같이 잘 이겨내 보자’며 응원하는 글이 대부분이었다. 우리사회가 삭막하고 정이 없다고 하지만 아직은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이웃들이 훨씬 많은 것을 느낀 순간이었다. 우씨는 “메르스 공포로 몸과 마음이 움츠려졌었는데 세상은 아직 살만 한 곳이다라는 생각에 오랜만에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고 했다.
체온계를 들고 시작하는 하루
소소한 일에 동요가 많고, 소문도 빠른 여고. 안수정(가명, 48·둔촌동) 과학교사는 요즘 매우 분주하다. 아침 조회시간에는 학생들의 체온을 일일이 재고, 수업이 없는 시간에는 컨디션이 좋지 않은 학생들을 수시로 관리한다. 또 종례시간에는 아이들이 메르스에 대해 갖는 공포심을 줄이기 위해 여러 가지 과학적인 설명도 하고, 개인위생 교육을 철저히 한다.
그는 “아이들이 메르스에 대해 막연한 공포와 검증되지 않은 여러 가지 소문에 휩쓸릴까봐 걱정이 된다”며 “건강하게 메르스를 극복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연락도 없이 등교 시간이 늦어지는 아이나 열이 난다고 조퇴를 하는 학생을 대할 때는 본인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때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 학교에서는 학교 전체 소독, 각 복도와 급식실 앞 등 여러 곳에 세정제를 구비해 두었다. 보건실에서는 열이 있는 학생들에게 마스크를 지급하고 착용하도록 하고 있다. 또 학생들의 편의를 위해서 출결 관리, 야간 자율 학습실 이용 등에 융통성을 발휘하고 있다. "빨리 메르스가 사라져서 학교가 안정되고 학생들도 다가오는 기말고사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는 안 교사는 오늘도 아침 일찍 체온계를 들고 하루를 시작한다.
우리 동네에 있을 확진자로 불안감 커져
강동구에 사는 주부 한성호(42)씨는 메르스 때문에 요즘 불안해서 밤잠을 설친다. 자신이 사는 아파트와 가까운 다른 아파트에 확진자를 격리조치 하고 있다는 소식 때문이다. 늘 다니던 길에 확진자가 다녔을 생각을 하면 등골이 서늘해진다고.
그 소식을 접한 후 부터는 아이에게 반드시 마스크를 씌우고 개인위생에도 더 신경 쓰게 되었다. 그전에는 메르스가 심각하다고 해도 실질적인 체감을 하기 어려웠었는데 가까운 동네에 확진자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메르스에 대한 공포감이 더해지는 것 같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우리 동네 아닌 곳곳에 내가 모르는 확진자들이 더 많을 것 같다. 우리 동네에 확진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기 전에는 모르고 지나갔을 일을, 사실을 알고 나서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는 것 같다”면서 “확진자가 된 사람도 또 다른 피해자라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라는 생각만 해도 그들에게 따가운 눈총을 보낼 일은 아니라는 자성을 하게 된다”라고 말한다.
끊임없는 모바일메시지, 이제 거르는 능력 생겨
메르스 확진자가 한둘 생겨나면서 김미성(가명, 48·잠실동)씨의 스마트폰은 메시지수신알림음이 그치지 않았다. 어디에 메르스 환자가 거쳐 갔다더라, 메르스 확진자가 어디에 산다더라, 아버지가 확진자라 그 아이가 다니는 학원이 휴원이라더라...... 일명 ‘카더라’ 통신이 끊이지 않고 전달됐던 것. 설마 했지만 막상 내용을 보고는 덜컥 겁부터 났다는 김씨. 이웃과의 대화에서도 같은 주제의 내용이 오가며 막연한 두려움은 커져만 갔다.
하지만 막상 다음날이 되면 대부분이 ‘거짓’으로 드러난 내용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이제 SNS을 통해 떠도는 근거 없는 말에는 끄떡도 하지 않게 됐다고.
김씨는 “처음엔 모바일메시지만 봐도 동요된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냥 읽고 무시라거나 아예 글을 읽어보지 않게 됐다”고 했다. 또 그는 “아마 이번 일을 계기로 근거 없이 떠도는 모바일메시지를 대하는 스스로의 마음가짐도 크게 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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