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의 무모한 행동이나 쏠림현상을 ‘레밍효과’라 한다. 동물의 왕국이나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면 쥐의 집단 자살에 대한 장면이 나온다.
이 미스터리의 주인공은 쥐보다 몸집이 약간 큰 ‘레밍’이라는 설치류다. 레밍은 생태계에서 하위단계의 동물이고 독특한 행동양식이 떼거리로 뭉쳐 다니는 습성이 있어 사람이 보기에는 줏대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레밍은 다양한 생물학적 변수로 개체수가 급증하면 새로운 먹이를 찾아 서식지를 옮기며 살아간다. 이때 어떤 레밍 한 마리가 방향을 잡으면 주변에 있던 몇 마리가 붙고, 다시 더 많은 레밍이 따라 붙는다. 결국 뭉쳐 다니는 습성으로 인해 모두가 함께 움직인다. 앞선 레밍이 위험을 알아도 뒤에서 바짝 붙어서 쫓아오는 무리들 때문에 멈추지 못하고 결국 선두 레밍이 바다나 강으로 떨어지고 만다. 그런데도 뒤에 있는 레밍은 앞선 레밍이 강으로 떨어져도 그들을 놓칠세라 그대로 따라 붙는다. 대부분의 레밍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주변 무리에 의해서 비극적 최후를 맞는다.
‘레밍효과’는 인간 세계에서도 곧잘 나타난다. 1913년 미국의 오하이오주 콜럼버스라는 도시에서 댐이 무너졌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돌았다. 소문의 출발은 어떤 한 사람이 댐의 반대편으로 뛰면서 촉발되었다. 그러자 단시간에 시내의 모든 사람들이‘댐이 무너졌다’는 소문을 진짜로 믿으며 뛰기 시작했다고 한다. 시내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고, 그 무리가 순식간에 십여 킬로미터까지 불어났다. 소동은 한참이 지나서 사실이 아님을 확인한 후에 가까스로 진정되었다고 한다. ‘레밍효과’는 주식시장이나 부동산 시장에서도 나타난다고 하여 혹자는 경제현상을 군중심리학에 덧대어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겨울방학을 맞아 2016학년도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예비고3 학생들은 한창 분주할 것이다. 수많은 입시상담을 하는 과정에서‘레밍효과’를 연상케 하는 몇 가지 현상을 살펴보자.
과학Ⅱ(물, 화, 생, 지)과목 응시자수가 절대적으로 적고 그 비율이 전년대비 감소한 결과가 보인다. 과학Ⅰ에서는 물리Ⅰ을 선택한 비율이 눈에 띠게 낮고 화학Ⅰ과 생명과학Ⅰ의 비율이 유달리 높다. 지구과학Ⅰ은 수험생 선택 비율이 33.4%에서 37.0%로 가장 높은 상승 흐름을 보인다. 이 수치의 변화는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가. 오랜 입시를 경험한 필자의 눈에는 여러 수수께끼가 보인다. 수수께끼를 해석하고 선택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현행 입시제도의 허점이 낳은 모순이 있다. 전자공학을 공부하려는 수험생이 수능에서 물리를 선택하지 않고, 생명공학을 전공하려는 수험생이 생명공학을 선택하지 않아도 문제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첫 아이가 수험생인 학부모와 재학생은 상식적인 선택을 한다. 대학에 합격하고 나서 적응하는데 초점을 두는 선택을 한다. 그러나 실패의 경험이 있는 재수생은 이상적인 선택을 접어두고 현실적인 선택을 한다. 실패의 쓴맛이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대학입시라는 경주는 혼자 뛰는 마라톤이 아니다. 나보다 뛰어난 사람하고 뛰기도 하고 부족한 사람하고도 뛰기도 한다. 무작정 뛰기 전에 내가 뛰는 레이스에 어떤 부류가 함께 하는지 살펴 봐야한다. 과학탐구 영역은 여덟 개의 길 중에서 두 개의 길을 선택한다. 전국에는 이른바 수재들의 학교라고 불리는 영재학교, 과학고가 30개 가깝게 있고 한 학년에 대략 120명의 졸업생이 있다. 물론 그중에 수능을 치르지 않은 학교도 있다. 최근 입시에서 가공할 위세를 떨치는 하나고, 상산고, 민족사관고, 한일고, 용인외고 등 자사고에 다니는 실력이 출중한 이과생들도 적지 않다.
나는 누구와 몇 명이서 뛸 것인가 생각해보자. 물리Ⅱ에서 1등급 성적을 받으려면 전국등위 200등 이내에 들어야 한다. 다시 한번 고민하자. 아직은 선택해야 할 중요한 시점이다. 마라톤에서 몇 발짝 먼저 출발한다고 반드시 먼저 골인한다는 보장은 없다. 수능성적으로 뽑는 정시모집은 로또복권, 모집정원의 대다수를 뽑는 수시모집은 히든카드, 재수한다는 것은 로또복권을 한 장 더 살 뿐이라고 수험생에게 전하고 싶다.
가나과학전문 김동일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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