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교육시대, 엄마들도 문화센터나 동 주민자치센터에서 취미생활을 즐기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문화센터가 아닌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서 평생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면 어떨까. 거리도 가깝고 학교 소식도 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흔치 않은 프로그램까지 배울 수 있다. 양정중학교에서 마련한 평생교육학습 프로그램인 ‘어머니 도예반’은 학교의 아낌없는 지원과 회원들의 열정이 어우러져 평생교육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코일링 기법으로 그릇 만들기
목요일 오후 4시, 아이들이 모두 떠난 학교에 엄마들이 하나둘씩 모여든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도자기를 만들 흙을 각자 자리에 옮겨놓고 밑받침으로 쓸 만큼 흙을 잘라낸다.
반죽을 해서 동그랗게 만들고 손자국이 남은 것은 평평하게 편다. 또 잘라낸 흙을 주물 주물 손바닥으로 굴려 가래떡처럼 길게 뽑는다. 생각처럼 쉽지 않지만 열심히 손바닥으로 밀어본다. 미리 만들어 놓은 밑판에 상처를 내고 물을 묻혀 문지르면 접착제처럼 흙과 흙이 잘 붙는다. 돌돌 말아 올린 반죽을 손가락으로 밀면 서서히 그릇 모양이 만들어진다. 바로 ‘코일링’ 기법이다.
한편에서는 물레를 이용한 그릇 만들기가 한창이다. 영화에서처럼 손만 가져다대면 쭉~쭉 모양이 만들어질 줄 알았는데 어느새 그릇은 물레를 이탈해버린다. 이때까지 들인 수고가 다 날아가 버렸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또 다시 물레돌리기에 열중한다.
도자기를 빚는 것이 때론 어깨도 아프고 힘도 들지만 그릇이 형태를 갖추어 가는 기쁨에 어느새 3시간이 훌쩍 지나버린다.
서울평생학습축제 학습동아리 작품전시 ‘금상’받아
양정중학교 ‘어머니 도예반’은 만들어진지 10년이 넘었다. 처음엔 양정고등학교 교장의 제안으로 학교시설을 이용해 사회봉사 차원으로 평생교육을 실천하고 어머니들의 잃어버린 꿈을 되찾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양정중고등학교 학생의 학부모와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문을 열었다.
미술실에 수용할 수 있는 최대 인원 32명. 그런데 한 명도 나가지 않고 계속 늘어나기만 했다. 대기자도 10명 이상씩 있을 만큼 인기가 높았다. 주변에 도예를 배울만한 문화센터가 없기도 했거니와 학교에 도자기를 구울 수 있는 가마까지 갖추고 실력 있는 강사진을 투입 물신양면으로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양천구청, KBS 등에서 작품 전시회를 열기도 했고 서울평생학습축제 우수 사례발표로 최우수상, 서울평생학습축제 학습동아리 작품전시에서 금상을 받기도 했다.
이러다보니 도예를 배우고 싶지만 자리가 나지 않는 주민들을 위해 새로 신입생을 모집했다. 오랫동안 대기자로 있던 엄마들이 대거 신청을 해 지금은 11명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어머니 도예교실’을 맡고 있는 백춘훈 교사. “교육청에서 지원을 받는 프로그램이라 재정적 부담이 없어 더 인기가 있다”며 “학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수업이라 학생이 졸업을 하면 엄마도 같이 졸업을 해야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평생교육을 실천하고 어머니들이 잃어버린 꿈을 되찾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전한다.
올 3월에 도예를 시작한 윤성옥 회원은 “손으로 만드는 것 좋아하니까 재미있다”며 “내가 원했던 작품은 항상 나오지 않아 ‘내 맘대로 되는 게 없구나’ 한탄을 하지만 이걸 통해 ‘스승은 어디에나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한다. 아이가 졸업을 해도 계속 관심이 생기면 공방을 알아보고 더 깊게 배우고 싶단다. 정귀님 회원은 쉽게 생각해서 도전했는데 생각만큼 쉽지 않다고. “무얼 만들까 구상하고 디자인을 생각하는 것이 가장 어렵지만 작품이 나오면 뿌듯하다”며 “방학동안 작품 구상을 많이 했으니 2학기 때는 좋은 작품을 기대할 것”이란다.
‘어머니 도예반’은 단순한 취미생활을 넘어 가족들 뒷바라지하느라 자신을 되돌아볼 기회가 적은 엄마들에게 꿈을 찾고 어렵기만 했던 학교 문턱을 넘어 선생님과 더 가까워지는 시간이 되고 있다.
미니 인터뷰
백춘훈 교사
“작품을 구상하고 만들고 뒤집어 가며 말리고 유약을 발라 굽고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작품 하나가 완성되지만 그 과정에서 기쁨을 느끼는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낍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박영임 회원
“아이들 돌보느라 나를 되돌아볼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 도자기를 만들면서 인생을 생각하게 되네요. 아이들 얘기, 살아가는 얘기도 나눌 수 있고 학교에서 좋은 기회를 마련해주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정은정 회원
“너무 하고 싶어서 2년 반 기다렸습니다. 생각만큼 작품이 잘 나오지는 않지만 결과물보다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흙을 만지면서 힐링도 되고 재충전하고 엄마들하고 관계도 좋아지는 것 같아요.”
현계화 회원
“미국서 엔틱 도자기를 수집하면서 도자기에 관심이 많았던 차 학교에 이런 기회가 있어 신청하게 됐습니다. 도자기를 빚으며 집중하다보면 애들 때문에 힘든 일도 다 잊게 되고 내 안에 정체되었던 예술적 본능이 살아나는 거 같습니다.”
송정순 리포터 ilovesjsmor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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