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0년째다. 며칠만 있으면 서울 짐을 싸 원주로 온지 그렇게 된다. 그 때도 계절은 겨울 한가운데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감악산 입구 마을건물을 얻어 ‘OK시골’ 간판을 달았다. 창업 3년째 회사였지만 나름 잘 나갈 때였다. 신문방송에 자주 오르내리며 유명세도 타고 있었다. 그렇게 자리를 잡아갈 때 회사를 산속으로 옮기니 주변서 하나같이 걱정했다. 책 만들고 인터넷신문을 발행하는 일은 누가 보아도 도시 인프라가 필요했다. 시골에서는 엄두를 낼 수 없는 모험이었다. 주변 우려에도 불구하고 월간 잡지는 한 호도 빠지지 않고 나왔다.
인터넷 환경이 큰 힘이 됐다. 원고를 싸들고 충무로 디자인실로 인쇄소로 돌아다니지 않아도 책을 만들 수 있었다. 노트북으로 원고를 쓰고 사진을 보내고 교정봐 수정을 하면 책이 트럭에 실려 시골집으로 왔다. 봉투작업을 해 놓으면 우체국에서 싣고 갔다. 그렇게 전국과 심지어 해외에 있는 정기독자들은 산속에서 만드는 책을 받아보았다. 그 때는 해외 구독자들도 꽤 있었다. 면단위 마을 산속에서 전국 및 해외 독자를 상대하는 월간지를 발행한 것은 그게 유일할 것이다.
‘OK시골학교’란 간판을 달고 ‘전원생활과 전원주택’이란 주제의 강좌도 열었다. 판자로 만든 책상에 나무의자, 빔프로젝터도 없이 칠판 하나가 전부인 강의장이었지만 전국에서 많은 수강생들이 찾아왔다. 1박2일 숙박으로 많을 때는 매주 20~30명 정도 교육을 했다. 그 중에는 현직 판사도 있었고 기업 대표, 의사, 공무원, 예비역 장군 등 다양한 신분의 나름대로 잘 나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어떨 때는 4년제 대학 교수 세 명이 동시에 강의를 듣기도 했다. 공무원들이 단체로 오고 “시골에 젊은 사람이 이상한 교육을 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왔다며 청와대 민정비서관이란 이가 찾아오기도 했다. 얼마 후 그는 무슨 청장으로 발령받아 간부회의 때 내 얘기를 했다고 들었다.
그 과정서 모임이 만들어지고 포럼도 생겼지만 몰려다는 것보다 혼자 놀기를 좋아하는 성격 탓에 끼지는 않았다. 내가 만든 인터넷신문과 교육을 벤치마킹해 공기업에서 책을 발행하고 포털사이트를 오픈하고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한 지자체에서는 공무원들이 교육을 받고 똑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얼마 후 정부 예산을 지원하는 비슷한 공짜 책과 교육들이 넘쳐났다.
시골에서 10년, 돌이켜 보면 시골환경서 일하는 것보다 돈 많은 정부와 공기업과 경쟁하는 것이 더 힘들었다. 다 능력 탓이다. 또 다시 새로워질 때다. 내 글로 내 책을 내고 사랑방 같은 공간 하나 만들어 도란도란 어울리고 싶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