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리에서 공부할 때 경험했다. 최고의 공연, 최고가의 티켓이 그 분야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가장 먼저 지급된다는 것을. 문화의 발전을 위해서는 그들이 최고의 공연이나 연주회를 많이 보고 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어떤가. 가장 비싼 티켓은 상위 10%만을 위한 것일지 모른다. 15~20만원 하는 티켓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혹은 문화적 약자가 소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점이 A급이라고 언급될 수 있는 연주자들이 무료공연을 많이 해야 하는 이유다.”
성악과 작곡을 전공한 누나들 덕에 일찌감치 클래식의 세계에 들어왔고 무엇을 하든 음악 근처에 있는 것이 당연했던 사람, 비올리스트를 꿈꿨던 비노클래식 구자홍 대표의 말이다.
비노클래식 통해 음악의 문턱 낮아지길 바라
구자홍 대표는 학부에서 비올라를 전공했다. 비올리스트를 꿈꾸며 부단히 실력을 쌓던 그는 어느 날 현실적 한계에 부딪혔다. 다섯 살 때 입었던 화상의 상처로 왼쪽 팔이 다소 짧았던 그가 연습으로는 넘어설 수 없는, 연주자로서의 벽에 이르렀던 것이다. 화상의 상처로 인해 반항적인 사춘기를 겪어야 했던 구 대표에게 다시 한 번 찾아온 실제적인 아픔이었다.
한계상황과 아픔에 직면한 그는 열심히 모았던 저금통장을 털어 유럽으로 여행을 떠난다. 현악기를 다루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곳, 현악기의 본고장 이태리 그레모나로 향했다. 그리고 거기서 사고의 전환을 겪게 된다. 우연히 들리게 된 악기점에서 손가락 4개만으로 악기를 만들고 있는 장인을 만났기 때문이다. 연주자로서의 실패와 그로인한 패배의식이 그의 인생을 삼키고 있던 시기, 그 장인과의 만남은 구 대표에게 터닝 포인트가 됐다. 그는 1997년 이태리로 건너가 악기제작 공부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자각과 열정으로 시작된 공부는 7년이 걸렸다. 그 시간동안 구 대표는 최고의 전문가로 인정받는 마에스트로라는 호칭을 얻고 귀국, 악기를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인생 2막을 시작한다.
비노클래식은 악기를 만드는 구 대표의 작업실이며, 학생들에게 개방된 견학과 교육 공간이고, 연주자나 관람객들에게는 훌륭한 연주회장이다. 구 대표가 악기 만드는 일 외에 비노클래식에서 주력하는 일은 두 가지다. 우선, 견학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에게 비노클래식을 개방하는 것. 총 두 시간이 소요되는 견학은 1부 악기제작 견학과 2부 악기연주로 이루어지는데 악기연주의 경우, 명곡은 물론 교과서에 나오는 음악들을 경험하면서 클래식 악기나 음악을 친숙하게 느낄 수 있다.
또 다른 하나는 비노클래식 정기연주회인데 매달 마지막 주 목요일에 열었던 이 연주회가 이달로 40회를 맞는다. 무료 공연으로 진행되는 이 연주회는 한 달도 거르지 않고 관객들과의 약속을 지켰다. 듣기 어려운 음악, 비싸서 볼 수 없는 연주회, 우리 사회가 만들어 놓은 이런 음악의 문턱을 낮추고 보다 많은 사람이 문화적 공감대를 갖고 마음을 나누길 바라는 마음이 3년 4개월의 시간 속에 담겨 있다. 지난달에는 학생 어른 등 총 90여명이 정기연주회를 관람했다.
비노클래식을 통한 이런 문화적 저변 확대와 함께 구 대표가 음악교육의 무한한 가능성을 확인하면서 참여하고 있는 일이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드림오케스트라 단무장의 일이다. 드림오케스트라는 부모가 없거나 외부모 혹은 조부모 등 가정적 결핍이 있는 학생들이 대상이다. 이들이 악기연주를 통해 상처를 치유하고 하나 된 하모니를 통해 소외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면서 음악교육의 다른 가능성을 확인했던 것. 그들은 모든 악기의 하나 됨을 통해 자신의 삶이 버려진 것이 아니라 준비되고 있었다고 느끼고 스스로의 삶을 가치 있는 것으로 바라보게 됐다. 음악을 통해 이런 것이 가능하다는 것, 이것이 구 대표가 현실에서 구현하고 싶은 음악교육의 참모습이다.
‘메이드 인 대전’의 문화 만들었으면
진정한 음악적, 문화적 소통을 위해 구 대표는 아직도 할 일이 많단다. 비노클래식을 통해 실험을 거듭했던 견학프로그램을 교육사업으로서 ‘에듀캔’이라고 명명하고 음악관련 체험학습으로, 하나의 콘텐츠로 정립할 계획이다. 초중고 직업체험이 가능한, 현악기를 매개로 하는 사단법인을 구성해 좀 더 체계적이고 진취적인 사업으로 확장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 ‘메이드 인 대전’의 색깔 있는 사업으로 추진할 생각이다.
또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클래식이 있는, 악기가 있는 카페를 구상 중이다. 요즘은 갤러리와 카페를 통합해 그림을 감상하면서 커피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제법 많아졌다. 그처럼 악기와 카페를 만나게 하는 것도 하나의 아이템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구 대표는 스스로를 ‘다리’라고 표현했다. 자신은 이쪽의 큰 세계와 저쪽의 큰 세계를 만나게 해주는 다리일 뿐이라고. 훌륭한 예술가들과 대중을, 클래식한 음악과 가능성 무한한 교육을 만날 수 있게 해주는 다리 말이다. 자신이 다리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 낸다면 사회적 약자가 문화적 약자가 되지 않는 그날은 그리 멀지 않으리라 확신한다.
박수경 리포터 supark2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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