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딸과 함께 백두대간 종주하는 강규상씨

“산행마다 한 뼘 더 자라고 강인해지는 아이를 느낍니다”

지역내일 2015-06-08

요즘 아이들은 주말이 없다. 연이은 학원 스케줄과 과제 준비, 시험 준비로 초등 고학년부터 주말을 반납하는 아이들이 태반이다. 그러다보니 부모가 자녀와 함께 취미생활을 하기도 여행을 가기도 쉽지가 않다.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면 상황은 더욱 여의치 않다. 이미 동굴로 들어간 아이에게 대화나 산책을 하자는 부모의 호소는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오기 십상이다. 그런데 여기 2주에 한 번씩 중학교 2학년인 딸과 등산을 하는 아빠가 있다. 성남시 분당구 동원동 소재 이우학교에 재학 중인 강다연양과 백두대간 종주를 하고 있는 강규상(49세)씨를 만나보았다.
전영주 리포터 jenny422yj@gmail.com

강규상


백두대간(白頭大幹)은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한반도의 가장 크고 긴 산줄기이다. 이 백두대간을 종주한다는 것은 아무리 남쪽에 한정한다고 해도 만만찮은 일일 것이다. 동네 뒷산도 정상은 오르기 쉽지 않은데 말이다.
“혼자서는 절대 시도하지 못할 일이지요. 아이 학교에 ‘백두대간’이라는 모임이 있습니다. 저희 아이와 저는 10기이구요. 한 기수 회원이 80명 정도입니다. 처음에는 버스 두 대를 빌려 70~80명이 함께 갔는데 최근에는 버스 1대 정도로 참여 인원이 줄긴 했습니다. 시간을 내서 꾸준히 참여하기가 쉽지는 않으니까요. 저도 정말 조정하기 힘든 회사일이 아니면 산행에 꾸준히 참여하려고 노력하는데 지금까지 80% 정도 함께 한 것 같네요.”
‘백두대간’이 산행하는 방식은 단거리 구간 종주. 백두대간 주요 봉우리를 42차로 나누어 2년에 걸쳐 정복하고 있다. 지난해 3월에 시작해 올해 10월까지 한 달에 두 번 정도씩 주말을 이용해 당일 코스, 혹은 때로는 1박 2일까지 여정을 이어나가고 있다.


2년에 걸친 대장정, 남다른 각오로 시작
전문가가 아닌 학생들이 산행을 하는 만큼 대간 봉우리 순서에 상관없이 초반에는 경사가 완만하며 등산 난이도가 평이한 산을 오른다. 강규상씨가 다연양과 처음 오른 수정봉도 그러했다. 남원 고기리에서 출발해 마을을 옆으로 끼고 오르는 평이한 코스였으나 가족과 동생들이 함께 한 산행은 죽죽 늘어져 선두가 8시간 주파한 코스를 후미는 10시간 만에 마쳤다.
“종주는 정해진 목표를 정해진 시간 안에 완수해야만 합니다. 성인들의 등반 속도보다 여유 있게 잡는다고 해도 학생들에겐 쉴 틈 없는 등반이지요. 둘레길을 걷는 산행과는 달리 체력 소모도 많고 힘들기 때문에 각오가 남달라야 합니다.”
최근 산행은 초반보다 강도가 훨씬 높아지고 있다. 새벽 1시경 출발해 5시경 목적지에 도착하는 코스라서 어둠을 헤치며 등반하다보면 등반 도중 일출을 맞는 일도 다반사다. 보통 15~19㎞의 코스를 마치고 오후 5시경 하산하는데 꼬박 12시간 정도 산을 타곤 한다. 제일 기억에 남는 산행은 지난 늦은 봄 올랐던 영취산 깃대봉이었다. 완만한 경사로 등반이 어렵진 않았지만 30도 가까운 낮 기온에 어른도 아이도 모두 지쳐있었다. 그런데 정상에 오르자 몇 학부모들이 배낭에서 아이스 바를 꺼내 모두에게 나눠주는 것이 아닌가. 깜짝 선물을 위해 무거운 짐도 마다않고 몇 시간이나 지고 올랐던 것이다. 지금도 정상에서 먹었던 아이스 바의 그 맛이 잊히질 않는다.


거리를 두고 산을 오르며 오히려 가까워진 부녀
딸과 함께 등산을 하면서 많은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눌 것이라는 리포터의 예상을 깨고 등반대의 후미를 담당하고 있어 딸과 거리를 두고 등반을 하고 있다는 강씨.
“옆에서 같이 산을 오르다보니 저도 모르게 자꾸 재촉을 하게 되고 보폭을 좁게 하라는 등 잔소리를 하게 되더라고요. 차라리 친구들과 재밌게, 오롯이 친구들끼리 의지하고 산을 오르라고 아이는 선두로 보내고 저는 후미를 맡았습니다. 뒤로 처지는 다른 집 아이들을 제가 보살피는 동안 아이는 다른 집 부모의 격려를 받으며 산을 오르는 거죠. 산을 오르는 동안 혼자 이겨내는 법도 배우고 함께 사는 법도 배우고요.”
영하 10도 밑으로 수은주가 떨어졌던 지난겨울 어느 날, 다연양은 추운 곳에서 도시락을 먹다가 급체를 했다. 설상가상 무릎까지 눈 속에 푹푹 빠지는 험한 산행이었지만 친구 부모님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때 딸아이가 전했던 말이 잊히질 않는단다. “산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오기가 생겨서 끝까지 가긴 갔는데, 아빠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더라고요.”


스스로 한계 이겨내는 딸의 모습 대견스러워
아토피가 있는 딸이 자연 속에서 건강을 챙겼으면 좋겠다는 마음 반, 대학 때 산을 즐겨 탔던 경험을 살려 아이와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을 만들고자 했던 마음 반으로 시작했던 백두대간 종주. 운동을 썩 좋아하지 않았던 딸아이지만 산행을 마칠 때마다 한 뼘씩 성장했고 그 속내를 아빠와 나눌 만큼 부녀 사이는 특별해졌다.
“새로운 환경에서 맞는 크고 작은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도 하고 친구들과 의기투합해 역경을 극복하기도 하죠. 추운 겨울 칼바람을 맞으며, 뜨거운 여름 묵묵히 땀을 흘리며 산을 오르는 과정에서 한계를 극복하고 내적 동기를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인내하고 끝까지 올라가야 내려갈 수 있지요. 오르막길이 힘들다고 뒤로 돌아 혼자 내려갈 순 없으니까요. 뒤로 처지면 서로 격려하며 함께 오르는 거지요.”
무덤덤하게 감상을 얘기하는 듯해도 딸아이에 대한 대견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강규상씨, 다음 달 드디어 설악산을 오른다며 각오를 다지는 그의 모습에서 여유가 느껴진다.
“길게 보고 가는 거지요. 점수 몇 점에 초조해한다면 자녀와 주말마다 산행을 할 순 없겠지요. 자신이 주체가 되는 삶을 아이가 누리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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