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화투를 소재로 한 도박영화 ‘타짜’가 흥미로운 스토리와 멋진 캐릭터로 강한 흡입력을 보여줬다면, 올 여름은 바둑을 소재로 한 도박영화 ‘신의 한 수’가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바둑이라는 정적인 소재에 영화 ‘아저씨’급의 화려한 액션이 더해져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와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의 향연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내기바둑판’에 사활을 건 꾼들의 전쟁
프로 바둑기사였던 태석(정우성)은 형의 부탁으로 내기바둑에 가담했다가 잔인한 살수(이범수)의 덫에 걸려 눈앞에서 형의 죽음을 보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형을 죽인 살인누명까지 쓰고 교도소에서 복역하게 되면서 살수 일당에 대한 복수를 꿈꾼다. 교도소 안에서 바둑실력으로 폭력조직 거물의 눈길을 끈 태석은 싸움의 기술을 몸으로 하나하나 익혀나가고, 출소 후 전국의 내로라하는 꾼들을 모아 살수와의 대결을 위해 다가선다.
한판 승부와 복수를 위해 태석에게 합류한 일행은 주님, 꽁수, 허목수 등이다. 태석의 반대편인 살수 편에는 배꼽, 선수 등이 화려한 실력과 사기바둑으로 맞선다. 패착, 착수, 포석, 행마, 단수, 회도리치기, 곤마, 사활, 계가 등 실제 바둑 용어들이 스토리 전환과 함께 제시되면서 바둑에 대해 전혀 모르는 문외한도 바둑과 인생을 비교하며 관람할 수 있어 흥미롭다.
캐릭터들의 향연과 거침없는 액션
영화의 주역은 한판 승부의 양대 산맥인 태석과 살수. 정우성은 영화 ‘놈놈놈’과 ‘감시자들’ 등에서 보여준 화려한 액션에 이어 ‘신의 한수’에서는 디테일이 더해진 완벽한 액션실력을 자랑한다. 영화 ‘짝패’ 이후 9년 만에 악역으로 돌아온 이범수는 그동안의 연기 갈증을 해소하듯 차갑고 악랄한 연기의 진수를 선보인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유린하며 내기바둑판을 쥐락펴락하는 모습으로 긴장감을 더해준다.
태석과 살수가 한판 승부의 주역이라면 각각의 편에 합류한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은 각각의 위치에서 치고 빠지는 역할로 영화를 빛낸다. 한때 내기바둑판의 전설로 활약했지만 한 번의 실수로 시력을 잃게 된 맹인바둑의 고수 주님(안성기)은 신중한 판단력으로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한다. 실력보다는 입과 깡으로 버텨온 생활형 내기바둑꾼 꽁수(김인권)는 그의 강점인 정보력과 연기력으로 행동대원 역할을 도맡는데, 무거운 장르 속에서도 관객들이 쉬어갈 수 있는 웃음을 선사한다. 내기바둑 때문에 한 쪽 팔을 잃은 도구제작 기술자 허목수(안길강)는 주님의 제안으로 합류해 사기바둑에 필요한 기술자재를 조달한다.
내기바둑의 꽃 ‘배꼽’(이시영)은 한때 촉망받는 프로 바둑기사였지만 가족을 살리기 위해 살수 패거리에 합류해 내기바둑계의 독보적인 존재로 군림한다. 살수의 행동대원인 승부조작 브로커 선수(최진혁)는 수십억 판돈이 오가는 불법 기원의 감시자이자 사기바둑의 선수로 활약한다. 냉동차 안에서 태석과 함께 벌이는 살수의 액션신은 한여름 더위를 시원하게 날려준다.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바둑 용어
* 패착(敗着): 지게 되는 나쁜 수
* 착수(着手): 바둑판에 돌을 놓다
* 포석(布石): 전투를 위해 진을 치다
* 행마(行馬): 조화를 이루어 세력을 펴다
* 단수(單手): 한 수만 더 두면 상대의 돌을 따낼 수 있는 상태
* 회도리치기(滾打): 연단수로 몰아치는 공격
* 곤마(困馬): 적에게 쫓겨 위태로운 돌
* 사활(死活): 삶과 죽음의 갈림길
* 계가(計家): 바둑을 다 두고 승패를 가리다
이선이 리포터 2hyeon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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