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방학하면 엄마들이 개학한다.’ 마냥 우스갯소리로 들리지 않는 분들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야말로 설거지하고 뒤돌아서면 밥 차리는 나날이 시작되는 거죠. 학교에서 먹던 점심 급식 한 끼를 집에서 먹는 것 뿐 인데 그 한 번의 차이가 어쩜 그리 크게 느껴지는지.
맞벌이 가정이라면 문제는 더 복잡해집니다. 밥도 밥이지만 간식이 걱정입니다. 용돈 주고 사먹으라고 말하기에는 안전한 음식일까 싶어 망설여지고, 만들자니 번거롭고. 그래서 만나 보았습니다. 집에서 직접 간식을 만들어 먹이는 엄마들 말입니다. 사연도 제각각인 간식의 달인들이 알려준 간단 간식 만들기 노하우도 전해 드리겠습니다.
이향지 리포터 greengreens@naver.com
파주 교하 원혜영씨
영양사 엄마 눈에는 식품첨가물이 보여요
“특별히 아이들에게 아토피가 있어서 만들어 주기 시작한 건 아니에요. 저희 아이들은 아무거나 잘 먹거든요. 제가 영양사 출신이다 보니 식품첨가물이 보이는 거예요. 오렌지 주스도 과당이 많이 들어 있고 콜라보다 설탕 함량이랑 칼로리가 더 높아요. 차라리 모르면 먹이는데 아니까 못 먹이는 거예요.”
교하 9단지에서 김소희(7)와 형준(6) 남매를 키우는 원혜영(38)씨의 말이다. 그가 간식을 직접 만들어 먹이게 된 데는 높은 물가도 한 몫 했다.
“마트에 가서 과자를 사면 한 봉지에 몇 개 안 들었어요. 양은 적은데 너무 비싼 거예요. 집에는 항상 밀가루나 계란 오일이 있으니까 아이들이 뭐 먹고 싶다고 말하면 십 분 정도면 금방 만들어 먹여요. 그게 더 맛있기도 해요.”
자신 있게 간식을 만들어 먹일 수 있는 건 2006년에 배워 둔 제과제빵 수업 덕택이기도 하다. 솜씨가 소문이 나 홈베이킹 수업을 열고, 한살림 육아품앗이 모임에서 아이들과 함께 쿠키와 케이크를 만드는 쑥쑥이 요리수업도 열고 있다.
두유 팥빙수 하나면 여름도 거뜬
“여름에는 더우니까 시원한 걸 많이 찾는데 가게 가면 한 그릇에 9천 원 씩 하잖아요. 팩에 담긴 두유를 냉동실에 얼렸다가 봉지 째로 부셔요. 그 다음 그릇에 담고 미숫가루와 팥 앙금을 넣고 과일 얹으면 팥빙수가 돼요. 빙수기 없어도 만들어 먹을 수 있어요.”
겨울에는 길거리에서 파는 따끈한 간식에 눈이 돌아가게 마련이다. 그럴 때 원혜영씨는 핫케이크 가루를 반죽하고 계란을 깨트려 180도 오븐에 20분 정도 구워 계란빵을 만든다.
아이들과 함께 하기에는 까나페가 좋다. 식빵을 잘라 햄 치즈 과일 딸기잼 크래커 등 집에 있는 재료를 모아 자유롭게 만든다.
엄마가 집에서 만들어 주는 간식이 맛있어서일까. 소희와 형준이는 마트에 가도 과자를 사달라고 떼를 쓰지 않는다.
8년 전 그는 고향을 떠나 아는 이 없는 타지에서 살아가는 외로운 새댁이었다. 지금은 함께 케이크를 나눠 먹던 이웃과 동네 아이들의 선생님이 되었다.
내 아이를 위해 시작한 일이 더 많은 아이들을 키우는 데 쓰이고 있다. 소희와 형준이가 밝게 자라는 건 단지 건강한 먹거리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즐겁게 자신의 일을 하면서도 타인을 위해 베푸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고 자라기 때문은 아닐지.
중산동 하늘마을 김수경씨
특명! 까다로운 세 남자의 입맛을 사로잡아라
중산동에 사는 김수경(41)씨는 송희윤(12), 희찬(8) 두 형제의 엄마다. 표준 체중으로 건강해 보이는 희윤이는 어릴 때는 밥을 잘 먹지 않고 몸도 마른 아이였다. 둘째 희찬이도 입맛이 까다로운 편이라 밥 한 번 먹이려고 쫓아다니기도 했다. 남편도 입이 짧아 늘 무엇을 어떻게 요리해서 먹일지 고민하게 만들곤 했다.
단호박이 몸에 좋다고 해서 찌거나 튀겨도 식구들은 잘 먹지 않았다. 고민 끝에 얇게 잘라 피자치즈를 올리고 초코 시럽까지 뿌려주니 좋아하며 먹었다.
봤다 하면 쏙쏙 골라내기 바쁜 파프리카는 밥에 다져 넣어 햄 한 조각을 넣고 뭉친다. 그걸 빵가루에 굴려서 튀기면 ‘밥도그’가 된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조금 넣고 살짝 들어 끝으로 기름이 모이게 한 후 굴려가면서 튀기면 기름도 절약할 수 있다. 압력솥에 계란을
쪄서 구운 계란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식빵 자투리에 초코시럽을 발라 견과류를 뿌려 먹이기도 한다.
브로콜리도 계란찜에 다져 넣은 후에야 먹일 수 있었다. 레몬이 나오는 철이면 설탕에 재어 두었다가 여름철 목마를 때 탄산수를 넣어 레몬에이드처럼 만들어 주니 따로 주스를 사 올 필요도 없다. 제철 재료로 만든 잼은 인기가 좋아 이웃들에게 알음알음 팔기도 한다.
우리 엄마는 간식 연구가
“하도 안 먹다보니 머리를 굴리는 거죠. 처음에는 레시피 보고 일일이 따라하니까 힘들고 돈도 많이 들었는데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더라고요. 요령이 생기면 설탕 대신 매실청을 넣기도 하고, 없는 건 다른 걸로 대체해요. 돈 많이 써서 거하게 요리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집에 있는 재료를 이용하면 얼마든지 쉽게 요리할 수 있어요.”
희윤이가 가장 좋아한다는 피자떡꼬치를 직접 맛보았다. 떡볶이 떡을 꼬치에 꿰어 다진 채소와 피자치즈를 올린 후 전자레인지에 익히면 끝! 만들기도 간단하고 먹기도 즐거운 간식이었다.
김수경씨의 취미는 SNS에 요리 사진을 올리는 것이다. 날마다 메뉴 고민하는 엄마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다.
“나도 이렇게 간식 만들어 먹이고 싶은데 못해줘서 속상하다고 말하는 분들 마음 충분히 이해해요. 저도 큰 애 어릴 때까지 직장에 다녔거든요. 가정과 일을 양립하는 건 힘들어요. 그럴 땐 저녁에 만들어서 냉장고에 미리 넣어두세요. 생각보다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요리가 많답니다.”
김수경씨는 인터넷과 이웃들의 SNS를 보며 요리 아이디어를 얻는다. 나름의 방식대로 재창조한 요리들은 까다로운 세 남자의 입맛을 사로잡고 마음까지 통통하게 살찌우고 있다.
일산동 후곡마을 최진영씨
놀이터에서 나눠 먹으면 간식이 더 맛있어 진대요
후곡마을에 사는 최진영(33)씨는 햄버거를 먹고 자란 세대다. 인스턴트를 달고 살다시피 했고 라면이며 오렌지주스도 즐겨 먹었다.
결혼 한 다음에는 남편과 둘이서 매운 음식을 먹으러 다닐 정도로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했다. 아이가 생기자 고민이 시작됐다.
“정말 막막했어요. 매운 음식 위주로 먹다가 애들 태어났을 때는 뭘 먹을지.”
서점에 가서 책을 보고 인터넷을 뒤져서 이유식을 만들면서 하나씩 요리를 배워갔다.
“저는 인스턴트를 먹으면서 컸지만 우리 아이들은 그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두부나 생선 고기 채소 고루고루 먹이려고 노력했어요.”
이유식 때문에 시작한 요리의 세계는 최진영씨에게 모험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어느 샌가 만두 속을 넣은 빵, 고구마로 만든 케이크까지 먹음직스럽게 만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스스로 손재주는 없는 편이라고 말하는 최진영씨. 돈을 들여 멀리 가서 배우는 것도 좋아하지 않아 책과 인터넷으로 배운 요리였지만 특유의 호기심과 모험심으로 통통 튀는 살림꾼으로 변해갔다.
호기심 많은 엄마의 독특한 간식 도전기
제조기로 직접 만든 요거트와 과일을 섞어서 갈아주면 부드러워 두 살배기 막내도 잘 먹는다. 더운 요즘 최진영씨가 자주 만드는 간식은 비빔국수다. 다진 마늘과 설탕 식초를 끓여서 만든 소스에 사과와 채소를 갈아 넣고 삶은 국수와 비벼 먹는 음식인데 맵지 않아 아이들이 좋아한다.
“처음에는 동그랑땡 만들기도 진짜 힘들었어요. 퍼지고 무르고 속도 안 익고. 지금은 자주 만들어서 반찬으로도 유용하게 먹이고 있어요.”
최진영씨는 간식을 넉넉하게 만들어 놀이터 나갈 때 들고 간다. 힘들기 보다는 기쁨을 주는 일이 간식 만들기란다.
“첫애 낳았을 때는 그냥 행복했는데 둘째 때는 산후우울증으로 힘들었어요. 어느 날 제가 만든 음식 사진을 SNS에 올렸는데 주변 반응이 좋아 더 예쁘게 자주 만들게 됐어요. 덕분에 사람들과 교류하게 되고 생활에 활력소를 찾았어요.”
함께 만든 간식이 완성되면 ‘자기가 만들었다’며 깡충깡충 뛰며 좋아하는 딸 정은이를 보며 더 큰 힘을 얻는다는 최진영씨.
결혼 전 호텔리어로 일했던 최진영씨는 얼마 전 병원에 재취업했다. ‘육아를 하다가 내 인생이 끝나겠구나’하는 생각으로 힘든 시절도 있었지만 다시 일을 찾으면서 아이들을 더 사랑하게 됐단다. 직장에서 일하고 돌아오면 어린이집에 다녀온 아이들과 기쁘게 만난다. 그리고 간식을 넉넉히 만들어 놀이터로 간다. 간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두 아이가 있고 함께 나눠 먹을 이웃들이 있다. 야무진 엄마 최진영씨는 요즘 행복하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