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광일중학교(교장 한기석) 신양란 교사는 교수법을 연구하고 교사들에게 전해주는 수석교사다. 국어교사로 시조를 쓰는 시인이기도 하다. 지난 7월 <가고 싶다, 바르셀로나>라는 여행안내서를 펴낸 그에게 청소년을 위한 여행 작가라는 타이틀이 하나 더 붙었다.
‘디테일이 살아있는 색다른 지식여행’이라는 부제가 붙은 만큼 이 책은 바르셀로나를 샅샅이 보여준다.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유물 하나하나 콕콕 집어 사연을 들려준다.
시조시인 선생님의 우연한 해외여행
신양란 교사는 90년대에 등단했다. 글을 쓰는 사람이니 견문을 넓히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특별히 여행을 위해 짐을 꾸리지는 않았다. 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있다 보면 한 해에 두세 차례는 국내를 여행할 기회가 오기 때문이다.
해외여행의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지금으로부터 꼭 십년 전에 남편이 태국 방콕 파타야로 가는 패키지여행을 예약한 것이다.
“해외여행이 그리 보편화된 시절은 아니었어요. 집안 형편도 넉넉지 않았고요. 외국 한번 갔다 오자고 말하는 남편에게 우리 형편에 무슨 해외냐고 말했죠. 그 돈이면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하지만 취소하기에는 손해가 많아 입이 퉁퉁 부은 채로 떠났다.
창문을 열자 새로운 세상이
“밤늦게 호텔에 도착해 너무 피곤해서 쓰러져 잠들었어요. 다음날 아침 반전이 일어났어요. 창문을 여는 순간 들어오는 냄새가 너무 좋아 가슴이 설레는 거예요.”
후끈하면서도 우리나라에서 맡을 수 없는 특유의 향기에 마음을 빼앗겼다. 돌아오자마자 영어학원에 등록했다. 세달 후 자유여행으로 대만에 갔다. 마흔 넘어 발견한 새로운 세상이었다.
신양란 교사는 올 여름도 유럽으로 떠났다. 태국의 아침 향기를 맡은 후 십년 째 계속되는 취미생활이다.
“십년 전에는 하고 싶은 일을 하지도 못하면서 사는 일이 늘 어렵다고 느꼈어요. 경제적으로 어려우니 짜증이 나기도 했고요. 여행을 다니다보니 여전히 상황은 힘든데 불만이 없어졌어요. 내가 하는 것을 하면서 어려우니까요. 아마 여행이 없었다면 가정불화가 심했을 거예요.”
상황은 특별히 나아진 것이 없는데 마음은 여유로워졌다. 경제적인 어려움에 닥칠 때면 ‘나는 이렇게 여행을 다니니까 돈 없이 쪼들려도 싸다’고 받아들이게 됐다. 불만은 사라지고 성격도 낙천적으로 바뀌었다.
학원비를 모아 해외여행을 떠나라
여행이라는 새로운 세상에 눈 뜬 후 학교에 돌아와 아이들을 만나니 마음이 답답했다.
“학부모들에게도 학원 보낼 돈으로 여행을 가라고 말해요. 청소년기에 아이들이 빗나가는 큰 이유는 부모와 행복한 추억이 없어서예요. 가까운 중국처럼 큰 돈 들지 않는 곳에 나가 낯선 데서 새로운 기분으로 대화해 보세요. 추억은 돈으로 바꿀 수 없이 소중하니까요. 세상을 그렇게 배우는 것이 진정한 지식이지 문제를 잘 풀어 점수를 맞추는 건 허공에 짓는 집이라고 생각해요.”
수업 시간에는 틈틈이 해외여행 자료들을 풀어 놓는다. 참고서와 문제집에 몰두해 있는 아이들의 시야를 넓은 세상으로 열어주고 싶었다. 어쩔 수 없는 ‘선생님’이다.
50대, 아직은 꿈 꿀 나이
“성벽에 붙어 있는 작은 조각상에도 의미가 있어요. 총알 자국 하나가 중요한 역사의 현장일 수 있죠. 모르고 가면 다 놓치잖아요. 부지런히 써서 우리 아이들이 가기 전에 지식을 얻고 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업하고 있어요.”
첫 책을 바르셀로나로 잡은 것은 대중적인 여행지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한국인들 특히 청소년들이 즐겨 찾는 해외여행지 안내서를 펴낼 예정이다.
은퇴 후에는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의 민담 전설을 수집하는 것이 꿈이다. 직접 가기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토산품을 모은 박물관도 만들고 싶다.
신양란 교사의 남편 오형권 씨는 사진작가로 여행을 좋아한다. 글을 쓰는 아내와 사진을 찍는 남편이 함께 하니 자료가 착착 쌓이고 있다. 신양란 교사가 갈 길은 아직 가보지 못한 세계 여러 나라만큼이나 멀고도 멀다.
“하고 싶은 게 많으니까 이 나이에도 늘 가슴이 설레요. 오늘 하루 사는 것에 급급해 헐떡거리면서 살면 더 나아지지는 않아요. 마음에 꿈을 간직하고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이향지 리포터 greengreen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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