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 인생 플랜의 초안을 짜는 ‘진로’와 입시를 목표로 12년 공부를 결산하는 ‘진학’이 씨줄과 날줄처럼 촘촘히 만나 학생들의 진로진학이 입체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데 모두가 공감한다. 중학시절 진로 탐색이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진로 멘토’, ‘십대를 위한 인성 콘서트’, ‘꿈 찾는 십대를 위한 진로 노트’의 공동 저자로 자유학기제 연구학교로 지정된 신천중학교에서 알짜배기 진로 프로그램을 선보이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김현주 진로교육 부장을 만나 현장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행복진로캠프가 열리는 중1 교실마다 시끌벅적하다. ‘나도 셰프’ 시간에 모둠별로 테마 요리를 만들어 테이블 세팅까지 신경 써 근사하게 한상 차려내는 아이들의 표정이 해맑다. 담임교사와 학생들이 똘똘 뭉쳐 직업 맞추기 스피드 게임이 한창인 또 다른 반도 열기가 뜨겁다. 야전사령관처럼 김 교사는 캠프가 열리는 내내 교실과 운동장을 종횡무진 뛰어다니며 세심하게 학생들을 살핀다.
보여주기식 행사가 아니라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뿌듯한 경험으로 기억될 알찬 진로 프로그램을 선보이기 위해 그는 중1 담임들과 연구 동아리까지 만들만큼 애정을 쏟고 있다.
“진로교사는 학교마다 한 명밖에 없기 때문 사실 ‘독립군’입니다. 동료 교사들과의 공감대 형성, 팀워크에 진로 교육의 성패가 달려있지요. 그런 면에서 난 행운아입니다. 동료들과 호흡이 척척 맞으니까요.”
아이들을 변화시킨 ‘상담의 힘’
열혈 국어선생님으로 교과목에 자부심이 강했던 그는 고심 끝에 3년 전 진로교사로 ‘전업’했다. “교단 경력 31년차인데 줄곧 중3 담임을 맡았어요. 특목고, 특수목적고, 일반고 선택을 앞두고 갈피를 못 잡는 아이들에게 고입 정보를 주고 장래 진로의 방향성을 가이드해 줄 때마다 눈을 반짝이는 학생들의 모습이 내겐 기쁨이었습니다.”
해마다 3월이 되면 담임을 맡은 반 아이들과 치르는 그만의 ‘의식’이 있었다. 대여섯 명씩 팀을 짜 돌아가면서 방과후에 하루 날을 잡아 ‘끝장’ 집단 상담을 진행한다. “서로서로 속 이야기, 고민, 상처를 꺼내놓으며 친해집니다. 그러면서 앞으로 1년간 잘 지내자며 반 아이들끼리 똘똘 뭉치게 되지요.”
관심에 목말라하는 아이들의 허기, 상담의 힘을 잘 알고 있던 터라 2년여의 고민 끝에 진로교사로 변신했다. “진로교육은 직업을 나열하면서 정보를 주는 게 다가 아닙니다. 그 직업을 통해 무엇을 하고 싶은 지 본질적인 물음에 본인만의 해답을 찾아가는 겁니다. 즉 ‘자기 이해’가 가장 중요하지요.”
지금도 그가 중시 여기는 건 아이들과의 1:1 소통, 즉 상담이다. “상당수 학생들이 ‘나는 꿈이 없어요’, ‘취미도 특기도 잘하는 것도 없어요’라며 고민을 털어놓아요. 이런 아이들과 편하게 이야기 나누며 가능성을 함께 찾아 가는 게 내 역할입니다. 때론 의사, 변호사, 외교관처럼 목표가 뚜렷한 학생들도 만나요. 그러면 그 직업을 통해서 무엇을 하고 싶은 건지 본질을 건드려 주며 인생의 지도를 그려나갈 수 있도록 합니다.”
진로지도의 키포인트는 ‘자기 알기’
김 교사의 상담은 아침 8시부터 시작돼 점심, 방과후까지 수시로 진행한다. 한 달 전 미리 상담 예약을 해야 할 만큼 아이들의 방문이 줄을 잇는다고. 특히 고입 원서 쓸 무렵이면 상담이 폭주한다.
“아이들이 특목고에 강박관념이 있고 부모님 기대치에 못 미칠까 봐 내심 불안해 합니다. 우리 학교 특성상 상위권 그룹이 두터워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성적에 예민하지요. 자존감이 낮은 아이들도 의외로 많고요.” 그는 이젠 100세 시대라며 늘 마음의 ‘여유’를 갖고 앞으로 인생을 길게 보라고 어린 학생들을 다독인다.
그래서 아이들의 장점 발굴에 공을 많이 들인다. “교사가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수업이 아니라 아이들의 생각을 발표할 수 있는 자리를 많이 만듭니다. ‘나는 00를 잘한다’를 스스로 터득해 나갈 수 있도록요. 또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 사회는 협업 능력이 중요한 자질이기 때문에 모둠 활동을 의도적으로 장려하지요.”
학생, 학부모, 교사가 진로지도 ‘한 팀’
상담실 문은 학부모들에게도 열려있다. 학생 뿐 아니라 학부모들도 진로 멘토링에 목말라 하기 때문이다. “인생 선배로서 똑같은 엄마 입장에서 내가 두 아이를 키운 경험담을 많이 들려줘요. 부모 자식 간에는 세월이 흐를수록 ‘성적’이 아니라 ‘관계’가 남아야 한다고 늘 덧붙이죠. 보통 중3이 되면 대개 아이들 눈빛이 달라지고 의젓해져요. 본인들의 진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거죠. 학부모들에게도 조급해 하거나 닦달하지 말고 아이를 느긋하게 기다려 주라고 말하죠.” 고교 선택을 앞두고 고민하는 중3 학생, 학부모들에게도 진학의 다양한 변수를 짚어주며 가이드한다.
진로 시간은 반마다 매주 1시간.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은 주제, 활동하고 싶은 프로그램이 많은데 짧은 수업 시간이 안타까워 그는 늘 5분 전 미리 교실에 도착해 치밀하게 수업을 준비하는 억척교사다. 내실 있는 진로교육을 향한 그의 열정바이러스는 학생, 동료 교사, 학부모를 든든하게 엮어주는 에너지원이다.
“아이들의 갈증을 채워줬을 때 고마워하는 눈빛이 내 활력소입니다. 짜릿하죠. 그 보람 때문에 더 깊이 공부하고 더 많은 아이들을 만나려 합니다”라고 말하는 김 교사는 진짜 행복해 보였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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