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6남매가 옹기종기 밥상 앞에 모여 앉는 식사시간이 되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메뉴가 있었다. 바로 콩나물과 두부 그리고 된장찌개. 별다른 반찬이 없어도 그 세 가지만 있으면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던 시절. 돌아서면 배가 고플 정도로 소화도 잘되고 요즘처럼 살 찔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되는 착한 메뉴들은 그 당시 대표적인 서민음식이었다.
두부가 산나물과 만나면?
시대가 변했다. 그리고 사람들의 사고방식도 변했다. 무엇보다 우리의 몸이 변한 건 더 말할 것도 없다. 아무리 진수성찬 맛난 음식을 먹어도 어린 시절 어머니가 해주셨던 고향의 맛이 자꾸만 그리워지는 것은 왜일까?
동장군의 기세가 한 풀 꺾인 지난 주말, 백운호수를 찾았다. 계원예대를 지나 보리밥 고개와 모락산 터널을 넘어서니 두부요리전문점 자연콩이 보인다. 깔끔하게 지어진 한옥 건물에 눈길이 자꾸만 간다. 넓은 마당에 차를 세우고 안으로 들어서자 고소한 냄새가 식욕을 자극한다. 홀을 둘러보았다. 가족끼리 왔거나 회사 동료들과 회식을 위해 온 사람들 그리고 모임을 위해 이곳을 찾아 식사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고기 집처럼 냄새와 연기가 자욱하지도 않고 비싼 음식 값 때문에 부담스런 곳도 아니어서 그런지 손님들도 조용하고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규모에 맞게 준비되어 있는 방에서는 도란도란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가 들리고 2층에는 단체 손님을 위해 마련된 널찍한 방도 있었다. 주방 앞 한 쪽에 앉아 나물을 다듬던 주인 우명희 씨가 반가운 인사를 건넨다.
“이제 봄이잖아요. 묵은 나물보다 파릇파릇한 봄나물이 제철인 계절이 돌아왔어요. 저희 집 비닐하우스에서 뽑은 냉이도 향긋한 단 맛이 나고, 봄동과 유채나물도 정말 맛있어요.”
김치부터 나물, 밑반찬, 디저트용 음료까지 직접 만들어 손님에게 대접해야 직성이 풀린다는 그녀는 음식에 대해서만큼은 철두철미하다. 식당 마당에 저장고를 만들어 지난 겨울 담근 김장김치를 숙성시켜 손님에게 대접하고, 보쌈에 곁들여지는 백김치는 5월이면 최고의 맛을 낸다고 자랑하는 그녀. 새벽 6시면 두부를 만들기 위해 졸린 눈을 비비며 주방에 들어설 때도, 그녀의 머리 속에는 온통 약이 되는 음식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메주콩 익는 냄새에 행복했던 하루
자연콩의 음식은 기교를 부리지 않는다. 천연 재료 그대로 소박하지만 꾸밈없는 착한 밥상이다. 시장기가 돌아 주문한 정식메뉴. 에피타이저로 나온 연두부는 너무 부드러워 목구멍으로 막힘 없이 넘어가고, 블루베리를 갈아 만든 소스로 맛을 낸 샐러드는 상큼했다. 또 매생이가 들어간 비지전은 고소하고 바삭해 자꾸만 손이 갔고, 모두부와 함께 나온 보쌈은 막걸리를 생각나게 하는 고마운 맛이었다.
“저희집 음식은 콩이 주재료이다 보니 비주얼 자체가 화려하진 않아요. 소박하고 깔끔합니다. 직접 만든 두부는 손님들이 좋아하시고, 나물 반찬도 부담스럽지 않은 메뉴라 많이 찾으시죠. 된장과 청국장도 건강식품으로 알려지면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좋아합니다.”
우명희 씨의 말처럼 배고프고 가난했던 시절엔 그저 배부른 음식만 찾던 사람들이 이젠 몸에 좋은 건강식을 많이 찾다보니 자연히 콩요리가 각광을 받고 있다는 것. 콩요리라고 해서 다 같은 요리가 아닌 것처럼 주인이 직접 만들고 정성을 다해 만든 음식이어야 제대로 된 것이라 믿는 그녀는 보여줄게 있다며 나에게 손짓을 했다.
그녀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가니 어릴 적 익숙하게 맡았던 추억의 냄새가 났다. 아련한 기억의 저편에서 슬라이드처럼 펼쳐지는 것. 바로 메주였다. 한 가족처럼 방 윗목에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네모나 동그란 모양의 메주들. 아, 이곳에서 지푸라기를 깔고 그 위에 전탑처럼 층층이 쌓여있는 곰팡이 옷을 입은 메주를 만나다니.
“콩으로 유명한 친정동네인 경북 문경과 상주에서 가지고 온 콩으로 만든 메주랍니다. 이렇게 전체적으로 흰색을 띠며 갈색과 흰곰팡이가 겉 표면에 있으면 잘 띄운 메주이고요. 이런 메주로 장을 담그면 된장찌개를 끓였을 때 단맛이 나지요.”
음식 장사하는 사람은 욕심을 내어서는 안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는 그녀. 메주 앞에서 차근차근 들려준 이야기에 가슴이 따뜻해졌다. 입이 즐겁고 맘까지 행복해져 자연콩을 나서려던 찰나, 직접 담근 매실차 한 잔 마시라며 건네준 인심에 다신 한번 입가에 웃음이 번졌던 기분 좋은 하루였다.
자연콩 031-422-0059
배경미 리포터 bae@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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