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는 유럽에서, 아니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이다. 로마는 서구문명의 발생지, 세계의 수도(Caput Mundi), 영원한 도시(Eternal City)라는 별명을 가졌다. 서울, 평양, 경주도 오래된 도읍지이다. 경주는 1천년동안 신라의 도읍지, 서울은 조선의 498년과 조선총독부 36년 군정 3년 대한민국 66년 까지 총 601년동안 도읍지였다. 그러나 로마는 2700년 동안 도읍지로 있었다. 로마왕국+로마 공화국+로마제국+이탈리아 공화국+이탈리아 왕국+파쇼정권+이탈리아 공화국의 수도였다. 잠깐 동안 도읍지를 옮긴 일은 있지만, 오랜 역사를 통해 수많은 왕조가 바뀌어도 도읍지를 하나의 도시로 정한 곳은 세계에서 로마 한 곳뿐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이탈리아 반도의 중심 ‘로마’
정도전과 무학은 조선의 도읍지로 한양을 천거했다. 한반도의 중앙이고, 한강이 있어 수운이 좋고, 구세력 왕씨를 멀리 할 수 있고, 한강유역에 경기평야 같은 충적평야가 있어 왕실의 재정을 튼튼히 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의 중앙이다. 뿐만 아니라 로마제국, 즉 지중해의 중앙이다. 한 지역의 중심지는 세금을 거두어들이거나 반란을 진압하는데 가장 효율적인 위치다. 배가 다닐 수 있는 큰 강 티베르강이 잇고, 인접하여 지중해가 있으므로 외적의 침입을 막을 수 있고, 세력이 커져 해외로 나가기에 좋은 공격과 수비에 좋은 입지적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요인은 로마 주변의 넓은 충적평야는 지배자의 창고라는 점. 외적의 방어, 식량자원의 확보는 도읍지로 최우선 고려 대상이었다.
도시와 시장 그리고 사람
로마의 한 가운데로 티베르강이 흐른다. 로마는 인구 280만, 유럽에서 런던(830만), 베를린(340만), 마드리드(320만) 다음으로 4번째로 크다. 이탈리아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도시이다. 유럽의 도시는 신대륙의 도시 발생원인과는 다르다. 신대륙의 도시는 항구가 식민지 경략의 거점이 됐다. 항구에서 내륙으로 들어갔다. 정치의 중심도시는 인구의 중심에 상공업의 중심도시는 항구가 됐다.
미국의 상공업 중심 뉴욕과 정치도시 워싱턴하고는 다르다. 브라질의 수도, 즉 내륙의 브라질리아와 항구도시 리우데 자네이로와는 차이가 있다. 뉴욕과 리우는 유럽과의 관계 속에서 발달한 도시이다. 아시아와 유럽의 도시는 행정의 중심지에서 출발했다. 원래 사람이 많이 모이는 시장이었다. 시장은 교통이 편리한 교통의 결절지에서 일어난다. 걸어서 다닐 때는 지역의 중심, 배가 다닐 때는 항구가 시장이 됐다. 최소거리의 원칙(Least Distance Principle)이다. 모든 사람이 이동하는 거리의 총합이 최소가 되는 장소에 시장이 발생한다. 시장이 커져서 도시가 되었다. 로마가 그런 곳이다.
모기가 득실대던 늪지
이탈리아에는 20개 행정구역, 주가 있다. 한 주의 크기는 우리나라의 도의 크기와 비슷하다. 로마는 라지오주에 속하며 면적은 1만7천㎢이다. 경상북도(2만㎢)와 비슷하다. 이탈리아의 한 중앙이다. 로마를 중심으로 2100㎢의 광대한 충적지가 있어 주변의 식량으로도 로마를 먹여 살 릴 수가 있었다. 충적지의 연장선상에 광활한 늪지가 있다. 폰티노 늪지이다.
이 늪지는 엄청난 장애물이었지만, 외적의 침입을 막아 주는 역할을 했다. 서쪽은 지중해, 동남쪽은 늪지이다. 동쪽은 산지이므로 외적의 침입을 쉽게 막을 수 있었다. 폰티노 늪지는 지질구조가 2억5천만년 전에 단층으로 함몰된 지구대이다. 지구대에 하천이 흐르고 배수가 잘 되지 않아 늪지를 만들었다. 로마제국 시대부터 폰티노 늪지 개간 문제를 놓고 고민을 했던 특수지형이다. 그러나 로마인들은 늪지에 모기가 득실거리는 ‘말라리아 지역’이라고 부르고 기피하는 곳이었다.
무솔리니와 폰티노 늪지
이탈리아인에게 지금도 가장 인기 있는 통치자 순위에 항상 ‘베니토 무솔리니’가 1위로 올라간다. 독재자였던 무솔리니는 마피아를 단속했고, 내분을 없애도 통일을 주도했고, 경제발전을 하여 실업을 없앴다. 그중에서 가장 큰 공로로 인정되는 것이 ‘폰티노 늪지 개간’이었다. 로마에 인접하면서도 모기 때문에 사람이 살수 없는 로마의 암 같은 곳이었다. 그는 폰티노 늪지 법을 제정하고 개간했다.
12만명이 동원되었다. 잡목을 제거하고 배수를 위한 1만6500km나 되는 수로를 건설했다. ‘무솔리니 운하’라고 불렀다. 한 달에 몇 번씩 폰티노 늪지에 들어가서 직접 삽을 들고 배수로를 정비했다. 폰티노 늪지를 옥토로 만들었고, 도시를 건설했다. 테라치나 같은 작은 도시들이 들어섰다. 55만명 인구가 살고 있다. 폰티노 늪지는 로마를 세계의 수도로 만든 지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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