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인천 아시안 게임이 막을 내렸다. 아시안 게임, 올림픽 경기, 월드컵과 같은 스포츠 중계를 지켜보면서 운동선수만큼이나 삶의 허탈함과 동시에 성취감을 느낄 만한 직업이 어디 있을까라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각본 없는 역전의 드라마를 쓰기도 하고, 한 게임을 위해서 4년이라는 시간 동안 땀 흘린 노력이 숲으로 돌아갈 수 있는 국가대표 선수들을 보면서 대한민국 수험생들의 처지도 위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느꼈다. 운동장에서 단 몇 초를 뛰기 위해 너무나 많은 시간의 고통스러운 훈련을 해야 하고,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단 한 번의 수능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우리는 12년이란 시간 동안 실력을 쌓아 저장해야 하는 일을 감수해야만 한다. 사람들마다 인지하는 차이는 다르겠지만 필자는 대학 입시의 서막은 고교 입학이 아닌 바로 중학교 때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중학교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가장 부담을 많이 느끼는 과목 중에 하나가 수학이다. 많은 학생들이 학원에 의존하고, 학원들은 급박한 선행을 하는 환경 속에서, 깊이 있는 생각을 하며 근원적인 질문을 통한 호기심 넘치는 수학공부를 진행하기란 참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학원 문을 처음으로 두드리는 학생들을 보면 2,3년 이상의 선행학습이 거의 일반화 되어 있다. 선행학습만 딱 짚어서 보면 그것이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아직 어린 학생들이 선행학습이 많이 되어 있다는 속뜻은 배운 것은 많이 있지만 기억나는 것, 아는 것이 없다는 결과를 현장에서 너무나 많이 지켜보게 된다.
어떤 문제집을 풀었는지, 얼마나 많은 진도가 나갔는지는 중요치 않다. 수학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이 땅의 모든 선생님들은 한결같이 ‘개념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정작 그 개념이 뭔지를 제대로 가르치는 교사는 한정적인 것 같다. 중학교 1,2학년 학생들에게 함수 한 단원을 가르치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족히 한 달 이상이 걸린다. 일차함수, 이차함수, 무리함수, 분수함수, 지수함수, 로그함수…. 학년이 올라갈수록 수의 확장이 되면서 함수의 개념과 골격은 그대로 있되 수의 의미만 얹히면 되기 때문에 가장 근원이 되는 개념을 공부하는 데는 참 오랜 공을 쌓아야 한다. 정확한 개념을 이해하고, 이해된 내용을 바탕으로 응용문제를 접근할 때 실력이 향상될 수 있다.
가령 전문 바둑기사에 대해 늘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단 한 수의 착오도 없이 어떻게 정확한 복기(復碁)를 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복기란 바둑이 끝난 뒤 양 대국자가 서로의 잘잘못을 되짚어 보기 위하여 방금 두었던 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되풀이해 보는 것을 의미한다. 하루 종일이 소요되고, 250~300여개에 이르는 그 많은 돌들의 순서를 전문 기사들은 정확하게 기억하면서 복기를 행한다. 한 바둑 전문인은 의미 있는 돌들을 놓으면 누구든 복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왜 바둑알을 그곳에 두는지 그 의미를 생각하면서 두면 복기는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복기는 단순히 돌의 순서에 대한 기억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 돌이 갖는 의미의 연결로 구성된다는 말이었다. 수학학습도 훑어보기식 선행에서 벗어나 의미 있게 개념을 명확히 학습하고 천천히 사고의 영역을 넓혀가는 공부야 말로 참된 내 지식이 될 수 있다. ‘안다’는 것은 내가 배웠던 개념을 바둑돌을 복기하듯 모든 정리의 증명과 함께 입력하고 저장하는 것 그것이 바로 수학학습의 정석이라고 생각한다.
4년이라는 시간이 선수들에게 동일하게 주어졌지만 누구는 금메달, 또 누구에게는 은메달, 동메달이라는 결과가 객관적으로 주어진다. 6년이라는 시간이 우리 학생들에게 동일하게 주어졌지만 누가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는 각자 선택의 몫이다. 다만 공부는 자기 자신과의 끝없는 싸움이며, 그에 따른 성적은 내가 얼마나 준비했는가의 최종 결과물이다. 이제 중학교 입학을 앞둔 예비 중학생들에게 나는 의미 없이 반복되는 학습이 아닌 단 한 번의 시간 투자에 가장 의미 있는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되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김지선 원장
그수학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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