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학도 졸업의 아름다움

지역내일 2015-02-22

“드디어 졸업장 받아요. 배우지 못한 한을 이제야 풀었습니다”


노·장년층과 소외된 청소년들의 대안학교인 서울 성지중·고등학교 학생들의 감동의 졸업식이 지난 5일 오전 11시 강서구민회관에서 열렸다. 320여명의 늦깎이 졸업생 중 머리가 희끗한 노인과 주부가 유난히 눈에 띈다. 가족들의 축하가 조금 쑥스럽기도 하지만 이들의 얼굴에는 배우지 못한 한을 풀어낸 기쁨이 묻어난다. 모두 어려운 시절, 힘겨운 가정형편에 배움의 때를 놓쳤지만 배움을 포기하지 않고 졸업을 하게 된 만학도 졸업생을 만났다. ㅣ송정순 리포터 ilovesjsmore@naver.com


성지중학교 졸업생 조재행 어르신
“전 과목 평균 95점, 전체 수석으로 졸업 합니다”


환갑을 넘긴 나이에 당당히 중학교 졸업장을 받은 만학도 조재행(65) 어르신. 한국전쟁 때 아버지를 여의고 농사를 지으면서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하고 형편상 중학교는 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가내 공업을 하는 공장에 들어갔으나 ‘손이 느리다’ ‘일을 제대로 못 한다’는 이유로 얼마 못돼 쫓겨나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헌책방에서 책을 구해 밤을 세워가며 독학한 끝에 서울국제우체국에 합격해 33년간 근무했다. 누구보다 성실히 일한 결과 퇴직하면서 옥조근정 훈장도 받았다.
하지만 부서를 옮길 때마다 써내야 했던 신상명세서 ‘최종학력’ 기재란 앞에서 늘 위축됐다. 학력에 대한 한이 남았던 어르신은 지난 2013년 성지중 성인반(2년제)에 입학했다. 만학도의 학업에 대한 열정은 뜨거웠다. 수업을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1학년부터 3학년까지 전 과목 평균 95점을 받아 당당히 전체 수석을 차지했다. 2년 3학기제인 성인반에서 내내 회장(반장)을 맡기도 했다.


늦깎이 공부벌레, 개근상과 서울학생상까지 받아
학교에서 ‘늦깎이 공부벌레’로 유명한 어르신은 졸업을 하면서 졸업장과 개근상 외 서울시교육감이 주는 ‘서울학생상’까지 받게 됐다. 이 상은 성적이 우수하고 학업 태도가 성실한 성지중고 졸업생에게 주는 상으로 올해 성인 수상자는 조재행 어르신이 유일하다.
그의 학업에 대한 열정은 유별났다. 매일 학교에서 배운 내용은 그날 집에서 노트정리를 했다. 그 다음날 아침 8시에 등교해 칠판에 전날 배운 내용을 모두 적어 뒀다. 이때 같은 반 친구들에게 모르는 내용은 질문을 받아 자세히 설명도 해줬다. 

 어르신이 공부할 때는 4~5시간은 기본으로 책상에 앉아 있었다. 그 결과는 성적으로 나타났다. 10개가 넘는 과목의 평균 점수가 95점이 넘는다. “점수를 잘 받을 때는 만점 가까이도 받았어요. 98점을 넘을 때도 많았고. 기술ㆍ가정 과목에서 평균점수가 깎였어요.”
평균 95점의 조재행 어르신도 위기는 있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50년 만에 다시 공부를 시작하려니 책상에 앉아 있는 것이 쉽지 않았다. “앞으로 공부를 어찌 해야 하나”하는 근심도 많았지만 먼저 성지중고등학교를 졸업한 아내가 격려를 해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결과는 늦깎이 학생인 남편을 위해 새벽에 일어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아내 정정순 씨와 천정순 담임선생님, 김한태 교장선생님 덕분”이라며 고마움을 전했다.
어르신의 최종 목표는 대학에 진학해 사회복지사가 되는 것이다. “초등학교 밖에 졸업하지 않았는데도 국가에서 공무원으로 채용해 줬으니 받은 혜택만큼 사회에 돌려주고 싶습니다.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습니다”라며 자신의 아름다운 꿈을 밝혔다. 



 성지중학교 졸업생 이정임 어르신
“배움의 기회를 놓친 분들께 가르치는 봉사하고 싶어요”


일흔을 넘긴 나이에 중학교 졸업장을 받게 된 만학도 이정임(73) 어르신의 어린 시절은 고되기만 했다. 18살에 무작정 상경해 식모살이와 직물공장을 전전하던 어르신의 삶은 결혼을 하면서 좀 나아지는 듯했다. 하지만 결혼생활 15년 만에 남편이 세상을 떠나면서 딸 둘을 키우기 위해 세상으로 나와야했다. “안 해본 일이 없었어요. 먹고 사는 것도 문제였지만 그보다 아이들은 대학까지 공부시키고 싶었습니다.” 

어르신의 바람대로 딸 둘을 모두 대학까지 졸업시켰다. “큰딸은 이화여대를 나와 교사로 재직하고 있고 작은딸도 대학을 졸업하고 병원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집안이 안정되니 못 배운 것이 한이 됐어요. 초등학교 4년 졸업, 중학교 성인반 2년을 마치고 대학까지 졸업을 목표로 성지중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됐습니다.”







2년 동안 지각·조퇴·결석 한 번 하지 않아
 2년 동안 학교를 다니다보면 경조사가 있거나 몸이 아파 결석이나 조퇴를 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어르신은 무엇보다도 학교가 최우선순위였기에 결석 한 번 하지 않았다. 서울 성동구 집에서 강서구 성지중까지 상당한 거리를 통학하면서도 단 한 번의 지각도 없었다.
하지만 적지 않은 나이에 공부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낯설기만 한 영어, 수학 공식은 완벽하게 외웠어도 문제가 잘 풀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딸들에게 도와달라는 요청도 하지 않고 꾸준하고도 열심히 스스로 공부했다. “2년 동안 공부하면서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어요. 숙제도 즐거운 마음으로 했습니다.” 그 결과 졸업식에서 학교장 개근상과 새마을회장상을 받게 됐다.
 이날 기쁨의 졸업장을 받아든 어르신은 “그저 모든 것이 감사하고 감개가 무량합니다. 어린 시절 가정형편 때문에 공부를 못한 게 한이 됐는데, 이제 중학교를 졸업하니 한을 푼 것 같습니다. 졸업장을 받게 된 것이 정말 꿈만 같네요.”
때로 친구들이 ‘늙어서 공부해서 뭐 하냐’라는 소리도 많이 했다. 그럴 때마다 어르신은 배우지 못하는 한도 풀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배우고 학교 다니는 것이 즐겁다고 응답해주었다. 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한 것을 후회해 본 적도 없었다. 오히려 ‘학생’이 되자 마음이 훨씬 젊어졌단다.
성지고등학교 입학서류까지 이미 접수한 어르신은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대학은 천천히 생각해보겠단다. “이제 중학교 졸업장도 받았으니 시간이 날 때마다 복지관에서 저같이 배우지 못한 사람들에게 찾아가서 도움을 주고 싶어요.”
한창 공부할 때 방황하는 학생들에게 이정임 어르신은 “공부는 다 때가 있어요. 지금 배움의 기회를 놓치면 나중에 후회하게 됩니다. 배울 수 있을 때 열심히 배우라”고 권해주고 싶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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