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은 부부싸움을 하고 아파트 1층 텃밭에 나와 흙에 호미질을 하는데, 어느 순간 마음이 가볍더라고요. 나중에 알고 보니 흙에는 스트레스를 진정시키는 ‘방선균’이란 게 있는데 항암제에도 쓰이는 물질이라더군요. 그 뒤부터 자연스럽게 흙에 이끌리게 됐어요.“
파주 교하에 살고 있는 이여옥 텃밭지도사의 말이다.
흙, 그 속에는 어떤 힘이 있을까?
김수정 리포터 whonice@naver.com
향긋한 흙냄새 맡으며 변화하는 아이들
숲 속 산길, 향긋한 흙냄새를 맡으며 걷다보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경험, 많이들 해봤을 것이다. 그런데 이 흙냄새를 내는 장본인은 흙이 아니라 균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흙 속에 사는 미생물인 방선균이 만들어내는 지오스민의 냄새가 바로 이 흙냄새다.
지오스민은 마치 숲속 나무가 뿜는 피톤치드처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효능이 있다. 또 인체의 생리작용을 조절하는 물질이 많아 항암제, 항생제, 고지혈증 치료제 등 다방면의 치료제에 사용되고 있다.
파주 교하에 살고 있는 이여옥 텃밭지도사는 이 흙과 관련해 의미 있는 경험을 했다. 지난 해 고양시 대화동에 위치한 농업체험공원에서는 5개 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텃밭수업이 진행된 적이 있었다. 이여옥 텃밭지도사도 이 수업에 강사로 참여했는데 주엽초 3학년 두 반의 아이들을 맡아 1년여에 걸쳐 주 1회, 총 22회의 텃밭수업을 진행했다.
“아이들끼리 서로 의견을 조율하며 각자의 일을 분담해 일할 수 있도록 공동경작 프로그램으로 진행했어요. 1학기 땐 텃밭에 그리 큰 관심을 보이지 않던 아이들도 2학기 때부터는 자기 밭에 큰 관심들을 보이며 작물 욕심을 내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렇게 텃밭 수업을 진행하다보니 학생들에게는 작은 변화의 움직임들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학교 측 관계자에 따르면 아이들 간 싸움이 줄고 소외됐던 아이들이 텃밭을 중심으로 한데 섞이더라는 것. 또 표정이 어두웠던 아이들이 텃밭 수업 진행 후 많이 밝아진 모습을 보였다. 자연 속 텃밭에서 너나 할 것 없이 평등하게 흙과 함께 어우러지는 수업이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다.
“1년간 그렇게 수업을 해보니 아이들과 학부모 모두 만족도가 굉장히 높았어요. 그래서 그 이듬해, 이 학교에서는 초2 전교생으로 수업대상을 확대해 정규수업 시간 안에 텃밭 수업을 프로젝트 수업으로 편성해 진행하기로 했죠.”
이씨는 텃밭수업이 아이들 정서순화는 물론 음식, 환경, 먹을거리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생각의 변화를 이끌 수 있다고 생각한다.
“텃밭수업을 받은 아이들이 결과물을 집에 가져와 엄마나 아빠에게 보여줄 때 귀찮아하지 말고 관심을 보여주며 지도해주세요. 주변의 어른들이 관심을 갖고 지켜봐줄 때 텃밭 수업의 교육 효과가 더 높아질 수 있거든요.”
위안과 힐링이 되는 텃밭농사 알리고파
이씨는 텃밭을 일구며 그 자신 역시 생활과 생각의 변화를 많이 갖게 됐다고 한다.
“예전에는 10개를 심으면 9개를 내가 먹으려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10개를 심으면 3개는 내가 먹고 3개는 벌레가 먹게 하고, 나머지는 겨울 들짐승이 먹게 놔두려 해요. 이게 자연스러운 것이란 걸 알게 됐거든요.”
그는 또 많이 가지려는 욕심 대신, 먹을 만큼만 소유하고 주변 사람들과 나누고자 하는 공동체적인 의식을 갖게 됐다고 한다.
“더 많이 가지려 하다가 결국은 못 먹고 버리는 음식이 많잖아요. 특히 파주지역은 음식물쓰레기 1kg당 90원 정도를 내고 버려야 해요. 식량을 먹을 만큼만 갖고 주변 사람들과 서로 나누면 음식물 쓰레기도 덜 버리게 되고 환경보호도 할 수 있어요.”
이씨는 생명을 잉태하는 텃밭에서 빼 놓을 수 없이 중요한 우리의 토종씨앗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IMF때 종묘회사들이 외국으로 많이 넘어가며 비싼 로열티를 주고 무, 배추 등의 씨앗을 사오고 있어요. 우리 도시농부들은 우리 종자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씨앗 나눔을 하고 있어요. 내 밭에 씨앗이 많이 떨어지면 이것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고 있죠.”
그는 자신의 강의장에서 만난 수강생들에게도 자신이 가진 토종씨앗을 아낌없이 나눠주며 확산을 당부하고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실천이 토종씨앗의 보존과 확산에는 중요한 밑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텃밭지도사로서 하고 싶은 일이 많다. 우선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흙이 주는 재미와 감동을 더 많이 전하고 싶은 마음이 크고, 또 지역 내 텃밭가드너 양성에도 힘을 기울여 지역 내 텃밭문화 활성화에도 일조하고 싶다. 그리고 텃밭농사를 보다 깊이 있게 공부하기 위해 생태와 관련된 공부도 더 할 생각이다.
이씨는 마지막으로 “농사가 단순히 몸을 쓰는 노동이 아닌, 위안이 되고 힐링이 되는 작업이라는 것을 더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체험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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