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생각하고 추모할 수 있는 그런 환경이 돼야 할 것 아닙니까. 이 상황에서 어떻게 추모를 합니까. 저희 가족들에 대한 치료와 지원은 진상규명입니다. 그것이 돼야 다른 걸 할 수 있습니다. 추모도 할 수 있고 심리치료도 하고 병원도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닙니다. 아직은 아닙니다. 아직 왜 죽었는지도 모릅니다. 내 새끼는 죽었는데 책임자는 없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그렇게 만든 사람들, 단체들, 부서들, 꼭 죄지은 만큼 벌줄 수 있게 해주십시오.”
노란 점퍼를 입은 아버지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어렵게 말을 이어갔다. 검게 탄 얼굴은 그간의 고단했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지난 11일 안산 합동분향소 앞에서 세월호 희생자 최성호 군 아버지 최경덕 씨는 시민들을 향해 이렇게 호소하고 있었다.
노란 물결 일렁이던 합동분향소
4.16가족협의회와 안산시민대책위는 이날 합동분향소 앞에서 4월 11일부터 18일까지를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폐기와 온전한 선체 인양을 위한 ‘범국민 집중행동 주간’을 선포했다.
이날 선포식에는 학생과 시민 등 500여명이 ‘진실을 인양하라’는 구호가 적힌 노란 띠를 들고 참여했다. 교복을 입은 학생부터 아이들의 손을 잡고 참여한 가족들,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까지. 합동분향소 주변은 노란 물결로 물들었다.
실종학생 허다윤 양 아버지 허흥환 씨, 고 최성호 군 아버지 최경덕 씨의 말에 시민들은 소리 없이 눈물을 삼켰다.
이날 실종자 및 유가족들의 요구는 하나였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밝히는 것. 세월호 선체를 인양하려는 것도 정부에서 발표한 시행령을 폐기하라고 하는 것도 모두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밝히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런 모습을 보면서 “보상금이 적어서 저런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가슴이 무너진다고 했다.
최경덕 씨는 “특별조사위원회의 독립성을 치명적으로 침해하는 시행령안에 동의할 수 없어서 3월 30일 광화문에서 농성을 다시 시작했다. 그런데, 이틀 뒤 해수부가 배보상금액에 대해 발표했다. 마치 농성을 하는 저희들이 배·보상 금액이 적어서 저러는 것처럼, 그렇게 보여 지도록 모든 매체가 도배를 했다”며 “진상규명 해달라고 울분이 터져서 나가있는 가족들은 참을 수가 없어서 4월 3일 광화문에서 50여명의 부모님들이 삭발을 했고 4일부터 5일까지 안산합동분향소에서 상복을 입고 아이들 영정을 가슴에 품고 광화문까지 걸었다. 이렇게라도 진실을 알려야했다”고 말했다.
단원고로 가는 길
선포식을 마친 시민들은 합동분향소에서 단체 조문을 하고 단원고까지 도보행진에 나섰다. 합동분향소에서 단원고로 가는 4월의 길은 유난히 아름다웠다. 바람이 불 때마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눈물처럼 쏟아졌다.
어린 두 아이의 손을 잡고 도보행진에 나선 한 참가자는 “중학교에 다니는 큰 아이 학교 게시판에서 오늘 행사 일정을 보고 참석하게 됐다”며 “그냥 가만히 있으면 내 아이들에게도 이런 아픔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도보행렬에는 유난히 학생들이 많았다. 친구들과 SNS 등을 통해 일정을 공유하면서 세월호 관련 행사에는 꼭 참가한다는 학생들도 여럿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이라는 한 참가자는 “같은 학교 친구 3명과 함께 왔다. 이런 행사가 있으면 급한 일이 있더라도 뒤로 미루고 학교 친구들과 꼭 참가하려고 한다”며 “학생들 사이에서는 세월호 문제로 이상한 얘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어른들처럼…”이라고 말을 흐렸다.
단원고로 가는 동안 몇 번이나 꽃집을 찾아 급하게 뛰어가던 한 어머니는 “꽃 한 송이 올려 놓으려고 꽃집을 찾는데 보이지 않는다”며 “세월호 이야기를 하면 이상한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최소한 안산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어떤 이는 세월호 문제와 관련해서 현실적인 고민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선부동에서 왔다는 한 어머니는 “이런 행사 참여할 때마다 많은 고민을 한다. 다녀오면 피곤하고 힘들고 마음도 아프다. 지금 가만히 있으면 내 아이들에게도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다는 이야기도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일이 아니기를, 나는 좀 빠졌으면 하면서 피로감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고 했다.
멀리 단원고가 보이자 참가자들은 더욱 조용해진다. 무거운 발소리만 들린다. 이 교문 그리 많이 봤건만 또 눈물이 흐른다.
멈춰진 시간, 단원고 2학년 교실
단원고 2학년 교실은 시간이 멈춘 듯했다. 달력은 2014년 4월에서 멈춰져 있고 교탁 위에 놓인 학급 일지도 4월 이후 더 이상 바뀌지 않았다. 교실 명패와 책상, 의자, 소품까지 1년 전 그대로였다. 이 교실에서 웃고 울고 장난치던 학생들의 모습만 없다.
대신 그날(4·16 세월호 참사)의 아픈 흔적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교실 곳곳은 ‘보고 싶다’, ‘꼭 돌아와라’, ‘미안하다’라고 적힌 희생자와 실종자를 애도하는 글로 빼곡하게 도배돼 있다. 희생 학생들과 교사가 사용하던 책상과 교탁 위에는 다양한 선물이 놓여 있다. 국화, 과자, 음료, 종이학…. 세월호 참사 이후 전국에서 보내온 수북하게 쌓인 추모편지도 가는 이의 눈길을 잡는다. 메모지에 적힌 사연, 아이들의 사진 한 장, 작은 소품 하나에 사람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시간이 멈춰진 단원고 2학년 교실은 사람들에게 묻고 있는 듯했다. 4월 16일 이후 당신은 변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세월호 참사 이전 325명이던 당시 단원고 2학년 학생은 현재 88명이 남아 있다. 생존학생 75명과 수학여행을 가지 않은 13명이다. 3학년이 된 이들은 4개 반으로 나눠 수업을 받고 있다.
단원고에서 나오니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해 이맘때쯤 단원고 학생들이 본 그 벚꽃들이다. 그래서일까. 도보행렬을 반기듯 하얀 벚꽃이 바람에 흩날린다.
이춘우 리포터 leee874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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