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이 낮은 아이들이 게임과 스마트폰에 중독되기 쉽다
한국의 청소년들은 상당수가 자존감을 잃고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분야 중 1위는 학업이다. 높은 대학 진학률과 치열한 경쟁의 입시 위주의 교육에 처한 아이들은 스스로의 학업 성과에 대해서 만족할 수가 없다. 그리고 교사, 학부모들의 학업에 대한 지나친 질타와 장려는 아이들에게 엄청난 스트레스와 열등감을 갖게 한다. 실제 서구 아이들의 학력에 비하면 한국 아이들은 그 수준이 매우 높다. 그런데 서구 아이들은 학업에 대한 열등의식이 별로 없다. 그들에게는 사회가 학업 이외의 다양한 능력을 인정하기 때문에 공부 잘하는 사람은 여러 능력 중 어느 특정한 분야를 잘하는 사람 정도로 취급할 뿐이다. 이 문제의 근본은 우리 사회가 육체적 노동을 천시여기고 정신적 노동의 가치만 높이 평가하는 사회 구조에 기인하는데 우선은 그 이유보다 이러한 문제로 발생되는 왜곡된 청소년 문화를 분석하고 그에 상응하는 철학적 사유가 필요하다.
수평적 능력의 평화와 수직적 능력의 억압
인간의 능력은 정말 다양하다. 체력, 근력, 유머력, 친화력, 순발력, 가창력, 지도력, 고난 극복력, 음악 이해력, 공간 지각력, 색감 구별하는 능력, 그림 그리는 능력, 손재주, 지구력, 요리 능력 등등 엄청나게 다양한 능력이 있다. 이러한 능력은 수평적 구조인데 학력은 수직적 구조다. 수평적 능력은 인간들의 개성과 다양함을 보장하는데 비해 수직적 능력인 학업은 억압적이며 권위적이다. 예를 들어 수평적 능력인 유머력은 우열이 강하지도 않고 억압적이지도 않아서 유머력을 갖추지 않은 사람이라고 해도 어떤 열등의식을 갖지 않는다. 유머력 외에 다른 대부분의 능력도 그렇다.
우리 사회가 수평적 능력보다 수직적 능력을 강요한 이유는 교육 제공자인 교사나 학부모의 편리한 입장만 고려했기 때문이다. 획일적으로 줄세우기 편한 학업을 중심으로 아이들을 대해야 교육 제공자인 교사나 부모가 자녀를 쉽게 길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참된 교육은 교육 제공자가 중심이 아니라 교육 수용자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한국은 다른 분야보다 교육 분야가 매우 후진성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이들은 당연히 엄청난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자존감이 매우 낮다. 그리고 부모 세대들도 다른 능력보다 학벌에 대해서 우월감이나 열등감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매우 허다하다. 그런데 이미 한국 사회에서도 학벌 위주의 사회는 붕괴되고 있고 다양한 능력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그래서 학력에 대해 집중하는 부모는 시대 착오적이다.
뭉개진 자존감을 찾을 수 있는 게임의 세계
실제 생활에서 자존감을 잃은 청소년들은 그 상처를 치유할 대상을 찾아야 한다. 만약 그 낮아진 자존감이 다행스럽게도 그림이나 음악, 손재주, 유머 등을 찾았고 그 능력을 이 사회 구조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다면 매우 행복할 것이고 그 능력으로 즐거운 직업을 찾기 쉽다.
그런데 학벌 위주의 사회에서는 그런 것을 인정해 주는 구조가 아니다. 그래서 실제 생활에서 자존감을 찾기 매우 어려워진 아이들은 가상적 세계로 가야 한다. 이게 아이들이 게임에 몰입하는 철학적 사유다. 인터넷 세상은 자존감이 무너진 자아를 떠나 당당한 가상적 자아를 만들 수 있고 그 가상적 자아가 해낸 업적에 많은 가상적 친구들이 칭찬을 하거나 부러워하면 거기에서 엄청난 자부심을 갖게 된다. 이런 이유로 청소년들 사이에 게임 지존은 그들이 운영하는 커뮤니티에서 영웅 대접을 받는다. 그래서 많은 아이들의 꿈이 프로 게이머이기도 하다.
그런데 미래 사회는 웬만한 육체적 노동은 첨단 로봇이 다 해결하게 되고 이성적 능력, 지적 능력의 노동도 첨단 인공 지능을 가진 컴퓨터가 차지하기 때문에 인간의 노동은 감성적 세계와 연예 오락 분야가 매우 가치 있는 능력으로 평가된다. 이미 한국 사회는 그 단계에 들어서서 연예 오락 분야가 대세다. 요즘 대중 문화의 중심에 있는 개그맨들은 학교 성적이 대부분 별로 좋지 않다. 이러한 근거로 미래를 예측해 보면 지적 능력보다 감성적 능력이 높은 평가를 받는 경향은 더욱 강화된다.
이러한 원리를 이해한다면 교육 제공자인 부모나 교사들은 청소년들의 자존감 세우기에 최대한 노력을 해야 한다. ‘가르친다는 것은 단지 희망을 말할 뿐이다.’라는 구이 아라공의 싯구가 있다. 많은 부모나 교사들이 ‘넌 이것도 모르니. 이것도 못하는 주제에 뭘 하겠어’라는 말을 아주 쉽게 한다. 이러한 잘못된 교사들의 태도를 바로 잡기 위해서 국어 교사는 수학을 영어 교사는 과학을 수학 교사는 영어를 가르치는 시간을 일 년에 한 번씩 가져보는 것을 상상해 본다. 그러면 얼마나 아이들이 많은 지식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알게 되고 그들의 자존감에 상처를 내는 언어 폭력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나의 부모, 나의 스승이 나를 인정해 주지 않는데 무슨 자부심을 갖고 이 세상으로 나갈 수 있을까. 그래서 그들은 가상의 세상에서 자존감에 몰입한다.
다음 호부터는 외모 지상주의의 청소년 억압에 대한 주제가 연재됩니다.
글 : 이성구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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