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선 의왕역에서 십여 미터만 걸어가면 좁은 골목길 사이로 장터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지붕을 씌운 현대화된 시장의 모습도 아니고 시장입구를 알리는 흔한 간판하나 없지만, 북적거리는 인파에 작은 노점상, 흥겨운 노래 소리에 상가들이 늘어서있는 모습은 영락없는 재래시장이다.
이곳이 바로 의왕에서 유일하게 전통시장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부곡도깨비시장’이다.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운 멋, 도깨비시장 이래서 좋구나!
왜 ‘도깨비시장’일까? 부곡 도깨비시장을 찾아가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이 이름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정식명칭인 ‘부곡시장’보다 ‘도깨비시장’으로 더 잘 알려진 까닭에 이곳에 도깨비 설화라도 전해져 내려오나 하는 나름의 상상까지 할 정도.
하지만 도깨비시장이라는 이름은 잠깐 섰다 사라지는 모습이 마치 도깨비를 닮았다 하여 그렇게 불리기도 하고, 이 곳이 일반적인 재래시장처럼 크거나 상점이 많은 것도 아닌데 시장 노릇은 톡톡히 한다 하여 그렇게 부르게 됐다고도 한다. 어쨌거나 도깨비시장이라는 이름은 누가 지었든 이곳과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곡도깨비시장은 근처 지역의 다른 재래시장들처럼 현대화된 시설로 정비된 모습은 아니었다. 시장의 입구에 들어서서도 간판이 없어 시장 앞 전신주에 붙은 길안내 표지판에서 이곳이 시장 입구라고 짐작하는 정도였다.
시장 안으로 들어서자 여느 재래시장처럼 100여 미터 길을 따라 양옆으로 상가들이 죽 들어서 있었다. 과일과 채소를 파는 가게부터 생선가게, 떡집, 건어물상, 손두부집, 신발가게, 만물상 등 다양한 물건들을 파는 상점들이다. 거기다 간식거리로 먹기 좋은 만두와 찐빵을 파는 가게, 세 개에 천원인 빵가게와 부산어묵 가게도 단골이 많은 가게다.
이렇게 늘어선 상점들 가운데 유독 눈에 들어오는 곳은 다름 아닌 쌀가게. 지금은 거의 다 없어져 보기조차 힘들지만, 예전에는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쌀가게가 이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하얀 백미는 물론 현미와 수수, 보리와 기장 등 다양한 잡곡들이 플라스틱 바구니에 수북이 쌓인 모습을 보자니 어린 시절 추억이 떠오르는 듯 했다.
쌀가게 앞에서 한참을 서 있을 무렵, 옆에서 들려오는 정겨운 말소리가 정신을 깨운다.
“날씨가 너무 더운데 나오셨어요? 들어오셔서 더위 좀 식히고 들어가세요. 좋아하시는 수박이 오늘따라 맛있는데 맛도 좀 보시고요.” 과일가게의 젊은 여자 주인이 동네 이웃인 할머니 한분을 붙잡고 이런 저런 말을 건넨다.
“여기는 모두가 이웃이예요. 상인도 손님도 딱 잘라 구분 짓기 힘들지요. 대부분이 단골이자 이웃이기 때문에 무엇을 좋아하는지 식성이나 취향도 알거든요. 상점은 이웃들의 사랑방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과일가게 주인의 말대로 이곳 도깨비시장은 상점마다 여러 사람들이 앉아 있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다. 동네 이웃인 이들은 가게에 나와 주인의 일손도 돕고 말동무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시장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집 앞을 나오면 바로 펼쳐지는 시장, 모두가 나와 이웃이 된다.
이런 일들이 가능한 것은 도깨비시장의 지리적 위치를 보면 조금은 이해가 간다. 도깨비시장은 빌라나 연립 등 주거단지에 둘러싸여 있다. 시장 뒤가 바로 주거지인 셈.
집의 문을 나서면 채 1분도 되지 않아 도깨비시장과 만난다. 사람들은 이 길을 따라 출퇴근을 하고 이곳에 나와 장을 보고, 아이들은 등하교를 하며 놀기도 한다. 시장이 집 앞에 바로 위치해 있는 까닭에 주민들은 이곳을 일상의 터전이자 만남의 장으로 삼으며 이웃과의 정을 나누고 있는 것이다.
한편, 도깨비시장은 상점뿐 아니라 노점상들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주로 어르신들이 그날 팔 물건을 가지고 나와 장을 펼친다. 날씨가 더운 한낮이나 사람이 적은 오전시간은 피했다가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장을 보러 나오는 오후 시간쯤 되면 도깨비처럼 나타나 시장 안을 채운다. 상점과 노점이 적절히 어우러져 있다 보니 그 모습이 마치 시골장터와 비슷하다.
이 동네에서만 20년 넘게 살았다는 한 주민은 “도깨비시장은 오랜 시간 이 동네 주민들의 터전이 되어 준 시장”이라며 “작고 소박해 보여도 의왕시 삼동에서는 가장 번화하고 사람들이 즐겨 찾는 명품 공간”이라고 자랑했다.
그러면서 그는 “채소가 싸고 좋기로 유명한 민우상회 물건이 네다섯 시면 거의 다 팔려요. 다 팔리기 전에 얼른 가서 사야해”라며 바쁜 걸음을 재촉했다.
이재윤 리포터 kate257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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