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의선을 타고 출퇴근 하던 파주문산여자고등학교(교장 심현보) 박부춘 교사는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학생들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컴퓨터 교과를 담당하면서 책과 연관된 수업을 진행해 온 박 교사는 학생들과 함께 경의선에서 책을 읽자는 캠페인을 벌여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9명의 문산여고 3학년 학생들로 구성된 동아리 ‘책읽어보세’는 지난 4월 그렇게 꾸려졌다.
경의선에서 펼친 독서 캠페인
상대적으로 책을 멀리하는 학생들이 많은 특성화 학과 제자들에게 책을 더 많이 읽히고 싶다는 것, 그리고 경의선에서 책을 보는 이들이 더 늘어났으면 좋겠다는 것이 박부춘 교사의 바람이었다.
책읽어보세 동아리 박부춘 교사와 9명의 학생들은 매달 2번씩 경의선을 타고 ‘스마트폰 대신 책을 읽자’는 캠페인을 펼쳤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독서 캠페인이었다. 학생들은 캠페인 내용을 적은 패널을 펼쳐놓은 채 자리에 앉아 각자 가져온 책을 읽었다.
문산역에서 백마역까지 책을 읽는 일은 학생들에게 새로운 경험이었다. 여느 학생들처럼 지하철을 타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것이 습관처럼 배어 있었기 때문이다.
청소년 북카페나 중고서점, 파주출판도시 지혜의 숲과 같은 문화공간에 가는 일도 새로웠다. 경기도 북단 농어촌 지역에 위치한 문산에 있는 학교에 다니면서 평소 책이 있는 환경을 가까이 하지 못했던 학생들이라 더했다.
책읽어보세-지도교사
책의 맛을 알게 된 여고생들
책을 읽자고 권유하는 캠페인이었는데 정작 학생들이 얻는 기쁨이 더 컸다.
최희연(19)양은 “지루할 줄 알았는데 막상 해보니 책 읽기가 좋아졌다. 캠페인을 하지 않을 때도 꾸준히 책을 읽고 있다”고 말했다. 희연양은 “지하철에서 핸드폰만 하면 배터리가 빨리 닳아서 막상 전화가 필요할 때 못 쓰는 일이 많았다. 요즘은 책을 읽으니까 시간도 빨리 가고 전화도 필요할 때 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종합고등학교 형태로 운영되는 문산여고에서는 학생들이 대학 진학이나 취업을 선택한다. 취업을 준비하던 희연양은 책의 중요성을 실감하면서 진로를 취업에서 대학 진학으로 바꿨다.
“취업만 생각하고 이력서를 넣어 봤는데 떨어졌어요. 자기소개서를 쓸 때 할 말이 잘 생각나질 않았어요. 길게 써야 하는 것도 어렵고. 그래서 책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고 대학에 가기로 바꿨어요.”
최희연(19)양
북카페와 중고서점 나들이 즐거워
박주화(19)양은 “전에는 책을 안 읽었고 관심도 없었다. 동아리 캠페인을 하면서 ‘두근두근 내 인생’이라는 영화 원작 소설을 읽었는데 완전 재밌어서 책을 계속 읽게 됐다”고 말했다.
주화양은 혼자서 읽는 책이 아니라 친구들과 함께 하면서 책 읽는 맛을 처음 알았다.
“전철에서 책만 읽는 게 아니고 북카페도 가고 중고서점도 처음 가봤어요. 북카페는 책도 보고 음식도 같이 먹을 수 있어서 정말 좋아요. 중고서점은 책이 정말 싸잖아요. 여름방학 때도 친구들이랑 같이 가서 가방이 무겁게 책을 샀어요. 책 때문에는 처음 느껴본 행복이었어요.”
가족애를 느낄 수 있는 소설의 내용에 푹 빠진 주화양은 요즘도 가족과 사랑에 관한 책을 즐겨 읽는다. 겨울방학이 되면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는 주화양은 그때도 책을 들고 갈 계획이라며 눈을 반짝거렸다.
박주화(19)양
맘에 드는 시 사진 찍어 부모님께 보내기도
이혜민(19)양은 바쁜 생활 속에서 좋아하던 책과 멀어져가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책읽어보세 동아리 활동을 시작했고 다시 책을 잡았다. 추리소설과 판타지를 좋아하던 혜민양은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시집을 접했다. 좋은 시가 나오면 휴대폰으로 찍어 부모님에게 보낸다.
“시집은 읽기 편하고 공감도 많이 돼요. 캠페인을 하면서 조금씩 책에 가까워져서 좋아요.”
이혜민(19)양
김정원(19)양은 평소에 그리 가까이 하지 않았던 책을 동아리 활동을 통해 만나는 일이 즐거웠다고 말했다. “지하철에서는 핸드폰을 안만지는 대신 책을 읽게 됐어요. 책이 재밌다는 것도 느꼈고요. 캠페인 할 때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볼 줄 알았는데 별로 그렇지 않았고 뿌듯하기도 했어요.”
파주출판도시 지혜의 숲에 갔을 때는 방대한 책을 보고 놀랐다는 정원양.
김정원(19)양
이처럼 책읽어보세 학생들은 취업과 대학, 사랑과 우정, 일상과 특별한 경험들이 엇갈리는 19살의 나날에서 뜻밖에 책이라는 친구를 만났고 그 즐거움을 기쁘게 누리고 있었다.
한편 지역 학생이 줄어들면서 학교 재정에 어려움을 겪던 문산여자고등학교는 내년부터 남녀공학으로 전환한다. 이로써 문산여고는 42년의 역사를 마감하고 문산수억고등학교로 새롭게 출발한다. 수억고는 일반계 남녀공학 8개 반을 운영하며 금융자산운용과, 출판미디어과는 현재처럼 여학생만 수용하게 된다.
이향지 리포터 greengreen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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