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물길 중 유서 깊은 마을이 많은 곳은 내성천이다. 경북 봉화 물야에서 시작한 물길은 영주를 거쳐 예천에서 낙동강을 만난다. 어딜 가나 백사장이 마당이고 물길 따라 가는 것 자체가 문화유산답사다. 봉화의 닭실마을, 영주 무섬마을, 예천의 회룡포를 지난다. 삼강주막거리에서 태백에서 온 낙동강을 만나 안동 하회마을로 이어진다.
설악산에서 출발한 홍천강변도 살기 좋다. 팔봉산을 휘돌아 노일리나 모곡을 거쳐 남이섬까지 편안하게 살 수 있는 물길이다. 남원서 구례 하동으로 가는 섬진강은 지리산을 적신다. 갈피마다 사람이 살고 골짜기 마을에서는 사철 꽃내음과 차향이 풍긴다. 남도의 젖줄이 되는 영산강은 점잖고 때로는 웅장하다. 강원도와 충청도를 거치는 남한강은 여주, 원주, 충주, 단양까지 은퇴자들에게 인기있다. 금강 상류 무진장(무주, 진안, 장수)에는 아름다운 계곡이 많다. 첩첩산중의 작은 마을을 지난 물길엔 이따금씩 큰 도시가 나타나는 강약이 좋다.
그런 곳에서는 조용히 여생을 보낸 선비들의 옛집도 쉽게 만난다. 서민들이 소박하게 살붙여 살던 가난한 마을들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야산 자락과 계곡 옆에는 바람소리, 물소리 그윽한 정자가 있어 삶의 격조가 느껴진다.
이렇듯 아름다운 땅, 살기 좋은 마을도 비어있기 일쑤다. 나이 지긋한 노인들 몇 명이 정자에 모여 잡담을 하는 풍경은 한가롭다 못해 권태롭다. 찾는 사람들이 없다보니 여행객은 늘 반가운 손님이다.
사람들은 특별한 것 없어도 도시에서 꼭 살아야만 하는 강박관념이 있는 것 같다. 먹고 살기 위해 도시가 필요할 때도 있다. 무엇인가를 이루고 출세하기 위한 사람들에게는 도시는 비전이고 희망이고 도전의 장이다. 도시에서의 삶은 그래서 중요하고 가치있다. 하지만 굳이 도시에 머물 필요가 없는 사람들도 도시를 떠나지 못한다. 도시가 버겁지만 떠날 생각을 못한다. 햇살 따스한 곳에 집을 짓고, 바람 좋은 곳에 정자도 짓고, 정원을 가꾸며 살고 싶은데 용기를 내지 못한다. 틀을 깨고 변화는 것이 두렵다. 심심하면 어쩌나 병들면 어쩌나 도둑 들면 어쩌나, 시장은 어떻게 보고 친구는 어떻게 만나며 문화생활도 해야 하는데… 살아보면 아무 것도 아닌 것들이 걱정이다.
우리 땅의 속살을 들춰보면 강변을 따라 모였다 흩어지는 마을들과 혹은 비탈에 기대 욕심없이 사는 사람들도 있다. 나이 들어 낙향해 살았던 옛 선비의 격조도 있고 서민들의 질박함도 있다. 삶이, 특히 노후의 삶이 격조 있고 윤택해지려면 자연이 필요하다. 두려움을 버린다면 눈높이를 맞춘다면 자연과 함께 하는 전원생활은 훨씬 가까이에 있다.
김경래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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