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료가 분만과정에 개입하기 전, 분만으로 인한 위험성은 다른 치명적인 질병의 위험성과 비슷하다. 실제로 1935년 한 해 미국에서 분만 중 사망한 임산부 숫자는 1만2544명으로 일반적인 다른 질환 사망률과 비교해도 월등하게 위험한 과정이었다. 그래서 그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서구에서는 분만을 하나의 질병으로 간주하고 분만 과정에 적극 개입하게 되었다. 개입의 결과는 정말 놀라웠다. 적극적인 의료 개입이 시작된 지 50여년 후인 1985년, 미국 모성 사망수가 295명으로 집계돼 사망률의 드라마틱한 감소를 가져오게 된다. 의료의 개입과 발전이 수많은 생명을 살려낼 수 있었던 것이다.
분만과정에서의 적극적인 의료 개입은 모성사망률을 극적으로 줄이는 데 크게 기여했으나 한편으론 분만과정의 획일화와 강제성을 가져왔다. 또한 분만 과정에서 모성 및 태아의 본성이 무시된 의료자체 특성으로 거부감과 부적응도 발생했다.
그러던 중 2000년에 이르러 미국 유럽 등지에서 의료 개입을 최소화해 모성본능을 최대한 보전하며, 분만의 위험성은 줄일 수 있는 자연주의적 분만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 흐름에 따라 많은 산모들이 자연주의 분만에 관심을 갖게 됐고, 자연주의 분만을 선택하는 요구가 늘어났다.
과거 현대식 의료기관이 없었을 때는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하는 분만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분만이었다. 지금은 전통적인 가정분만에서 안전한 병원분만으로 출산문화가 변화됐지만, 출산의 장소를 뛰어 넘어, 출산의 질적 가치에 관심을 두는 것은 산모의 변함없는 요구일 것이다. 병원에서 출산하더라도 전통적인 가정분만처럼 편안한 환경에서 가족과 함께, 또 남편도 분만에 참여해 탄생의 기쁨과 신비를 함께 누리기를 원하게 됐다. 물론 아기의 탄생도 더 안락하고 편안해 지기를 바랬다.
의료진은 조력자, 모성과 가족의 힘을 믿기에
산모들은 필연적으로 출산 전 여러 가지 불안을 느끼지만 엄마라는 주체는 모성본능을 갖고 있다. 출산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따라서 산모는 출산의 주체가 돼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 안전하고 자연스러운 출산을 할 수 있다. 태내의 아기 역시 고치를 벗고 나오는 나비처럼 스스로의 힘으로 최선을 다해 탄생을 시도한다. 자연의 위대한 힘이 바로 자연스러운 분만을 하게 하는 원동력이며, 의료진은 이를 최대한으로 돕기 위한 출산환경을 준비하는 것이다.
엄마의 진통을 첫 신호로 아기는 세상에 나올 준비를 한다. 자연주의 분만은 자유로운 진통으로 임산부가 경직되지 않고 본능에 따라 출산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한다. 촉진제를 사용해 진통을 빠르게 진행시키거나, 진통을 줄이기 위해 무통마취를 권하기보다는 자연적으로 통증 완화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임산부가 가만히 누워있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신체를 움직이며 몸을 이완할 수 있도록 이미지 트레이닝, 지압, 음악, 향기 그리고 다양한 호흡법을 활용하도록 격려한다.
1960년대 이후로는 출산 시 남편의 참여가 함께 이루어지는 가족분만이 일반화 됐다. 출산의 어려움을 감당할 산모가 가족분만으로 가족과 함께 출산의 고통을 나누며 불안감을 줄일 수 있게 됐다. 진통중인 산모는 혼자만의 진통으로 외로움을 느낄 수 있는데 이때 가족과 의료진의 역할이 중요하다. 분만실 내에서 의료진은 불필요한 잡담을 삼가며 상냥한 말과 어두운 조명으로 산모의 긴장을 완화시킨다. 산모의 불안감이 고조되면 자궁과 태반의 혈류량이 줄어 태아의 산소 공급에 장애가 생기고, 반대로 불안감이 감소되면 자궁수축력과 혈류량이 좋아져 분만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또한 분만에 참여하는 가족은 터치이완법으로 산모의 진통완화를 도울 수 있다. 진통 시 남편이 안아주거나 쓰다듬어 주면 산모가 이완되면서 릴렉신(Relaxin)이란 물질의 분비가 많아져 이완이 더욱 촉진되고 엔도르핀 분비도 촉진돼 통증경감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태아를 존중하는 르봐이예 분만과 캥거루 케어
가족분만실의 환경은 조용하고 평온한 분위기여야 한다. 이는 우리에게 익숙한 ‘르봐이예 분만’의 정신과 같다. 르봐이예 분만은 탄생의 소중한 첫 순간을 아기의 입장에서, 아기를 위한 환경을 만들어 청각 시각 감정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분만 철학이다. 프랑스의 유명한 산부인과 의사인 프레드릭 르봐이예 박사에 의해 시도됐다. 1953년부터 산과학에 전념하기 시작한 그는 1955년에 이르러 9천 명의 신생아 분만을 돕던 중 아이가 세상에 나오는 순간 공포에 질려 울부짖는 모습에서 뭔가 잘못이 있음을 감지했다. 이후 연구를 거듭한 결과 르봐이예 분만법을 창안했다.
르봐이예 분만은 10개월간 엄마의 자궁에서 살아온 태아가 세상에 나오면서 심한 스트레스와 고통에 대면하지 않도록 다양한 배려를 시도한다. 청각에 예민한 아기를 위해 고요하게, 눈부시지 않도록 분만실의 조명을 낮추고, 탯줄을 자르기 전에 엄마의 품에 안겨 젖을 물게 하고 탯줄은 천천히 자르도록 한다. 갓 태어난 아기를 37℃ 온도의 물에서 놀게 하며 양수와 비슷한 느낌을 줘 세상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한다. 더불어 태어난 아기를 곧바로 엄마의 맨살에 접촉하도록 하는 캥거루 케어는 엄마와 아기에게 출산 후의 정서적 안정감을 느끼게 하며 모유수유에도 큰 도움을 준다.
허유재병원
홍승옥 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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