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탈의 아픔 간직한 고장 ‘군산’

군산항 주변 근대 건축물 역사를 말하다

지역내일 2015-05-07

우리 역사에서 가장 큰 아픔을 간직한 도시 군산. 군산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수탈’이다. 일제 시대 드넓은 호남평야에서 생산된 쌀은 군산을 통해 일본으로 빠져나갔다. 하루 기차 300량이 군산선을 통해 쌀을 실어왔다는 기록이 남아있다니 그 규모를 지금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군산 내항 근처에는 일제시대 조선은행 건물과 세관, 일본식 주택과  까지 고스란히 남아 그 때의 아픔을 증언한다. 안산에서 두 시간 반거리. 마음만 먹으면 하루 만에 훌쩍 다녀올 수 있는 근대역사여행. 최용신 기념관 근대역사현장탐방단을 따라 군산에 다녀왔다. 해설은 안성 3.1운동 기념관 김대용 학예사가 맡았다.

군산


코스 1 일제 수탈의 증거 부잔교와 조선은행
금강과 만경강 사이에 자리한 군산은 예로부터 교통의 요지였으며 군사적 요충지였다. 대한제국은 군산의 이런 지리적 장점을 살려 제국주의 열강과 동등한 무역을 위해 1899년 군산항을 개항했다. 그러나 대한제국의 의도와는 달리 군산은 우리나라의 고혈을 빨아먹는 일제의 수탈기지로 전락한 아픔을 간직한 도시가 되었다.
군산 내항은 철로와 항구가 맞닿아 있다. 철로를 통해 옮겨온 쌀을 바로 배에 싣기 위한 것이다. 밀물과 썰물의 차이가 큰 서해안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일본인들은 부잔교를 만들었는데 썰물때면 다리가 내려오고 밀물 때는 물 위에 뜨게 설계했다.
김대용 학예사는 “이 부잔교는 지금도 이용하고 있을 정도로 튼튼하게 만들었고 기술도 뛰어나다. 그러나 이런 시설이 우리나라에서 쌀을 더 많이 가져가기 위해 만들어졌던 걸 생각하면 가슴 아픈 유물이다”고 말한다.
군산 내항 옆에는 조선은행 군산지점과 장기18은행 군산지점, 군산세관이 걸어서 5분 거리에 밀집되어 있다. 조선은행 군산지점은 해방 후 한일은행 군산지점으로 사용되었다가 80년대엔 ‘나이트클럽’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화재로 겉모습만 남아있던 것을 최근 옛 모습대로 복원한 후 군산근대건축관을 사용 중이다. 군산에 남아있는 근대 건축물의 모형과 군산앞바다에서 건져 올린 일제시대 동전 등을 볼 수 있다.


코스 2 상처받은 역사 흔적 따라 걷는 길
돈과 물류가 모이는 곳에 사람이 넘쳐나는 법. 군산은 개항과 함께 각국 조계지(외국인 공식거주지역)을 만들었지만 대부분 일본인이었다. 특히 항구 안쪽 신흥동은 유지들이 거주하던 곳이다. 일반인이 관람할 수 있는 신흥동 가옥은 포목상 히로쓰 게이샤브로가 건축한 전형적인 일본식 가옥이다. 근세 일본 무가의 고급주택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ㄱ’자 모양으로 붙은 건물 두 채와 그 사이 정원을 꾸몄다. 해방 후 적산가옥이 된 이 집의 현재 소유자는 한국제분이다.
일본 건축양식으로 지어 지붕이 높고 큰 동국사는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유일한 일본식 사찰이며 지금도 조계종 사찰로 이용되고 있다.
군산시는 근대역사유적을 묶어 근대역사 탐방길을 운영하고 있다. 미리 신청하면 문화관광해설사가 동행 해설도 들을 수 있다. 근대 역사길에서는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지인 ‘초원사진관’도 볼 수 있고 관광객을 태우고 다니는 자전거 인력거는 신기한 체험거리다.


코스 3 농장주의 호화로운 삶 이영춘가옥과 시마타니 금고
군산탐방의 마지막 장소는 농장주들의 호화로운 삶을 보여주는 곳. 일본인 대지주 구마모토 리헤이가 지은 별장용 주택인 ‘이영춘 가옥’은 지평선이 보이는 넓은 들판 가운데 자리잡고 있다. 리헤이의 별장을 해방 후 자혜의원의 원장이었던 이영춘 박사가 불하받아 ‘이영춘 가옥’으로 불린다.
일제 시대 이 집 주인인 구마코토는 전북 최대 농장주였다. 농장에 소작인만 3천 세대 2만 여명에 달했으니 이들을 치료하는 병원까지 설립했다. ‘아프지 말고 일해서 소출을 늘리라’는 경영마인드에서 시작한 의료사업이었던 셈이다.
군산시 발산면 발산초등학교 뒤편에는 시마타니 야소야가 지은 금고용 건물이 있다. 금고를 위해 건물을 지었다니 농장주인 시마타니가 축적한 부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시마타니는 우리나라 고미술품 욕심이 많아 금고 3층에 숨겨두었다. 시마타니는 해방 후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한국인 귀화를 신청했으나 거부되고 결국 미군정청 강제권유로 손가방 두 개만 들고 귀국선에 몸을 실어야 했다. 보관되었던 미술품은 중앙박물관으로 옮겨졌다.


군산답사길은 아름다운 곳을 보아도 아름답다 느낄 수 없다. 묵직한 돌멩이를 가슴에 얹고 다니는 순례길이다. 아름다운 건축물을 보면 피 묻은 손으로 벽돌을 져 날랐을 당시 식민지 조선인의 삶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픈 역사를 피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아픈 역사도 직시할 수 있는 단단한 역사관을 기르고 싶다면 아이와 함께 군산으로 떠나보자. 아이가 역사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질 것이다.


군산여행정보
군산근대건축관 : 전북 군산시 장미동 23-1
군산 동행투어 신청 : 063-446-5114
이영춘가옥 : 군산시 개정동 413-1
시마타니금고 : 군산시 개정면 발산리 45-1


하혜경 리포터 ha-nul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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