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날인

서예림 성덕고 2학년

보물 1호는 카메라, 내 꿈은 영화감독

지역내일 2014-11-18

“보물 1호예요.” 서예림양이 애지중지하는 DSLR카메라는 반짝거렸다. ‘영상의 신세계를 함께 걷는 친구’라는 주인장의 말 속에는 애정이 담뿍 담겨 있다.
그는 지난 10월 강동구 창의적체험활동 발표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처음엔 얼떨떨했는데 주위에서 축하 세례를 받으니 실감이 나데요. 진짜 기뻤어요.” 단정한 커트머리에 검은 뿔테 안경 너머로 깊고 날카로운 눈을 가진 서양이 자분자분 말한다.

서예림


학교UCC대회 최강자로 자리매김
대회에 참가한 쟁쟁한 고교생 실력자들 사이에서 심사위원들이 발견한 ‘서양의 힘’은 무엇일까?
중3 겨울 지독히 앓은 슬럼프 이야기부터 풀어낸다. “과고 진학에 실패하고 상처가 컸어요. 방에서 꼼짝도 안했어요. 책과 담 쌓은 채 ‘잉여 인간’처럼 사는 내 자신이 못마땅해 더 자책하고... 악순환이었지요.”
중학교 내내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며 기대를 한몸에 받던 그는 처음 맛본 좌절이 쓰리고 아팠다. 그러다 우연히 인터넷을 검색하던 중 ‘삶의 지푸라기’를 잡았다. “내 또래 외국인 학생이 만든 단편영화를 보면서 강렬한 인상을 받았어요. ‘나도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지요.”
생뚱맞은 생각은 아니었다. 중학 시절 혼자서 베가스 편집프로그램 독학으로 익혀 이것저것만들어 보고 오디오 기술도 틈틈이 익혔던 터였다. 과거의 ‘재미있는 경험’을 새록새록 떠올리며 ‘꿈 찾아 홀로서기’가 시작됐다.
“고교 입학 때 받은 장학금으로 카메라를 사서 촬영부터 시작했어요.” 영상물이 완성될 때마다 유튜브에 올렸다. 제작물이 쌓여갈수록 세련된 편집기술에 욕심이 났다.
“영상을 프레임 단위까지 정교하게 잘라 이어붙이고 색감과 오디오 레벨을 세밀하게 조정해가고... ‘편집의 손맛’을 조금씩 터득해 나갔어요.” 네티즌들이 유튜브에 올린 영상들에 호응하자 신이 났다.
이후로 교내 모든 UCC 대회에 꼬박꼬박 출품했다. 과학의 날 행사, 통일UCC, 나의 꿈UCC, 중국어UCC, 일본어UCC... 참가 횟수가 늘수록 상장이 수북이 쌓였고 덩달아 자신감도 커졌다. ‘영상은 서예림이 최고’로 통했다.


빨간 노트에 쓴 영화감독의 꿈
진로가 또렷해지자 멘토가 필요했다. 우선 영화이론서, 시나리오작법 같은 책들을 꼼꼼히 찾아 읽었고 유명인들의 강연회를 쫓아다녔다.
“로보트 태권V를 제작한 김청기 감독님은 ‘많은 걸 해보라’는 키워드를 던져주셨어요. 나영석, 이명한, 신형관 같은 스타PD끼리의 대담장에서는 ‘대중과의 소통’이 뭘 의미하는 건지 감이 왔어요.” 꿈이 간절하니 대가들이 툭 던진 금언들이 가슴에 켜켜이 쌓였다.   
서양이 빨간색 노트 2권을 내민다. 손바닥 반 만한 크기의 노트를 펼치자 공부하다 책을 읽가 길을 걷다 TV 보다 수다 떨다 그의 머릿속에 스친 영상 아이디어들이 빼곡히 적혀있다. ‘순간의 영감’을 메모하기 위해 어디를 가든 꼭 몸에 지닌단다. 또 다른 노트에는 시나리오 습작이 보인다. “조약돌(pebbles)이란 제목으로 청소년 성장기를 담은 단편영화 시나리오를 쓰는 중입니다. 겨울방학 때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에요.”
몇 달 전부터 ‘영상 동지’까지 생겼다. 유튜브에 올린 영상을 보고 안산 미디어고 학생과 인연이 닿아 공동작업을 진행중이다. “고급 촬영 장비를 골고루 다뤄봤어요. 컴퓨터그래픽에 능한 친구 덕에 영상물 완성도도 높아졌고요. 새로운 인연들이 고맙지요.”


“실패도 내 인생의 한 부분이더라”
예비 고3인 서양. 영상의 재미에 푹 빠져 지내면서도 학교 성적은 야무지게 관리중이다. 교내 영재반에 뽑혀 심화 수업도 듣는 중이다. 주말에 홀가분하게 영상 작업에 몰두하기 위해 주중에는 오롯이 공부에 집중 투자하는 ‘건강한 이중생활’을 충실히 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과학고 3차 면접에서 나의 장래 희망을 분명히 답하지 못했어요. 주위 부추김 때문에 과고 원서를 낸 거였고 깊은 고민 없이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영혼 없는 답변’을 했죠. 면접관들이 그걸 꿰뚫어 봤기 때문에 탈락시킨 거고요. 허나 지금은 내 꿈, 목표, 열정을 분명히 말할 수 있어요. 영상미가 빼어난 미국 영화감독 웨스앤더슨이 롤모델입니다.”
‘포기하지 말자’가 좌우명이라는 서양. 실패도 인생의 한 부분으로 껴안고 성장의 자양분으로 삼은 모습이 단단하고 듬직해 보였다.


서예림의 한마디
후배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고교시절에는 성급히 직업을 정하는 것보다 자신이 어떤 삶을 살지 정하는 것이 중요해요. ‘나는 영화감독이 될 것이다’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이 될 것이다’가 내 목표거든요. 덧붙여 슬럼프에 빠진 후배들이 있다면 ‘당신은 생각하는 것보다 뛰어나고 능력이 있다’란 말을 전해주고 싶어요. 과거, 이 말이 내게 큰 힘이 됐거든요.”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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