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한 때 꿈은 전원생활 하며 시인으로 사는 것이었다. 알량한 재주로 굶어죽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접고, 잡문을 쓰며 지금까지 살았다. 그러다 이젠 집을 짓는다. 꼭 필요한 것이 ‘의식주’다. 누군가는 나를 위해 밥을 짓고 옷을 만들었다. 남이 지어놓은 집에 다리를 뻗고 살았는데 그 고마움을 몰랐다. 돈을 주고 샀으니 다 나의 공이라 여겼다. 철들어 집을 짓다보니 그런 생각들이 부끄럽다 여겨진다. 진정 남을 위해 한번 살지 못했는데 요즘 그나마 집을 짓고 있으니 짐 하나 던다는 생각으로 편하다. 그 맘을 시로 써 내가 짓는 집 상량문에 담아보았다.
‘살다가 멈칫 꽃이 피고 길을 가다 선뜻 바람 부는 것이 언제 내 뜻이었던가. 내 맘 아득히 비올 때면 옆에 있는 사람도 도진 듯 그립고, 늦가을 부리 무뎌진 볕에 꽃잎이 지고 나면 떠나고 보낸 사람들 하나하나 단풍 되어 가슴에 새겨지는 아픔이 어찌 내 뜻이었겠는가.
속절없는 인연에 외롭고 쉴 새 없는 가난이 등짐이던 밤 마디에서 잠들다 깨 밤을 새고 다시 맞는 우울한 아침에도 누군가는 나를 위해 밥을 짓고 옷 깁고 따뜻하게 덥혀놓은 그대 집 아랫목의 목이 메던 사랑, 그 때까지도 나를 위한 누군가의 가슴앓이에 진정 감사한 적이 있었던가.
그렇게 사는 것, 살다가 무엇이 되겠다는 것도 내 뜻은 아니었지만, 때로 어긋나는 인생에 분노하고 시기하고 이대로 사는 때때로의 거짓이 부끄러워 오십 넘어 누군가에게 감사할 집을 짓는다.
꽃 피고 바람 불면 그대로, 그리운 대로 사랑하는 대로 내 뜻대로 터를 닦고 기둥을 세우고 바람을 막고, 그대 배 터지게 밥을 짓고 따뜻하게 등 누일 충분한 볕이 드는 집, 때론 배 아프게 낳고 마음 졸여 기른 아이들이 오물오물 아이를 낳아 꼼지락거리며 텃밭에서 빨간 토마토를 한 아름 따 가슴에 안고 하늘 넓은 다락방에서 잠이 들고, 소문도 없이 첫눈 내리는 날 너무 오래 잊었던 벗이 편지처럼 찾아와 아궁이 가득 장작을 지피고 고기를 굽다 소주를 마시다 노래를 부르다 별 것도 아닌 인생 아쉽다 조롱하다 뒷산 억새처럼 늙어 갈 집, 볕 잘 드는 마당가에 매화나무 하나 심어 기르다 비늘마저 하얗게 늙어 지면 흙처럼 나무 아래 묻혀 동면, 이듬해 이른 봄비에 깨어 매화꽃이 되는 집, 집을 짓는다.
내 믿음이 어디까지 닿을지 모르는 줏대없는 삶이 부끄럽고 내가 알고 있는 어느 신을 만나도 죄스럽지만, 오늘 집을 상량하며 머리 숙이고 손을 모아 “누가 살아도 해 뜨면 따뜻하고 낮은 윤택하고 밤은 평온하며 어느 계절도 거스르지 않는 자연스런 집이 되게 하소서” 상량에 부처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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