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을 위한 자유 시간, 주부들의 프리데이

프리데이 선언! 주부, 집을 떠나 길을 나서다!

지역내일 2014-03-26

 ‘나만의 시간이 필요해......’ ‘나만의 시간이 필요해......’
어디선가 끊임없이 메아리치고 있는 속삭임이 있었다.
그래, 일단 떠나보자.
송파강동광진 내일신문 4명의 리포터들이 ‘자유부인’임을 선언, 자유를 만끽하고 돌아왔다.
오미정 박지윤 오현희 이은경 리포터


프리

‘핫 스트리트’ 쏘다니며 기 충전
 나이를 먹는다는 건 왜 사는가(why),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what), 어떻게 살 것인가(how) 세 가지 물음에 나만의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게 나의 지론이다.
 가끔씩 답을 찾다 길 잃고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머리에 냉찜질이 필요할 때 잠시 공간 이동이 필요하다. 일명 프리데이~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이다. ‘제3의 공간?’ 말은 거창하지만 그냥 혼자서 거리를 쏘다니며 머릿속 엉킨 실타래를 푸는 나만의 ‘의식’이다.
 몇 년 전 체코 프라하성 한켠의 거리 오스트리아의 예쁜 호수마을 할슈타트 등지를 여행하면서 개성 있고 아기자기한 ‘스트리트’에 반해 전 세계는 아니더라도 대한민국의 ‘예쁜 도시 길’을 몽땅 밟아봐야지 결심했더랬다. 그리고 나의 프리데이에 이태원의 꼼떼길, 인사동, 가로수길...처럼 핫플레이스를 차례차례 탐험중이다.
 최근에 길을 나선 곳은 서촌. 지금은 70~80년대 풍의 거리에 2014년의 세련된 디자인을 입고 연일 상한가를 치고 있는 곳이다. 미 국무장관 덕에 유명세를 치르는 통인시장 기름떡볶이를 줄서서 맛보고 수십년 헌책방의 역사를 차곡차곡 쌓은 대오서점과 20대 젊은이들이 패기에다 아이디어를 보탠 재미난 메뉴로 입소문난 남도분식 같은 개성과 스토리가 있는 상점들이 줄지어있는 거리를 어슬렁거리니까 기가 팍팍 충전되는 느낌이다.
 세월의 때가 묻어 ‘꼰대’가 돼가는 것 아닌가 나 자신이 못마땅할 때 최신 유행을 꽃피우는 치열한 삶의 현장들이 모인 거리는 내게 에너지를 준다. 이 때문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나 홀로 길거리 탐험을 무척 아끼며 카메라 셔터를 부지런히 누르며 나만의 기록을 차곡차곡 사진으로 글로 남기는 중이다.


보물 같은 친구들과 누리는 호사스러움
 나에겐 정말 보물 같은 친구들이 둘 있다. 우리 집 참기름이 떨어진 걸 어떻게 아는지 자기네 참기름을 주문하면서 같이 샀다며 아무렇지 않게 건네주는 친구. 또 한 친구는 언니네서 김치를 얻어먹는 내가 안쓰럽다며 손수 김장을 담가줘 나를 눈물짓게 한다. 나이를 들면서 돈, 명예, 권력이 중요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난 이 여고 동창 친구들이 그 무엇보다 더욱 중요하다. 이들은 ‘나도 인생을 잘못 살지는 않았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사람들이다.
 우리 셋은 매달 7만원씩 돈을 모은다. 처음엔 ‘유럽여행’이라는 거창한 계획 아래 돈을 모으기 시작했지만, 이젠 그 목표가 바뀌었다. 가끔 만날 때, 우린 가족과 함께 누리기 힘든 ‘호사’를 계획한다. 가장 맛있는 집에서 밥을 먹고, 가장 분위기 좋은 곳에서 커피를 마신다. 그날만큼은 ‘가격’에 절대 얽매이지 않는다.
 이 호사의 절정은 매년 한 번씩 갖는 호텔에서의 1박2일이다. 클럽 룸을 예약, 조식은 물론 이브닝칵테일, 차와 음료, 수영장과 사우나 등을 맘껏 누리는 것. 일반 룸 가격에 15만 원 남짓만 추가하면 셋이서 이 모든 걸 1박 2일 동안 즐길 수 있다. 1년에 하루 허락되는 호사인 셈이다.
올해는 인천영종도를 다녀왔다. 큰 아이가 모두 고3이라는 공통점이 있어서인지 그 하루가 더욱 의미 있게 다가왔다.
가끔 내 이름 석자를 잃어버리고 산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누구 와이프, 누구 엄마가 아닌 오롯이 내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큰 힘을 얻게 되는 느낌이다. 마음 맞는 친구와의 1박2일 프리데이. 정말 강추하고 싶은 시간이다. 


문화로 즐기는 나만의 시간
 남편과 아이들을 일터로 학교로 보내고 한가해지는 오전 시간, 집에서 가장 가까운 미술관인 한미사진미술관으로 향했다. 늘 아이들과 남편과 함께 하다 보니 혼자서 보내는 시간이 익숙하지 않았지만 가끔은 혼자만의 시간을 꿈꾸다 오늘에서야 실행을 해보았다.
 미술관은 개관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인지 넓은 전시관을 나 혼자 독차지할 수 있었다.  전시관을 전세 낸 기분이랄까? 대부분 다른 전시관을 찾을 때면 주말이라 늘 혼잡하고 제대로 작품을 감상할 여유가 없기 일쑤였는데 이번 기회에는 그야말로 제대로 된 감상을 할 수 있었다. 한 작품 한 작품을 누구의 방해도 없이 오랫동안 들여다보다보니 작가가 무슨 의도로 이 작품을 찍었는지 작품의 의미는 무엇인지 평소 생활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할 시간이 내게 주어졌음에 감사하게 되었다. 
 스칼렛 호프트 그라플랜드는 네덜란드 출신으로 오지를 여행하며 그곳을 캔버스 삼아 사진에 담는 작가이다. 그는 오지 중에서도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장소들만 찾아다니는 생활여행자라는 평을 듣는다. 작가는 “접근이 어려운 외딴 지역만이 가진 순수함이 매력적이다”,  “거대한 자연과 대면했을 때 인간은 결국 나약한 존재이며, 자연의 일부분에 불과함을 인식한다. 그 사실을 내 사진을 통해 이야기 하고 싶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여행’이라는 캐나다의 오지 누나부트에서 찍은 순록의 뿔 여러 개를 파란 하늘과 대비시키면서 얼음강 위에 늘어놓은 사진이 인상적이었다.
 가끔은 이렇게 혼자서 여유롭게 영화를 보거나 전시회를 찾아 문화를 즐기는 시간을 갖는 것도 일상의 재충전을 위한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나를 위한 시간, 결국 선택의 문제 혼자 떠나는 청계산 산행.
 남편과 아이들이 모두 각자의 공간으로 자취를 감추고 나면 청소기를 돌리고 주말 내내 어질러놓은 집을 정리하는 시간이지만. 몇 번의 망설임 끝에 작은 배낭에 물과 커피, 책 한권을 담고 길을 나섰다. 언제나 온 가족이 함께 움직이던 것에 익숙해진 터라 혼자 가는 산행이 결코 쉬운 결심은 아니었지만 막상 길을 나서니 홀가분함이 느껴진다. 이어폰도 일부러 가져가지 않았다. 사람들 웃음소리도, 졸졸 냇물 흐르는 소리도, 낯선 새의 울음소리조차도 모두 자연인 것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얼다 녹기를 반복하며 길을 터준 봄날의 흙 사이로 새싹이 하나둘 올라오고 개나리 꽃 봉오리가 어느새 통통하게 살이 올랐다. 걷다가 목마르면 물마시고 다리 아프면 쉬어가면 되는 것을. 산을 오르다 이정표를 발견하고 잠시 멈춰 섰다. 가파른 산을 오르며 ‘결국 나를 위한 여가시간도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인생은 언제나 선택의 순간에 서게 되고 오늘 이 시간 또한 내 선택의 결과다. ‘왜 우리는 다른 여러 종류의 삶을 희생하면서 까지 한 가지 삶을 과대평가 하는 것일까?’라는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질문을 곱씹으며 내려오는 길. 멀리 내려다보이는 동네 모습을 보며 한 발 떨어져 바라보면 참 작은 것인데 하는 생각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본다. ‘혼자’라는 단어가 아직은 낯설다. 나에게로 내디딘 첫발. 앞으로는 종종 혼자의 시간을 즐기고 싶다는 욕심이 꿈틀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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