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음식점을 열기에 너무 이르지도 많이 늦지도 않은 나이. 하지만 불경기를 호소하며 찌푸린 사람들 사이에서 그는 이상하리만치 느긋해 보였다. 손님이 오면 감사하고 안 와도 괜찮다는 미고렝나시고렝 장재헌 대표. 아무래도 그는 ‘조금 이상한 사장님’이다.
커피로 시작해 요리로
처음 시작은 커피였다. 그전에는 그도 넥타이 매고 정장입고 출근하던 샐러리맨이었다. 2004년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커피가게 사장님으로 명함을 바꿨다.
평범한 커피집은 아니었다. 지금에 와서야 유행하는 핸드드립 커피를 팔았으니까. 스타벅스가 막 문을 열었고 시럽 듬뿍 올린 카라멜마끼아또에 사람들이 열광했던 그 때 사람들에게 핸드드립 커피는 낯설었을 것이다.
세대를 굳이 나누자면 우리나라 원두커피 역사에서 1.5세대 정도 되었을까. 역삼동 테헤란로에서 커피하우스 힐이라는 커피가게를 4년 동안 운영했다.
커피만 계속 하다 보니 함께 할 메뉴를 배우고 싶었다. 제과제빵을 시작한 계기다. 하지만 손님은 많지 않았고 ‘저녁에 술을 팔아볼까’ 생각하며 칵테일 전문가 과정을 배웠다.
자연스럽게 요리로 관심이 흘러갔다. 한식학원에서 처음 배운 요리는 뜻밖에 재밌었다. 본격적으로 배워보자 마음먹고 청담동에 있는 어느 한식집 주방에 들어가 요리를 배웠다.
요리를 하려면 설거지부터
이왕 가게를 낼 거면 우리나라에 없는 외국 요리부터 공략하자 생각했다. 찾아낸 메뉴는 일본 라멘이었다. 가족끼리도 비법을 공유하지 않는다는 일본 식당에 지인을 통해 들어갔다. 돈 한 푼 받지 않고 설거지하면서 일해 주는 대신 나가사키짬뽕의 비법을 배웠다.
“지금 미고렝나시고렝의 모태가 된 식당이죠. 동네에 하나 뿐인 조그마한 식당에 저녁이면 경찰서 직원, 퇴근한 택시기사 할 것 없이 모여 밥을 먹고 갔어요.”
한국에 들어와 음식점을 차리려고 했더니 주변에서 ‘너무 빠르다’며 말렸다. 그때가 2005년 이었으니 나가사키짬뽕은 커녕 일본 라멘도 알려지지 않은 때였다.
다시 이태원으로 넘어갔다. 지금이야 번화하고 대중화된 거리지만 8년 전만 해도 외국인들이 많은 우범지대라는 인식이 강했다.
외국인 주방장들이 요리하는 인도네시아 레스토랑에 들어가 또 설거지부터 시작했다.
발리와 인연을 맺다
“발리 레스토랑에서 일 년 가까이 일을 하고 나니 도대체 발리는 뭘까 궁금했죠. 가족들을 데리고 발리로 휴가를 갔어요. 그 후 8년 동안 해마다 발리에 가게 된 거예요.”
그 후에도 홍석천씨가 운영하는 타이레스토랑, 칼국수 전문점, 브런치레스토랑 등을 다니며 요리를 익혔다. 캐나다와 미국 발리를 돌며 2년을 살다 일산 대화마을로 들어왔다.
대화동은 그가 하고 싶은 레스토랑을 열 수 있는 상권은 아니었다. 때를 기다리던 그에게 2년 전 아들이 물었다.
“아빠 왜 일 안 해? 아빠가 일하는 모습 보고 싶어.”
이태원은 아니라도 최소 홍대에는 나가야 한다고, 네가 아직 어리니까 멀리 갈 수가 없다고 대답한 그에게 아들은 다시 말했다.
“그럼 근처에서 요리하면 되잖아.”
미고렝나시고렝은 그렇게 시작했다. 간판도 없이.
최근에는 서울에서 간판 없는 가게들이 유행이란다. 누군가는 그래서 안 달았냐고 묻지만 그건 아니다. 그저 아들에게 요리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시작한 가게였다. 실험적으로 딱 2년만 하고 문을 닫으리라, 했던 가게가 생각과 달리 점점 다른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다.
동네 작은 가게에서 느끼는 행복
“돈을 벌 목적은 아니고 이 동네에 없는 요리 하나를 소개한다는 생각이었어요. 이왕 시작한 거 동네니까 정직하게 하자. 정성들여서 할 자신은 있다는 마음이었죠.”
간판을 내걸고 자부심을 드러낼 정도의 실력 있는 요리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저 동네 아저씨가 이웃들을 위해 만드는 낯설지만 맛있는 요리를 파는 식당이라고 인식되면 충분했다. 돈은 그 다음이었다. 동네에서 비싸게 받고 팔 수 없어 메뉴는 인도네시아식 볶음국수 미고렝과 볶음밥 나시고렝, 그리고 타이 커리로 정했다.
일 년이 지나가는 지금 신기하게도 매출은 계속 늘고 있다. 보인 것은 정성뿐이었는데 손님이 다시 손님을 데리고 오는 일이 이어졌다. 아내와 다투고 갈 곳 없어 동네 골목을 무작정 걷던 손님이 다 저녁때 찾아와 맥주 한 잔에 푸념을 늘어놓고 간일도 그에게는 그저 감사한 경험이었다.
장재헌씨는 네 개의 음식점을 여는 꿈을 꾸고 있다. 발리레스토랑과 나가사끼짬뽕전문점, 한식당과 샌드위치전문점이다.
일산 그것도 대화동 골목, 간판도 없는 작은 가게 미고렝나시고렝에서 그는 조용히 때를 준비하고 있다. 그릇이 작으면 아무리 큰 축복을 내려줘도 담지 못한다고 장재헌씨는 생각한다. 그의 블로그(http://blog.naver.com/llcookj)에는 기도 같은 일상의 기록들이 담겨 있다. 성공을 기다리며 그는 지금 끊임없이 자신을 빚는 중이다.
위치 일산서구 대화동 1446-2 현대프라자 106호
문의 031-915-9973
이향지 리포터 greengreen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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