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강동구청이 국내 최초로 ''길고양이 급식소'' 사업을 시작했다. 이 사업으로 강동구에서는 길고양이와 관련된 민원이 많이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길고양이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는 사람들과의 갈등은 늘 있어왔고, 또 많은 곳에서 현재진행형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길고양이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분명 큰 변화가 생겼다. 10년 째 길고양이를 카메라에 담고 있는 김하연 사진작가는 “길고양이 사진을 처음 찍기 시작한 10년 전보다 길고양이에 대한 관심이 많이 생겼음을 실감한다”며 “강동구에서 급식소 사업을 시작하며 다른 지역에서도 길고양이들에게 사료를 주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고, 또 캣맘(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사람)들에 대한 시선 또한 많이 변했다”고 분위기를 전한다.
5월 제주도와 6월 부산 전시에 이어 7월과 8월 서울에서 길고양이 사진 전시회 ‘화양연화 in Seoul’을 진행한 김 작가. 길고양이와 함께 하는 그의 생활을 소개한다.
길고양이의 삶, 눈에 들어와
“결혼하며 마련한 카메라가 사진을 찍게 된 계기가 됐어요. 그러다 2003년 12월 23일 블로그(찰칵거리는 세상아!)를 오픈하며 블로그를 채울 사진이 필요했습니다.”
처음엔 열심히 피사체를 찾아다녔다. 예쁜 꽃과 아름다운 풍경을 찍었다. 그러다 담장 위 고양이를 발견한 건 우연이었다.
“담장 위 고양이의 눈빛과 딱 마주쳤는데 그 눈빛이 사람의 것과 닮아있더라고요. 그때부터 고양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2006년 ‘1019 사진상 공모전’을 계기로 사진전을 개최한 김 작가. 평소 그가 존경하는 사진작가가 그에게 조언을 건넸다. “사진 속 고양이들이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고양이를 더 집중적으로 찍어보라”고.
그것이 시작이었다. 길고양이들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하자 그들의 고단하고 험난한 삶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들의 모습을 어떻게 보여줘야 할 지 고민한 그는 시리즈 작업을 시작한다.
고양이는 고양이다
2008년 그가 처음으로 시작한 시리즈는 ‘고양이는 고양이다’.
길고양이들의 다양한 모습을 사진에 담으며 그가 하고 싶은 말, 혹은 마음 속 느낀 점을 글로 실었다. 사진 한 장 한 장, 글 한 문장 한 문장에서 그들의 녹록치 않은 삶이 느껴진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날 없다. 새끼 있는 엄마 걱정만 태산이다’
‘엄마는 아들을 품고 아들은 엄마를 이불삼아 산다. 살아간다. 살아낸다’
그 많은 고양이들을 어떻게 사진에 담아냈는지 신기할 정도다.
고양이는 의외로 가까이에 있다
고양이는 움직이고 또 움직인다. 하지만 소리도 없고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그래서 우리 주변엔 길고양이들이 없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어디에서든 고양이들은 그들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사람들 눈에 띄지 않을 뿐. 그의 두 번째 시리즈 ‘고양이는 의외로 가까이에 있다’에서 그런 고양이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무심히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엔 보이지 않지만 그의 눈엔 사람들보다 고양이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얼마나 많은 길고양이들이 의외로 가까이에 있는지를. 그는 그 찰나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흑백사진으로 보여준다.
“사람들과 섞여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무심한 듯 함께 하는 순간을 포착해서 보여주는 작업입니다.”
고양이는 있다
고양이를 마음에 품은 사람들의 눈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많은 고양이들이 포착된다. 소리 없이 숨어 지내는 길고양이들을 찾아내는 신기한 능력이라도 가진 듯이. 김 작가의 눈에도 여지없이 그들은 포착된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작업이 바로 그의 세 번째 시리즈 ‘고양이는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풍경 속에 어떻게 고양이들이 묻어있는지를 보여준다.
마치 ‘윌리를 찾아라’ 혹은 ‘숨은 그림 찾기’처럼 사진 속 고양이를 찾게 되는 작품들이다.
고양이와 고양이 집사
운이 좋은 길고양이는 보다 안정적인 삶을 찾게 된다. ‘입양’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의 가족이 되는 것이다. 개와 고양이를 모두 키워본 사람이라면 그 둘의 차이를 확연히 알 터. 개와 고양이는 그 습성이나 생활패턴, 특히 사람들을 대하는 자세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개는 주인을 상하관계로 인식해 복종하고 사람들의 말을 잘 따르지만 고양이는 그렇지 않아요. 사람들과 평등하다고 생각하고 단지 자신이 필요한 것을 해주는 사람으로만 생각하죠. 그래서 ‘고양이 집사’라는 말을 하는 겁니다.”
‘고양이 집사’ 프로젝트는 고양이가 가족의 일원이 되어 적응하는 과정을 카메라에 담는 작업이다. 집에서의 자연스러운 고양이, 그리고 사람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사진으로 남는다.
캐밍아웃하라!
고양이 사진을 찍으며 자연스럽게 캣맘이 된 김 작가. 그는 자신을 캣대디가 아닌 캣맘이라 소개했다. “엄마의 마음으로 고양이들을 보듬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말한다.
많은 캣맘들이 어려움 속에서 활동하고 있다. 특히 주위의 따가운 시선은 그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고충. 김 작가는 그들에게 ‘캐밍아웃’을 권한다. 자신이 캣맘이라는 것을 스스로 밝히라는 것.
“낮은 담장 아래 놓인 사료와 물그릇을 보며 미소를 짓게 됩니다. ‘나만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주위의 시선 때문에 소리 죽이며 눈물 흘리지 말고 스스로가 카메라 앞에 서 자신이 캣맘임을 밝히는 겁니다.”
많은 캣맘들이 마음을 함께 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시작된 프로젝트다.
수많은 길고양이들의 모습을 담은 김 작가. 사진 속 고양이들이 잘 커가는 모습도 바라봤고, 순식간에 생을 달리하는 그들의 모습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길고양이들의 삶에서 아이러니하게도 ‘화양연가’가는 말이 떠올랐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을 표현하는 말인 ‘화양연화’가 길고양이들에겐 바로 이 순간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제 어디에서 사라질지 모르는 길고양이들의 지금 이 순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가 이번 전시의 제목을 ‘화양연가’로 지은 이유다.
올 10월 제주, 부산, 서울 전시에서의 작품을 모아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갖는 김 작가. 그는 그의 사진이 “고양이를 마음에 품은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됐으면 한다”고 했다.
박지윤 리포터 dddod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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