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정 한빛마을8단지 아파트 ‘한빛 꿈 도서관’

마을 사람끼리 모이면 작은 도서관이 더 재밌다

지역내일 2015-04-05

사라 스튜어트와 데이비드 스몰이 만든 그림책 『도서관』은 실존 인물인 메리 엘리자베스 브라운이라는 사서의 이야기다. 평생 읽고 모은 책을 모두 마을에 기증해 도서관을 만든 엘리자베스 브라운 같은 여인들이 우리 이웃에도 있었다.
운정신도시 한빛마을 8단지 아파트 내에 있는 작은 도서관 ‘한빛 꿈 도서관’을 꾸려가는 자원봉사자들이다.



주민들이 힘을 모아 만든 작은 도서관
파주 운정신도시 한빛마을8단지 아파트에 들어서면 단지 내 주민복지시설 2층에 있는 ‘한빛 꿈 도서관(관장 홍정미)’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한빛 꿈 도서관은 2012년 10월에 문을 열었다. 시작은 1천 권의 책이었다. 1천 세대 이상의 아파트일 경우 시행사에서 도서를 기증해야 하는 규정에 따라 LH에서 책을 기증 받긴 했지만 관리되지 않은 채 1년을 쌓여 있었다. 보다못한 입주자대표회가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다. 주민이면서 사서인 홍정미 씨가 관장을 맡았고 운영위원과 자원봉사자를 모집해 2천 4백 권의 도서를 마련했다. 파주시 작은 도서관 협회와 연합해 작은 도서관 잔치에 참여하고 단지 안에서도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해 참여를 이끌었다.
여기저기서 책을 모아 널찍한 공간에 차례로 정리하고 1062세대 중 400세대의 가족회원이 가입하니 죽어 있던 공간이 살아났다.
이제 한빛 꿈 도서관은 10명의 운영위원과 15명의 자원봉사자가 무급으로 운영하는 동네 사랑방으로 거듭났다. 날마다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문을 열어 일주일에 20시간을 운영한다. 봉사자 1인이 주 1시간 봉사하는 꼴이다. 매주 화요일 저녁 6시에는 과학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한빛8단지-관장홍정미


결과보다 과정이 즐거운 모임
토요일이면 한빛 꿈 도서관에는 크고 작은 행사들이 펼쳐진다. 체험학습은 좋지만 멀리 가기엔 부담스러운 주민들이 함께 모이니 재미난 일들이 벌어졌다.
할로윈 데이에는 아이들이 사탕 바구니를 들고 도서관으로 모인다.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청소년들이 조장을 맡아 아이를 인솔해서 데려간다. 사탕을 주겠다고 신청한 주민들의 집을 돌며 사탕을 받고 도서관으로 돌아오면 아이들의 어머니들이 한 접시씩 요리해 온 음식을 모아 작은 파티가 준비돼 있다.
도서관 공간이 널찍하니 밤샘 캠프도 가능했다. 저녁 6시부터 새벽까지 전래놀이도 하고 영화도 함께 보고 야식도 만들어 먹었다.
생태 강사를 모셔서 마을에 피어난 꽃과 나무를 보고 지도도 그렸다. 부모들을 위한 자녀교육 강좌도 함께 들었다. 임진각 통일촌 가족답사, 파주문화원과 유적지 답사, 파주시 독서마라톤에도 참여했다.
함께 한다고 품이 덜 드는 건 아니었다. 회의를 한 번 하려면 아이들을 재우고 나와야 하니 밤 11시에 모이는 건 예사였다. “새벽 3시에 회의를 마치고 들어가면 헛구역질이 날 정도로 힘들다”고 토로하는 봉사자도 있었다.
하지만 즐거웠다. 한빛 꿈 도서관 봉사자들은 행사의 결과보다 과정을 즐겼다. 어버이날을 맞아 경로당에 들고 갈 사탕을 밤 12시까지 포장하며 “이걸 받으면 좋아하실까”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을 ‘함께’가 아니면 어디서 느꼈을까.


책으로 나누는 소소한 행복
새벽마다 어딜 가냐고, 정말 도서관에 가는 것 맞냐고 뒤를 밟는(?) 남편이 있었을 정도로 열정적이었던 사람들. 덕분에 한빛 꿈 도서관은 파주시 자체 평가 최고 점수, 경기도 평가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
여기저기서 지원금을 받아 많은 프로그램을 운영했지만 힘도 들었다. 지원금을 받을 때면 좋지만 정산서류를 만들고 계획을 세우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너무 바쁘다는 소문이 나서 새로운 봉사자들의 참여가 줄어들까봐 걱정도 됐다.
그래서 올해는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서 최대한 독서 프로그램에 집중할 계획이다. 밖으로 보이는 행사는 지양하고 소소해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일들을 꾸리려고 한다.
리포터가 찾은 날은 모처럼 한빛 꿈 도서관 전체 봉사자들이 모이는 날이었다. 가만히 쉬는 법이 없는 이 재주꾼들은 또 쿠션을 바느질하며 이야기보따리를 풀고 있었다. 백짓장 하나를 맞들려고 해도 말 많고 탈 많은 것이 마을 모임인데, 도서관 하나를 거뜬히 만들어 놓고도 또 무얼 하고 놀까 궁리하는 이 여인들. 알짜배기 공동체 일꾼들이 모인 한빛마을 작은 도서관은 큰 도서관이 하나도 부럽지 않단다.
이향지 리포터 greengreen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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