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에 생명이 넘실거리는 오월이다. 나뭇가지 새순이 돋더니 어느새 시원한 그늘을 드리울 만큼 녹음이 짙어지고, 흙먼지 풀풀 날리던 땅에는 생명력 강한 풀들이 튼튼한 뿌리를 내렸다. 생명의 기운이 왕성한 요즘은 아이들에게 자연의 소중함을 가르치기에 더 없이 좋은 계절이다. 굳이 먼 생태공원을 찾아 나서지 않더라도 아파트 공터에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풀꽃이 지천으로 피었다. 김태주 시인이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고 노래한 풀꽃. 풀꽃과 함께하는 생태교육은 어떨까? 생태해설가 이정순 선생님과 함께 동네 한 바퀴 돌며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풀꽃의 이름과 재미난 이야기를 들었다.
봄이 왔음을 알리는 봄맞이꽃
아파트 화단에서 가장 먼저 만난 풀꽃은 하얗고 작은 봄맞이 꽃. 다섯 장의 꽃잎이 마치 하늘의 작은 별처럼 앙증맞게 생긴 꽃이다. 봄이 시작되는 4월에서 5월 사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풀꽃이다.
“봄을 맞이하는 꽃이라고 해서 봄맞이 꽃이에요. 참 예쁜 이름이죠. 작은 풀꽃들도 다 이름이 있어요. 이름 모를 꽃이라고 그냥 넘어가지 말고 이름을 불러보세요. 이름을 불러보면 그 꽃이 더 예뻐 보일 거에요”
앵초과인 봄맞이꽃은 두해살이풀이다. 비슷한 꽃으로는 크기가 작은 ‘애기봄맞이’와 높은 산 바위틈에 자라는 ‘금강봄맞이’가 있다.
같은 듯 다른 풀꽃 ‘꽃마리’와 ‘꽃바지’
아파트 담장 돌 틈에서 무리지어 핀 손톱보다 작은 파란색 꽃을 발견했다. 이정순 선생님은 선뜻 이름을 말하기 전에 꽃 모양을 유심히 살피더니 “이 꽃은 이름이 ‘꽃마리’에요. 여기 한번 보세요. 꽃이 피기 전 꽃잎이 돌돌 말려있는 거 보이시죠? 하지만 옆에 핀 다른 꽃은 꽃잎이 그냥 나오네요. 모양은 비슷하지만 이 꽃은 ‘꽃바지’라고 해요. 자세히 보면 두 꽃이 다른 걸 알 수 있어요”라고 말한다.
얼핏 보기에 꽃 색깔도 크기도 비슷한 두 꽃은 자세히 보니 그 차이가 눈에 들어온다. 꽃마리에는 작은 꽃 가운데 노란 동그라미 무늬가 뚜렷하고 꽃바지에는 노란동그라미가 없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역시 풀꽃은 오래 보아야 제대로 알 수 있다.
말발굽모양 ‘말냉이’ 주름무늬 ‘주름잎’
아파트를 빠져나와 옛 수인선 철로 변으로 들어서자 훨씬 더 다양한 풀꽃이 나타난다. 먼저 냉이의 한 종류이지만 잎이 말발굽 모양이라 이름 붙여진 ‘말냉이’ 와 잎 가장자리에 물결 무늬 주름이 있어 ‘주름잎’이라는 이름을 가진 풀꽃도 있다. “꽃 이름은 생김새의 특징을 따서 이름이 붙어졌어요. 그냥 슥 지나쳐 보았다가는 다 비슷비슷하게 생겼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 특징이 눈에 들어 올 거에요”
봄맞이와 꽃마리, 꽃바지가 지천으로 피어있다. 이름을 아는 꽃이 많아지자 자연히 발걸음은 늦어진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데도 제자리를 지키고 피어있는 풀꽃들.
살괄퀴, 얼치기완두, 갈퀴나물 너무 비슷해
20년 가까이 생태수업을 해 온 이정순 선생님도 구별해내기 쉽지 않은 풀 꽃이 있으니 바로 ‘살갈퀴’와 ‘얼치기 완두’ ‘갈퀴나물’이다.
“붉은색 길쭉한 꽃이 나오는 이 세 풀꽃은 구별하기 쉽지 않아요. 꽃대가 있어 꽃대 끝에 꽃이 달리면 얼치기 완두, 꽃 수십송이가 나란히 맺히면 갈퀴나물이죠. 그런데 참 헷갈려서 어떤 날은 얼치기 완두가 살갈퀴가 되고 갈퀴나물이 되기도 하죠. 세 꽃을 완벽하게 구분할 수 있다면 풀꽃 전문가라고 할 수 있어요”라고 활짝 웃는다.
열매모양이 개 불알을 닮아서 ‘개불알풀’, 고양이가 배가 아프거나 소화가 안 될 때 뜯어먹는 ‘괭이밥’. 잎 겨드랑이에서 나온 꽃이 마치 광대가 재주 부리는 것 같아 ‘광대나물’. 이름도 꽃 모양에 따라 어쩜 그리 잘도 지었는지. 봄에 피는 풀꽃만 해도 수 십 종이 넘는다.
“아이들과 자연을 돌아다니다 보면 배우는 게 참 많아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저 작은 풀꽃들조차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고 있어요. 주변 환경을 탓하지 않고 봄이면 꽃을 피우고 또 씨앗을 만들어 멀리 보내는 일이죠. 풀꽃들처럼 묵묵히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 느낀답니다.”
하혜경 리포터 ha-nul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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