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화요일 저녁 7시부터 마더센터에서 진행
어린 아이들에게 종이 한 장과 펜이 있다면 무엇을 할까? 분명 끄적끄적 무언가를 그리고 흐뭇해 할 것이다.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느라 신이 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우리는 ‘그림 그리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무엇을 그려야 할지, 어떻게 그려야 할지 고민하다 ‘난 그림 못그리는데......’라는 말과 함께 펜을 놓고 만다. 우리는 왜 자신을 표현하는 자유를 송두리째 뺏겨버린 것일까? 몇몇 능력자들에게만 그 표현의 자유가 허락되는 것은 아닐 터. 서툴고 어색하면 어떤가? 그림을 그리며 자신을 표현하고, 숨겨진 자신을 찾아가는 모임 ‘주경야화’를 소개한다.
잘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리는 것을 즐기는 것
후평동 부안초등학교 맞은편에 자리 잡은 춘천여성협동조합 ‘마더센터’. 매주 화요일 저녁 7시면 북 카페인 이곳에서 책 대신 스케치북을 펼치는 이들이 있다. 가르쳐 주는 강사도 없고, 무엇을 어떻게 그리자는 이야기도 없이 각자 펜 하나씩 들고 원하는 대상을 그리는 이들. 그저 그림 그리는 것이 좋아서 모인 ‘주경야화(晝經夜畵)’ 회원들이다.
“그림 그리는 모임을 하고 싶다고 밴드에 올릴 때, 과연 몇 명이나 올까라는 걱정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외로 관심 있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대부분 오시기 전에 똑같은 말씀은 꼭 하지만요. 저 그림 못그리는데 가도 되요?(웃음)”
이 모임을 처음 만든 김수정(31)씨는 ‘저희 모임에 전문가는 없어요’라며 웃는다. ‘주경야화(晝經夜畵)’의 목적은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는 것. 끊임없이 그림을 그리다 보면 모두가 일상 예술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못 그려도 잘 그려도 상관없어요. 편하게 와서 자연스럽게 그리다 가는 모임이었으면 좋겠어요. 그저 그림을 즐기는 모임 말이에요.”
내 자신을 찾아가는 그림 그리기
‘주경야화(晝經夜畵)’ 모임은 아무런 가이드라인이 없는 만큼 무엇을 그릴지 정하는 일부터 개인의 성향이 드러난다. 동물이 주소재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풍경이나 일상의 모습을 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사람의 표정을 그리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기자기한 물건을 그리기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선을 섬세하게 그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색을 중시하는 사람도 있고, 펜으로 바로 시원하고 거침없이 그리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소재부터 표현하는 방식까지 그리는 이를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것이 그림인 것이다.
정형적인 그림을 배우고 싶지 않았다던 이혜정(38)씨는 그래서 자신에게 그림은 발견이라고 한다. “무엇을 그려야 할지부터 고민하면서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고,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죠. 신기하게도 그림 그리면서 제 자신이 그대로 드러나더라고요.”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지만 특별히 기회가 없었다는 정규리(23)씨 역시 자신에 대해 좀 더 알게 되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내 안에 이런 표현 욕구가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리고 싶은 욕구가 분출했다고 해야 하나요?(웃음) 너무 재미있고 정말 아무 생각 없이 그림만 그리고 싶을 정도로요.”
두 딸과 함께 스케치북을 채우고 있는 하혜정(35)씨는 이 시간이 휴식이며 힐링의 시간이라고 했다. “사실 처음에는 잘 그리고 싶은 욕심이 있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그림에 집중하는 이 시간이 그냥 좋아요. 제 스타일을 찾아가는 기쁨도 있고요. 일하는 엄마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온전하게 자신에게 쓸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잖아요.”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는 그림 그리기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노는 모습을 그리게 되고, 그림을 그리기 위해 사진을 찍게 되면서 자신을 넘어 좀 더 많은 것을 응시하게 되었다는 ‘주경야화(晝經夜畵)’의 회원들. 개인적인 취미 활동이며 전문가 집단이 아님에도 이들의 작품에는 그들만의 향기가 살아있다. 그래서일까. 지역의 몇몇 단체가 러브콜을 보내와 ‘강원여성 일풀기 마음풀기’ 책자 삽화와 상품으로 출시되는 달력 삽화 그리는 일까지 진행했다.
“잔잔하게 여유를 즐기다가 프로가 되어야 한다는 중압감이 있더라고요. 이런 일을 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는 것 자체가 기쁘고 성취감도 있었지만, 여유 있게 일을 맡아야 한다는 교훈도 얻었습니다.”
내년에는 동아리 공모 사업을 통해서 전문 강좌 진행과 자체 전시회도 진행하고 싶다는 ‘주경야화(晝經夜畵)’. 그림을 그릴수록 갖고 싶은 미술용품도 늘어나고, 가고 싶은 전시회도 많아지지만, 가장 좋은 것은 좋아하는 것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라며 ‘춘천시민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겼다.
문의 010-5274-6635
현정희 리포터 imhj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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