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아빠와 함께하는 TV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어린 자녀들과 보내는 아빠들의 고군분투 이야기는 더 이상 아빠들의 무관심이 정당화되지 않는 변화된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우리 지역에도 슈퍼맨 아빠들이 있다. 아이들과의 시간을 위해 당당하게 학교에 입성하여 아빠의 자리를 만들고 있는 우리지역 아버지회를 소개한다.
이경화 리포터 22khlee@hanmail.net, 이세라 리포터 dhum2000@hanmail,net
불곡고등학교 아버지회
매일 밤 학교지도는 기본, 아이들과 힐링연수도 다녀와
매일 밤 10시 하루 종일 책상에 붙어있느라 힘들었던 학생들이 교문을 나오자, 이들을 반기는 이는 다름 아닌 ‘아버지들’이다. 매일 밤 학교 앞 횡단보도 교통봉사와 학교주변을 돌며 하교지도를 하고 있는 불곡고등학교 아버지회(이하 아버지회)의 활동이 작년에 이어 올해도 이어졌다.
어머니들도 참여율이 떨어진다는 고등학교에서 아버지회가 조직되어 활발한 활동을 펼친다니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그 시작점에는 불곡고등학교의 곽상훈 교장선생님의 아이디어가 있었지만, 현재의 아버지회(회장 박준)는 그 어느 조직보다 열정이 있고 진정성이 느껴지는 조직이 되었다.
어두운 밤길 속에서 아이들을 지켜주며 하교하는 학생들에게 초컬릿·사탕을 건네주며 마음속으로 ‘파이팅’을 외쳐보는 아버지들은 하나같이 “입시위주의 교육에서 아버지의 역할에 대해 많은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멀뚱하게 지켜만 보던 학생들이었지만 요즘엔 제법 인사도 하고, 하이파이브도 할 정도로 친해졌다고 한다.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다.
하이파이브 할 정도로 친해진 아이들
아버지회는 12명을 회원으로 두고 있다. 작년에는 단순하게 봉사의 차원으로만 생각했었는데 하다 보니 아이들을 위해 하고싶은 일들이 굉장히 많아졌다고 한다.
‘헬로파파’프로그램도 그 일환이다. 지난 1학기 말 2달 정도 기간 동안 멘토로서 아버지와 학생들과의 데이트를 제안한 것. 부자간의 데이트가 아니라 친구의 아빠, 아들의 친구를 만나 이런저런 소통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버지회는 이를 위해 상담방법까지 배울 정도로 열심히 임했다. 직장으로 초대를 하거나 영화관에서 만나기도 하고 혹은 밥 한끼를 같이하며 진로나, 인생에 대한 고민을 나누었다. 학생들은 분명 어색해 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아버지들의 노력을 알아주는 듯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 있다.
박준 회장은 “이 때 학생들과 인터뷰 해 보니 아이들이 아버지에게 원하는 것이 ‘함께 여행하는 것’, ‘맛있는 거 먹으러 가는 것’이더군요. 그래서 그렇게 해주기로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생긴 기획이 바로 ‘힐링리더연수’이다. 연수명이 ‘차세대리더캠프’가 아니라 ‘힐링리더’라니 아버지들이 아이들에게 주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있다.
지난 10월 18일 이 연수에 지원한 학생들 30여명은 아버지회를 따라 속리산을 다녀왔다. 사실 우리나라 실정상 단체여행에서의 큰 아픔이 있던 차라 주변에서 굉장히 걱정을 많이 했지만, 역시 아빠들의 단호함과 바람으로 연수는 이루어졌다.
새벽 6시에 출발하여 속리산에 도착, 수많은 단풍놀이 관광객 사이로 8명을 한 조로 한명의 아버지가 이끌었다. 손에는 무전기를 들고 일사분란하게 말이다. 단 한명의 낙오자 없이 문장대까지 5시간 산행을 하였는데 아이들에게 물도 먹여주고, 가방도 들어주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교감하는 시간을 가졌다.
서로가 서로에게 시너지를 준다는 것은 이런 경우가 아닐까?
이 연수에 참가한 2학년 권정일군은 “연수 참가자 모집 공고를 보고 스스로 지원했는데, 역시 보람이 있었어요. 아버지들 덕분에 좋은 추억도 쌓고 정말 신나는 하루를 보냈습니다”라고 말하고, 다른한편으론 연수를 마친 아버지들이 “순수한 아이들을 통해 오히려 에너지를 얻은 느낌입니다”라고 하니 말이다. 이날 저녁은 삼겹살 파티로 마무리. 아버지들이 통 크게 쏘셨는데 지갑이 무척이나 홀쭉해졌다는 후문이다.
이 모든 프로그램과 활동은 아버지들의 자발적인 힘과 학교의 뒷받침으로 운영되고 있다.
홍진수 교무부장 선생님은 “물론 어머님들도 많이 도와주시지만, 아버지들의 노력까지 더해지니 학교로서는 너무나 감사한 일”이라고 말하며 “처음에는 예상보다 아버지들의 열정이 뜨거우셔서 깜짝 놀랐죠. 아버지들이 학교라는 현장으로 들어와 부딪혀 보면서 아이들을 더욱 이해하고 아이들도 무심한듯하지만 마음속으로 감사함을 느끼는 것을 보고 교육공동체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한다.
학교와 친한 아버지,
교육공동체의 의미 되살려
아버지회의 박준 회장에게 마지막으로 물어 보았다. ‘한해를 마치고 2014년 아버지회도 마감이 되어가는 데 다음에는 이런 것은 꼭 해보고 싶은 것이 있는지 말이다. 그러자 그는 “아버지들이 정말 다양한 의견을 내 놓으셔서 끝이 없어요. 입시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 같이 자전거도 타고 싶고, 주기적으로 등반도 하고 싶고, 더욱 체계적으로 진로 지도도 하고 싶고 말이죠. 또한 학교와도 좀 더 친해지기를 원해요. 지역에서 아이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소통하는 것이 진정한 아버지의 역할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말입니다.”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는다.
도촌초등학교 아버지회 도/아/조
아빠들과의 행복한 추억을 만드는 도촌초 아이들
2008년 개교한 도촌초등학교(교장 송민호)에는 열정 넘치는 아버지들이 많다. 지난해, 학교에서 아버지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봉사하기 위해 조직된 아버지회는 다양한 활동으로 함께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실천하고 있다. 아이들을 위해서 합창을 준비하고 슈퍼맨과 배트맨 복장을 입고 율동을 선보이는 아버지들. 그 아버지들이 꿈꾸는 새로운 아버지상을 들어보았다.
아이들과의 시간이 많아지는 계기가 된
아버지회
2년밖에는 되지 않은 39명의 회원들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아이들과의 1박 2일 캠프와 방범활동, 녹색어머니회와 폴리스 지원 등이 그것이다. 이외에도 소모임을 통해 즐기는 시간들은 아버지와 아이들 모두가 기다린다고 회장인 임철민 씨(40세)는 전한다.
“아버지회 활동을 하며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그 전에는 피곤으로 주말에는 집에서 쉬는 것이 당연했다면 요즘에는 그렇지 않아요. 낚시, 운동 등 다양한 소모임에 참여하여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답니다”라며 임철민 씨는 아이들과 함께 즐기는 자연스러운 환경이 조성되는 것을 아버지회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다.
그래서일까? 도촌초 인근 아파트 단지에는 마음 맞는 가족끼리 함께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서로 좋은 정보를 공유하여 청소년수련관이나 주변에서 열리는 행사에도 참여하고 서로의 집에 일이 있을 때는 아이들을 돌봐주는 품앗이도 이곳에서는 많이 일어난다. 임철민 씨는 아빠들끼리 너무 친해진 나머지 잦아진 야간 모임이 부작용이라고 살짝 덧붙인다.
학교 축제로 자리 잡은 1박 2일 캠프
아버지회의 가장 큰 사업은 1박 2일 캠프이다. 작년 ‘별밤 아빠와 함께하는 1박 2일 캠프’에 이어 올해 진행된 ‘아빠와 함께하는 1박 2일 가족캠프’는 아이는 물론 어머니들의 높은 호응을 얻었다.
올해의 가족캠프는 아빠의 빈자리로 소외될 수 있는 학생들을 위해 가족캠프로 보완되었다. 1000명이 넘는 신청 인원은 아버지회를 당황시키기도 했다. 결국 두 차례의 공문 발송으로 인원을 조정하고 부족한 텐트를 대여하고 도시락을 맞추는 등 계획을 변경하느라 힘들었지만 참여한 사람들 모두에게 잊지 못할 추억이었다고 현석대 부회장(40세)은 전한다.
가족캠프에서는 피곤한 아빠, 무서운 아빠는 찾아볼 수가 없다. 회원들은 이 날을 위해 합창과 율동(?)을 준비했다. 권위를 벗어던지고 에델바이스 합창과 군무를 펼치는 아버지들의 모습은 슈퍼주니어의 칼 군무보다 더 반응이 좋았다는 후문이다.
“3주 동안 일요일이면 학교에 모여 3시간씩 공연을 준비했어요. 처음에는 서로 주저했지만 차츰 즐기게 되더라고요. 나중에는 욕심도 생겨서 차 안에서 노래를 연습하는 분들도 많았답니다”라는 현석대 씨의 말에서 아버지들의 노력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태어나 처음 무대에서 춤추는 아빠의 모습을 처음 본 아이들은 열렬한 아빠 팬이 되었다고 한다.
캠프라고 즐거운 놀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빠와 자녀들이 서로에게 편지를 쓰는 시간을 통해 진한 사랑도 느낄 수 있었다. 아이에게 전하는 편지를 읽는 아빠의 모습에 사회자가 눈물을 보였다니 그 감동을 짐작할 수 있다.
“캠프에서 아버지회 회원들은 정작 자신의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없어 울음을 터뜨린 아이들도 있었답니다. 그러나 회원들의 도움으로 더 많은 아이들이 추억을 가질 수 있었어요”라는 임철민 씨. 그는 앞으로 도촌초 캠프를 ‘마을 축제’로 만들고 싶다는 바람도 밝혔다.
아빠의 변신은 계속된다.
등굣길과 하굣길에 아이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아버지들의 모습이 이곳에서는 낯설지 않다. 이뿐만이 아니다. 방황하는 아이들을 돕기 위한 월 5회 방범활동은 선생님들도 함께 한다. “아버지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루어지는 방범활동은 우리 지역의 학생들을 도울 수 있다는 것에 의미가 있어요”라고 현석대 씨는 말한다.
올해는 겨울 등굣길 눈치우기, 교내 캠프, 주말 지역행사 참여 등을 계획하는 등 도촌초 아버지들의 변신은 계속된다. “아빠들도 만나면 아이들을 어떻게 키우면 좋을지 서로 이야기하며 고민한답니다”라는 임철민 씨의 말에서 건강한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 노력하는 슈퍼맨의 힘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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