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에게 생소하고 어렵게만 느껴졌던 과학을 쉽고 재미있게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주최하고 한국과학창의재단과 양천구에서 공동주관하며 이화창의교육센터가 운영하는 ‘실버 생활과학교실’이 바로 그곳. ‘실버 생활과학교실’은 60세 이상 어르신을 대상으로 생활 속 과학 원리를 직접 실험한 후 실험재료를 1세트 더 제공해 손주와 함께 과학실험을 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세대 간 소통의 계기를 제공한다. ‘실버 생활과학교실’에서 과학의 재미에 속 빠진 어르신들을 만나봤다.
질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에 관한 모든 것
목요일 오전 10시. 양천구 평생학습센터 4층 소강의실에 어르신들의 분주한 발길이 이어진다. 강의실 책상에는 스티로폼 공, 핀 , 바이러스 전개도, 모루, 고무밴드, 공예용 철사, 빨대 등 어디에 쓰일지 궁금하게 생긴 재료들이 널려있다.
“아폴로 11호의 달착륙선 기억하세요? 각진 몸통에 옆으로 게 다리처럼 생긴 착륙용 다리가 비죽이 나와 있어요. 그런데 이 아폴로 11호의 달착륙선과 꼭 닮은 생물이 있어요.” 강사의 설명에 귀 기울이고 있는 어르신들의 눈빛이 반짝거린다.
이날 주제는 ‘질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로 아폴로 11호의 달착륙선과 꼭 닮은 생물인 박테리오파지(bacteriophage)라는 바이러스를 직접 만들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박테리오파지에서 박테리오는 ‘세균’이란 뜻이고, 파지는 ‘먹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박테리오파지는 세균을 잡아먹는 바이러스를 의미합니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강사가 쉽고 자세히 설명해주자 어르신들은 각자의 노트에 강사가 이야기하는 내용을 또박또박 필기해 둔다. 집으로 돌아가 손자손녀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 리포터에게도 전해진다.
바이러스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 만들기가 시작된다. 바이러스 기본 구조 모형의 전개도를 따라 구조물을 만든 다음 구조물 안에 DNA를 넣고 다리를 만들면 되는 작업이지만 생각만큼 쉽지는 않다. “전개도 붙이는 걸 너무 오랜 만에 해서 그런지 손가락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아요.” “구조물이 너무 작아서 손에 딱 잡히지 않네요.” 여기저기서 도움의 손길을 요구하자 4명의 강사들이 빠른 손놀림으로 어르신들을 도와준다.
박테리오파지 만들기가 끝난 후 2번째 주제인 ‘별’에 관한 강의가 이어진다. ‘저 별은 나의 별 저별은 너의 별…’ 별과 관련된 노래도 불러보고 별에 대한 추억도 되돌려 보며 하늘의 별자리에 대한 강의는 쭉 이어졌다.
일상생활과 접목된 과학 프로그램으로 어렵지 않아
‘실버 생활과학교실’은 간이 사진기, 치약 만들기, 카레지시약 등 일상생활에서 쓰는 물건을 과학과 연관돼 설명하는 것으로 어르신들도 어렵지 않게 과학과 친숙해질 수 있다. 무엇보다 집에서 손주들과 다시 해 볼 수 있는 실험세트를 제공해 온 가족이 모여 실험을 하면서 즐거운 추억도 쌓을 수 있다.
서선숙(70) 어르신은 7살 손주를 토요일마다 만나는데 과학교실에 다닌 후부터 손주가 늘 토요일을 기다린다며 즐거워한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할머니 뭐 배웠어요?’라고 물어보고 ‘같이 만들어보자’고 졸라데요. 무엇인가를 배우는 게 좋고 손주가 재미있어 하니까 배우는 즐거움이 날로 커집니다”라며 밝게 웃는다.
김영자(67) 어르신은 손녀와 매일 잘 놀아주는 것을 보고 옆집 엄마가 추천해 주어 수강하게 됐다. “손녀가 유치원에 다녀오면 가방만 던져놓고 그네 타는 재미에 놀이터에서 나오지를 않아요. 요즘엔 ‘집에 가서 과학하자’하면 빨리 집에 가재요. 어려운 과학 용어도 사용하면서 원리도 설명해주니까 ‘할머니 최고’라며 좋아하네요.” 김여숙(56) 어르신은 학창 시절로 되돌아간 듯하다고. “학교 다닐 때 배웠던 용어가 새록새록 떠오르고 집에 가서 ‘손주 가르쳐 줘야지’ 하는 생각에 더 열심히 하게 됩니다.” 민연이(69) 회원은 “과학이 이렇게 쉽고 재미있는지 몰랐다”며 “생활 속에서 과학의 원리를 발견하게 되니 신기하기까지 하다”고 전한다.
어르신들이 배운 것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천연제품을 이용한 ‘모기 퇴취제’ ‘계피 방향제’ 등이다. 특히 시중에 판매되는 비타민 제품의 비타민C 함유량을 직접 실험해 본 것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이영순(63) 어르신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진딧물을 천연제품으로 제거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고 시중에 판매되는 비타민제품에 비타민C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고 밝힌다.
윤기임(67) 어르신은 “만물의 이치가 새롭고 세상의 물체나 물질 모두가 과학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 느껴졌어요. 실생활에 숨어있는 과학적 원리도 알게 되고 과학에 대한 흥미와 탐구능력이 생겨서 지다가면서 보게 되는 모든 것에 어떤 과학의 원리가 숨어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미니인터뷰
최미숙 강사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손자손녀를 만나도 딱히 공감대가 형성이 안 되면 할 말이 없잖아요. 여기 어르신들은 손주와 함께 작품을 만들면서 사진도 찍고 대화꺼리를 공유하면서 생활에 활력소도 되고 조손간에 추억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거 같아요.”
최욱열 어르신
“쌍둥이 손주가 40개월도 안 됐는데 반응이 기대 이상입니다. 아직 스스로 만들기를 할 만큼은 안 되지만 해보려고 덤비는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몰라요. 자동차를 만들면서 원리도 설명하고 경주도 해봐요. 그 덕분에 할아버지 인기가 최고가 됐습니다.”
최선희 어르신
“모르는 것도 많이 배우게 되고 곰팡이, 바이러스, 박테리아 등 옛날 생물 시간에 배웠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손주 하고 매번 그림 그리는 것 외 다른 놀이거리가 없었는데 일상생활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과학 관련 작품을 만드니 손주가 더 신기해합니다.”
이영숙 어르신
“관성의 법칙을 배우면서 만든 관성화살을 아이가 가장 좋아했습니다. 고무줄의 탄성에 의해 화살이 날아가는 것을 보고 신기해하더니 할머니 대단하다며 추겨 세우네요. 아직도 관성화살을 가지고 노는 걸 보면 아이가 더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송정순 리포터 ilovesjsmor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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