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이 우리 시대의 핵심 코드로 부상하면서 학교 현장에서도 토론 수업, 토론 대회가 꾸준히 열리고 있다. 2010년 교육청 독서토론논술 우수학교로 지정된 잠실여고는 2011년부터 줄곧 송파구 고교생들을 위한 토론논술 교육까지 진행하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졸업생들이 매년 토론대회 심사를 맡아 후배의 멘토링까지 담당하는 독특한 이벤트가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선후배의 정감 있는 만남이 이뤄진 토론대회 현장을 찾아가 보았다.
‘일본의 망언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SNS를 활용한 허위사실 유포자 처벌 강화해야 한다''란 주제를 놓고 토론석에 앉은 고교생들이 준비한 내용을 발표하자 졸업생들은 냉정하게 심사해 본선 진출자를 가려낸다.
1학년 한지영양은 “한 달간 인터넷 자료 찾으며 준비한 만큼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다”면서 “오늘 만난 졸업생처럼 3년 후 심사위원석에 안고 싶다”며 포부를 밝힌다.
토론이 끝날 때 마다 졸업생들의 날카로운 코멘트도 이어진다. 홍은기씨는 “모두들 준비는 많이 해왔는데 떨어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늘 자신감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백장미씨는 “토론의 중요한 자질인 순발력을 기르고 상대방 내용을 경청하면서 메모하는 훈련을 평상시 많이 하라”는 충고와 함께 본인의 경험담을 후배들에게 들려준다.
이날 토론대회를 위해 모교를 찾은 졸업생은 20명 남짓. 대학이나 사회생활에서 토론의 기술이 어떻게 활용되는 지, 후배들이 고교시절에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들을 진솔하게 들려준다.
“토론을 배우지 않았다면 대학에서 낭패 볼 뻔” _장보문(경희대 프랑스어과 1학년)
“대학 수업, 교수님 과제가 모두 토론이나 발표 수업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고교시절에 체계적으로 토론을 배우지 않았다면 많이 당황했을 것이다. 토론을 통해 소통의 기술을 꼭 습득하라고 강조하고 싶다. 또한 대학 신입생 가운데 ‘고3 때 더 열심히 공부했으면 더 좋은 대학에 갔을 것’이라며 방황하다 결국 자퇴하는 경우를 주위에서 많이 본다며 후회가 남지 않는 고교시절을 보내라고 꼭 조언해주고 싶다”
“토론, 사회 생활의 필수 기술” _송준하(동국대 영어통번역학과 졸)
“5년 째 모교의 토론대회 심사를 맡고 있는데 매년 참가자 수가 늘고 토론 기술이 정교해지며 대회의 체계가 잡혀가는 걸 피부로 느낄 수 있어 졸업생 입장에서 뿌듯하다. 흔히 고교생 때는 대학에만 합격하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학은 또 다른 시작일 뿐이다. 고교시절 기회가 될 때 토론 스킬을 제대로 익혀두는 것이 좋다. 현재 취업 준비중인데 PT 발표, 1:1 면접, 토론 면접 등 사회생활에서 쓰임새가 많다는 걸 절감하고 있다.”
“내가 뭘 좋아하나 고교시절 진지하게 고민하라” _백장미(서울교대 졸)
“대학생이 된 후에 본인이 진짜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고민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고교시절에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 가’에 대해 탐색을 많이 하며 주체적으로 사는 연습을 부단히 하기를 바란다. 본인의 잠재력은 스스로 깨우쳐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현재 교사 임용을 대기 중인데 ‘늘 자기 개발하는 선생님’이 되는 걸 모토로 삼고 있다.”
“다양한 경험 통해 진로의 해답 찾아라” _서혜빈(숙명여대 중국어과 1)
“고교 때 토론동아리 활동을 했기 때문에 특히 애착이 많다. 오늘 보니까 후배들이 준비도 착실히하고 토론 실력도 향상된 것 같아 기쁘다. 나는 지난해 공대에 진학했다가 적성에 맞지 않아 반수로 중국어과 신입생이 됐다. 이번 입시 때 고교 시절 신문사설 즐겨 읽고 토론동아리 활동했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됐다. 중국에 가서 광고 분야 일을 하고 싶다는 내 진로를 정하기까지 꽤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후회는 없다. 후배들에게도 진로 결정을 위해 가능하면 다양한 경험을 쌓으라고 조언하고 싶다.”
“목표가 분명하니 공부가 힘들지 않더라” _정세미(홍대 건축학과 1)
“고교시절 나는 교내외 다양한 행사에 최대한 많이 참여하며 차곡차곡 경험을 쌓으며 건축학도가 되겠다는 진로를 결정했다. 목표가 분명했기 때문에 재수도 수월하게 공부했다. 진로는 고교생 때 성급히 정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고 대학에 가서 바뀔 수도 있으니까 최대한 많은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꼭 들려주고 싶다.”
“눈 앞의 입시 보다 긴 인생 먼저 봐라” _홍은기(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 판사)
“토론대회에 참가한 후배들이 사례와 시각 자료까지 꼼꼼하게 준비해 온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고 핵심을 간파해 본인의 논리를 전개하는 토론 기술은 사회생활에 꼭 필요한 덕목이라는 걸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입시에 치이는 고교 시절이 힘들더라도 인생을 길게 보며 준비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미니 인터뷰>
소병찰 잠실여고 국어교사
“고교 생활의 신선한 자극 주고 싶다”
잠실여고 토론논술 교육의 밑그림을 그리고 지역사회와 연계하는 ‘열린 교실’을 끊임없이 시도중인 에너자이저 소병찰 교사. 선후배가 만나는 특별한 토론대회 아이디어를 낸 것도, 5년 째 행사를 이어오고 있는 것도 모두 그의 열정 덕분이다.
“대학생 또는 사회인이라 후배들에게 해 줄 이야기가 많을 거라 생각했어요. 선배와의 만남 자체가 고교생들에게는 좋은 자극이 되니까요. 게다가 다양한 전공을 지닌 졸업생들끼리 인맥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되고요.”
바쁜 졸업생들을 한날 한시에 불러 모으려면 그는 늘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선생님이 먼저 안부 문자를 졸업생들에게 수시로 하세요. 멘토 역할을 간곡히 부탁하시는 데 제자로서 거절할 수 없지요.” 졸업생 송준하씨가 귀띔한다.
소 교사의 바람은 단 한 가지. “입시 공부가 중요하지만 리더로서의 자질 먼저 갖추기를 바랍니다. 토론을 통해 학생들이 소통하는 방법, 경청 능력, 정보를 지식으로 체계화하는 기술을 꼭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토론대회 수상 여부는 그 다음 문제이고요.”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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