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과정은 대학 입시를 위한 임시 정거장일까? ‘나’에 집중하며 인생 플랜의 터 잡기를 하는 베이스 캠프일까? 아마 대한민국의 상당수 고교생들은 후자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입시에 쫓겨 ‘자아 찾기’ 고민을 유보하면서 어정쩡한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탁유진 양은 고집스럽게 NO!를 외쳤다. ‘인생의 단 한번뿐인 고교시절인데...’ 라는 생각이 퍼뜩 들자 그는 고교 입학과 동시에 자기 방식대로 다이나믹한 10대의 길을 선택했다.
학교 안팎 넘나들며 끼를 발휘
탁양이 내미는 두툼한 진로탐색보고서 안에는 촘촘하게 보낸 고교시절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토론대회, 논술경시, 영어 말하기대회, 뮤지컬 공동창작, 학교 소개 책자 학생 모델, 상일동 마을축제 청소년마당 기획과 사회... 학교 안과 밖을 넘나들며 멀티플레이어의 끼를 원 없이 펼친 2년간의 시간이 깨알같이 적혀있다.
“선사고는 혁신학교라 학생이 주도적으로 기획하고 실행으로 옮기는 행사가 많아요. 주어진 기회를 100% 활용해 관심 분야는 몽땅 참여해 보자고 고등학교 입학할 때부터 굳게 마음먹었습니다.” 천성이 적극적이고 오지랖 넓은 그는 선사고와의 인연이 ‘물 만난 고기’였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학생회 임원들의 활달한 모습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았던 그는 10:1의 경쟁률을 뚫고 학생회 일원이 됐다. 다사다난한 1년을 보낸 덕분에 고2 때는 학생회장에 가뿐히 당선됐다.
학생회장된 뒤에 훌쩍 자란 ‘마음’
“투표당일 전교생이 지켜보는 가운데 회장 후보들 간에 토론대회를 벌여요. 각 후보 진영에서 내건 공약을 꼼꼼히 검토하는 자리죠. 급식과 학교시설 개선을 위해 영양사, 행정실까지 찾아다니며 실현가능한 공약을 선보인 덕분에 좋은 평가를 받았어요.”
학생회장으로서 1년 임기 내내 그는 리더의 자질롸 역할을 현장에서 치열하게 담금질하며 배울 수 있었다. 특히 무남독녀 외동딸로 커 ‘나’ 중심으로 살았던 중학교 때까지와 달리 선사고에서 다양한 경험이 그를 ‘우리’로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리더는 끌고 가는 사람이 아니라 남들과 같은 위치에서 의견을 조율하는 역할을 해야 되요. ‘이렇게 해’가 아니라 ‘네 생각은 어때?’라고 여럿에게 물어볼 때 일의 결과과 훨씬 좋더군요.”
두 편의 논문을 완성한 것도 의미 있는 경험으로 꼽는다. “원하는 학생만 참여하는 다른 학교와 달리 우리 학교는 전교생이 의무적으로 1년에 한편씩 논문을 써야 해요. 논문 쓰는 방법을 선생님께 배운 다음 팀을 꾸려 연구주제를 정하는 데 참신한 테마들이 꽤 많이 나와요.”
그가 정한 연구 주제는 ‘학습 집중도와 시간의 상관관계를 통한 효율적인 학습 방향 제시’, ‘선사고 학생들의 사교육 의존도 실태와 참여요인 분석 및 학습방법 개선 방안 제시’. 두 편 모두 공부를 테마로 발로 뛰며 준비한 덕에 각각 금상, 동상을 수상했다. 수백 명의 학생에게 설문 조사를 한 다음 데이터를 분석해 유의미한 결론을 이끌어 내기까지 팀원끼리 머리를 맞대며 토론했다고.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3~4교시를 가장 공부가 잘되는 시간으로 꼽는 것도 사교육을 많이 받은 학생이 성적이 좋다는 불편한 진실도 논문을 쓰며 알게 됐어요. 객관적인 사실을 토대로 학생 입장에서 학습방법 개선안을 내놓아 학교에 건의까지 했어요.”
그는 매일 매일의 일상을 짤막한 기록으로 남긴다. 보람과 후회, 즐거움과 아쉬움 같은 소소한 느낌이 차곡차곡 쌓이자 과거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소중한 ‘탁유진 만의 매뉴얼’을 갖게 됐다.
교사의 꿈 이루기 위해 끝까지 노력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게 됐어요. 남 앞에서 발표할 때 기쁨을 느끼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즐긴다는 걸 깨달았고 덕분에 초등학교 교사라는 또렷한 목표를 갖게 됐습니다.”
초등학교 교사란 직업을 좀 더 세밀하게 알고 싶다는 궁금증을 가지고 여기저기 수소문했다. 운 좋게 부산교대 양종모 교수, 경인교대 김용희 교수와 인연이 닿아 깊이 있게 인터뷰하며 직업탐구를 할 수 있었다.
“보컬로 무대에 설 만큼 음악을 좋아하는데 두 분 교수님 모두 음악교육 전공자라 공감대가 많았어요. ‘20대를 후회 없이 치열하게 살았다’며 내게도 그렇게 살라는 교수님의 조언이 내게 에너지를 많이 주었답니다.”
꿈을 꾸게 됐으니 이제는 이뤄야 할 차례. 고3인 지금 교내외 활동 때문에 후순위로 밀렸던 공부와 씨름 중이다. “학생회에 쏟았던 열정을 이제는 성적 올리는 데 쏟는 중입니다. 원래 ‘후회’라는 단어를 질색하기 때문에 고3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려고 해요.” 그의 얼굴에는 긍정의 자신감이 넘쳤다.
공부와 한판 승부를 위한 에너지는 어릴 때부터 줄곧 배운 발레 도움을 톡톡히 받는 중이다. “매주 발레학원에 가서 춤을 추다 보면 머리가 금세 맑아져요. 덕분에 공부 집중도 잘되고요!” 밤 11시까지 이어지는 야간자율학습을 끄떡없이 소화하는 탁유진식 스트레스 해소법을 들려주며 활짝 웃는 그에게는 생기가 넘쳤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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