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에서 불과 차로 몇 십 분이면 닿을 수 있는 비무장지대. 특히 한강 임진강 유역, 김포, 고양, 파주 등 광역으로 연결된 서부 DMZ 일대의 생태계는 접경지 생물권의 특징이 고스란히 나타나는 지역이다. 이제 곧 만물이 소생하는 봄, 지금쯤 DMZ 내의 들꽃들은 곧 싹을 틔우기 위해 땅 속에서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해 보았던 그 들꽃을 올해도 볼 수 있을까? 김계성, 김경희 부부는 점점 사라져가는 동식물을 누군가는 자료를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에 비무장지대와 파주 일원의 자연을 찾아다니며 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기록해왔다. 들꽃 좋아하던 아내가 먼저 생태환경연구가로 활동하면서 자연스레 남편도 함께 같은 길을 걷게 됐다는 김계성, 김경희 부부.
이난숙 리포터 success62@hanmail.net
생태연구 선배는 아내지만
은퇴 후 남편도 공통 관심사 갖게 돼
남편 김계성 씨(64세)는 현재 ‘푸른파주21’ 자연생태분과위원장을, 아내 김경희 씨(58세)는 ‘푸른파주21’ 자연생태분과위원을 맡아 각계각층을 대상으로 생태강의와 생태가이드 겸 해설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결혼을 좀 일찍 한 편이라 아이들 육아에서 남보다 일찍 자유로워졌죠. 40대 중반에 무료했어요. 그때 뭐 할 일이 없을까 둘러보니 환경문제가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그래서 파주환경운동본부에서 활동하다 생태계는 한 번 파괴되면 되돌릴 수 없는 생태문제가 더 시급하다는 것을 깨달았죠.”
길가에 핀 꽃 한 송이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허리 낮춰 살펴보곤 하던 김경희 씨가 생태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남편 김계성 씨는 오랜 공직생활을 은퇴하면서 아내와 공통의 관심사를 갖게 됐다. “처음엔 남편과 취미가 달랐어요. 저는 산을 좋아해 등산을 다녔고 자연스레 들꽃이나 동물에 관심이 갔지만 남편은 강을 좋아해 낚시를 즐겼죠.”
취미가 달랐던 부부는 어느 날 남편을 따라 낚시를 가보고, 또 아내를 따라 등산을 가면서 자연스레 공통분모를 찾게 됐다고. 그때부터 김계성 씨는 먼저 생태연구가로 활동하고 있는 아내를 따라 집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비무장지대를 공원처럼 찾았고 자연히 그곳에 살고 있는 들꽃과 곤충에 눈과 귀를 기울이게 됐다.
10여 년간 비무장지대 탐사한 기록
『비무장지대 들꽃』 『비무장지대 곤충』펴내
관심을 갖게 되자 자연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고 사계절 변화하는 모습에 오래 눈길이 머물렀다는 김계성, 김경희 씨 부부.
부부는 DMZ생태연구소와 ‘푸른파주21’에서 함께 활동하면서 비무장지대와 파주 일원의 자연을 찾아다니며 그곳 자연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기록해 왔다. 그러던 어느 날, 군락지가 훼손돼 보금자리를 잃어버린 개잠자리난초의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아 비무장지대의 생태계를 후손들에게 온전히 남겨 주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지난해 부부는 10여 년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발품 팔아가며 수집한 기록들을 2년여 간의 집필 끝에 『비무장지대의 들꽃』(펴낸 곳 세리프)을 펴냈다. 이 책에는 200여종에 달하는 들꽃들의 이름과 유래, 관련 정보 등 부부의 오랜 경험이 녹아 있는 이야기들과 521장의 생생한 사진들이 실려 있다. 또 들꽃에 연이어 비무장지대에 서식하는 407종 곤충이야기를 담은 『비무장지대, 곤충』도 펴냈다. 이 책에는 멸종위기에 놓인 꼬마잠자리와 왕은점표범나비, 2006년 세계 최초로 민통선에서 발견된 분홍빛 메뚜기 등 407종의 DMZ 서식 곤충을 사진 511장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
“곤충은 지구상 가장 넓은 면적에 가장 많이 분포하는 생물종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곤충을 벌레쯤으로 여기며 관심을 두지 않고 있지요. 보릿고개 시절엔 메뚜기도 잡아먹었는데 요즘은 메뚜기 보기도 힘들잖아요. 한 종류의 곤충이 없어진다는 것은 생태계 전부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인간도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세계는 곤충이 가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고요.”
생태계 ‘관찰’도 중요하지만
먼저 자연에 대한 ‘관심’ 가져야
부부는 DMZ의 들꽃과 곤충에 이어 앞으로 DMZ 내의 작은 못에 사는 양서파충류를 비롯해 다양한 포유류에 대한 책을 낼 계획이다. “비무장지대는 일산, 파주, 문산에 사는 사람들에게 지역의 상징적 존재가 아닐까요. 하지만 환경오염과 산업화로 생물들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부부가 10년째 생태계 보존에 열정을 쏟은 이유는 분명히 있다.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가고 있는 생명들이 전하는 말,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대변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부부는 생태계 탐사를 한다고 놀러오듯 불쑥 와서 동식물을 둘러보는 것은 진정한 자연 사랑이 아니라고 일침을 놓는다. “관찰에 앞서 ‘관심’을 먼저 가져야해요. 우리가 관심을 가진 사람들 이름을 쉽게 익히듯 들꽃이나 곤충도 관심이 있어야 눈에 들어오고 그 이름이 금세 머리에 들어오거든요. 생물도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아닌지 알아봅니다. 간절히 보길 원하면 제 모습을 보여주고 말을 건답니다.”
10여 넘게 자연과 함께 한 길을 걷고 있는 이들 부부, 서로 다른 듯 닮은 모습이 아름답다. 부부의 생태이야기는 블로그 ‘파주 DMZ의 생태’(http://blog.naver.com/chalka)에서 자세히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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