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산책] ‘허삼관’

해학과 위트 넘치는 코믹 휴먼드라마

지역내일 2015-01-27

파란만장한 대한민국 현대사 속에서 가족을 위해 희생과 노력으로 살아온 아버지를 소재로 한 영화 ‘국제시장’이 천만 관객을 돌파한 가운데, 비슷한 시대의 또 다른 아버지를 소재로 한 영화 ‘허삼관’이 개봉했다. 두 영화 모두 웃음과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공통점이 있지만 주인공인 두 아버지 덕수와 허삼관의 색깔은 사뭇 다르다. 

허삼관


웃음과 연민 자아내는 너무나 인간적인 허삼관
가진 것 하나 없이 배짱만 두둑한 청년 허삼관(하정우)은 마을의 절세미녀 허옥란(하지원)에게 한 눈에 반해 그녀와 결혼하기로 결심한다. 허옥란에게는 이미 결혼을 약속한 하소용이라는 남자가 있지만 포기를 모르는 허삼관은 피를 팔아 결혼자금을 마련하고 특유의 재치 있는 입담으로 결혼 승낙을 받아낸다.
세 아들을 낳고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마을에는 이상한 소문이 퍼진다. 바로 허삼관이 애지중지하는 큰 아들 일락(남다름)이 하소용을 닮았다는 것이다. 소문만으로도 불쾌한 허삼관은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혈액형 검사를 하게 되고 11년간 키워온 일락이 친아들이 아니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진실을 접하게 된다. 이때부터 허삼관은 일락을 노골적으로 차별하는데, 그 행동과 마음이 밉살스럽기보다는 너무나 인간적으로 다가와 웃음과 연민을 자아낸다.
영화 ‘허삼관’은 세계적인 작가 위화의 원작 ‘허삼관 매혈기’를 한국적인 배경과 정서에 맞게 살짝 각색해 영화화했다. 주인공 허삼관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라면 피까지 팔만큼 희생적이지만 일방적인 희생이 아니라 자신도 함께 배부르고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현실적인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절대위기 상황에서는 맹목적인 희생을 감수해 감동을 더해준다.


능청스러운 하정우, 남다르게 의젓한 남다름
허삼관은 세 아이에게는 함께 어울려 재미있는 이야기도 해주고 장난도 치는 친구 같은 아버지이고, 아내에게는 때론 듬직하고 때론 아이 같은 남편이다. 전후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우리 시대의 아버지상과 별반 다르지 않아 친근하게 다가온다.
아버지와 남편으로서 무게를 잡으면서도 유머 넘치는 대화로 가족을 화목하게 이끌어가던 허삼관은 일락이 친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태도가 급변한다. 상황에 따라 바뀌는 배우 하정우의 능청스러운 연기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아내에 대한 배신감에 화가 끓어오르지만 결혼 전의 일이라 속 시원히 화풀이도 못하고 의기소침 토라져 있는 모습, 애지중지 키운 아들이 남의 아이라는 것에 대한 억울함으로 전전긍긍하는 모습, 죄 없는 일락을 치사하게 따돌리고 괴롭히는 치졸한 모습이 자연스럽게 표정과 행동으로 드러난다.
허삼관의 세 아들인 일락, 이락, 삼락은 기분 좋은 웃음을 유발하는 관람 포인트다. 의젓하고 듬직한 일락, 당차고 활달한 이락, 귀엽고 철없는 삼락은 각기 다른 개성과 순수함으로 극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특히 허삼관과 각별한 애증과 갈등 상황에 놓이게 되는 일락 역할을 맡은 남다름은 감성적인 외모와 섬세한 감정연기로 관객들을 웃고 울게 한다.
 
위기 속에서 빛을 발하는 가족애
화목하기만 했던 가정에 11년 만에 느닷없이 찾아온 위기, 그렇지만 그 위기로 흔들릴 만큼 허삼관 가족의 가족애는 허술하지 않다. 황당한 진실을 접하고 티격태격하지만 어느 누구도 가족의 틀을 깨려는 마음은 없다. 오히려 그들에게 다가온 또 다른 더 큰 위기로 인해 서로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임을 확인한다. 피를 팔아야 할 만큼 절박한 상황을 그렸지만 슬픔보다 흐뭇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은 영화가 가족의 의미를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선이 리포터 2hyeon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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