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고 시설 내내 하나의 꿈을 목표로 흔들림 없이 준비하기가 쉽지는 않다. 이번에 만난 이윤원양은 고집스럽게 한길을 걷고 있는 보기 드문 주인공이다. 동그란 눈, 웃을 때마다 양 볼에 들어가는 보조개가 매력적인 이양은 역사학자를 꿈꾸는 자신의 이야기를 차분히 들려준다.
경주 여행의 감흥이 역사 사랑으로 이어져
초등학교 시절 삼국유사, 삼국사기 읽으며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 이 양. 그는 가족과 떠난 경주여행에서 석굴암, 불국사를 직접 만나자 한껏 신바람이 났다. “신라인 김대성이 만든 불국사를 1300여년 뒤 태어난 내가 이렇게 볼 수 있다니... 책 속 역사가 눈 앞의 사실로 다가오니 신기했죠. 그 뒤 박물관, 역사유적지를 주말마다 쉼 없이 데려가주신 부모님 덕을 톡톡히 봤어요.”
역사에 재미를 들인 뒤부터 <영원한 제국>, <바람의 화원>, <성균관 스캔들>, <뿌리 깊은 나무>처럼 역사를 소재로 한 소설, 만화, 드라마는 장르 불문하고 골고루 섭렵했다. 책 벌레 손녀딸을 위해 멀리 사는 할아버지는 매월 다섯 권씩 책을 택배로 선물하며 이양을 응원했다.
‘대중과 소통할 줄 아는 역사가’가 목표
고교 입학 후에는 역사, 외교, 문화 분야에서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가지고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반크 동아리에 가입했다. 덕분에 이 양의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은 한층 깊어졌다.
“일본 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위안부 할머니 수요 집회 때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이 났어요. 1000번이 넘게 열리는 수요 집회 때마다 ‘침묵의 모르쇠’로 일관하는 일본대사관의 행태를 내 눈으로 확인하니 화가 치밀어 오르더군요.”
한편으로는 실천 의지는 없고 말만 앞서는 우리 나라 사람들의 역사 인식에 실망감도 맛보았다. “다들 독도는 우리 땅이라며 목소리를 높이죠. 하지만 주장의 목소리만 높지 실천 의지는 부족해 보여요.” 그러면서 인사동 독도캠페인에서 만났던 일반인들의 냉담한 반응을 들려준다.
이 같은 현장 경험 덕분에 역사학도가 갖춰야 할 핵심 자질을 고민해 볼 수 있었다고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의 중요성을 절감했어요. 말이든, 글이든.”
삼국시대 유물에 애정이 깊은 그는 앞으로 자신의 연구내용을 대중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론’을 꼭 풀어야 할 숙제로 간직하고 있다.
반크 동아리 활동 덕분에 또래들과 추억도 많이 쌓았다. “전주한옥마을에 사시는 할아버지댁에 우리 학교 18명 동아리회원들이 몽땅 찾아가 하룻밤 지내기도 했어요. 나는 어릴 때부터 자주 들렀기 때문에 한옥이 친숙한 공간인데 또래 친구들은 무척 신기해 하더군요. ”
역사에 대한 이양의 남다른 애정은 자발적인 공부로 이어졌다. 독학으로 공부해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서 1급을 땄고 한자 실력이 뒷받침 돼야 역사를 제대로 공부할 수 있겠다는 욕심에 한자능력검정시험 2급 자격증까지 손에 쥐었다.
공부 1등? 의지와 실천력이 판가름
목표를 향한 실천의지가 남다른 그는 줄곧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을 만큼 공부 욕심도 많다. 1등의 공부 노하우가 궁금했다.
“고1 때까지만 해도 공부한 만큼 성적이 오르지 않았어요. 공부 방법이 서툴러 배운 내용이 뒤죽박죽 뒤섞였기 때문이죠. 그 뒤로 교과서 목차와 학습목표를 꼼꼼히 읽으며 공부의 틀을 세운 뒤 세부내용을 암기하니까 머릿속에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되면서 점수가 오르더군요.”
이양의 교과서를 펼치자 군데군데 붙은 포스트잇에는 요점 정리가 깨알 같이 메모돼 있 다. “배운 내용의 개념과 요점을 정확히 이해하는 게 먼저고 문제풀이는 그 다음 순서예요. 자칫 학원에 휘둘리다 보면 문제만 잔뜩 푸는데 내 경험상 개념이 정리돼 있지 않은 문제 풀이는 별 효과가 없더군요.”
수학은 논리적으로 문제를 푸는 방식을 터득하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고 귀띔한다. “노트에 풀이과정을 하나하나 적어가며 문제를 풀었어요. 수학의 논리적인 흐름을 머리 뿐 아니라 손으로도 익히게 하려고요. 덕분에 계산 실수도 줄일 수 있었지요.”
공부 슬럼프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통과의례. 그도 고1 때 지독한 슬럼프를 겪었지만 피겨여왕 김연아 선수의 훈련 방식을 벤치마킹하며 마인드 컨트롤했다고 털어 놓는다. “내 점수를 자꾸 남과 비교하니까 초조해지고 시험 볼 때마다 일희일비하게 되더군요. 해법은 내 안에 있는데 말이죠. ‘다음에 더 잘하면 된다. 최종 목표는 수능시험이다’라고 스스로 격려하며 심적 부담감을 덜자 나만의 공부 페이스를 찾을 수 있었어요.”
이양의 힘겨운 고3 행군을 위로해 주는 건 첼로. 묵직한 음색에 반해 초등학교 때부터 줄곧 켜고 있다며 애창곡인 바흐의 무반주곡을 연주하다보면 요동치는 마음이 한결 잔잔해진다며 웃는다.
“입시 문턱만 넘으면 어릴 적부터 품었던 역사학자의 꿈에 성큼 다가갈 수 있다고 나를 다독여요. 남은 시간은 결국 ‘또 다른 나’와의 한판 승부니까 끝까지 노력해야죠.” 그의 얼굴에는 굳은 다짐이 엿보였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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